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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박원순은 "NGO가 블루오션이다"라는 말로 깊이 각인되어 있다. 내가 그의 책을 처음 만난 것은 중국으로 건너갈 무렵인 1999년이었다. 그가 쓴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는 '세기의 재판이야기'라는 부제를 담고 있는 책답게 역사적으로 유명한 재판을 모두 다루고 있다.

 

논란의 소지가 있는 소크라테스, 예수, 잔다르크, 드레퓌스 사건의 논리를 파헤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진 가장 큰 느낌은 법관 출신이지만 인간을 알아가는 지식인이구나하는 것이었다. 어떻든 책의 장점은 저자가 선입견이나 자신만의 신념에 의하지 않고, 세기의 재판들을 객관적으로 풀어내는 것이었다.

 

반면에 약점은 각 이야기들을 연결하는 공통선이 없고, 지나치게 논점이 흐리다는 것이었다. 예수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은 지나치게 무뎌 선과 악의 판단 경계까지 사라질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한 것 같았다.

 

그때만 해도 법관 출신의 시민운동가로 인식되던 박원순은 이제 시민운동계의 전설처럼 자리했다. 지난 대선에서는 유력한 대선후보로까지 거론될 만큼 그의 정치적 포지션도 커졌다. 문국현의 등장이라는 상황에서도 그는 출사하지 않았고 결국 그게 그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심어주는데 한 몫을 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 그가 더 부각되는 것은 정권이 바뀐 후 칼날이 시민운동을 향해올 때도 곧곧하게 눈을 뜨고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와 비슷한 길을 걸었지만 환경연합 최열 총장이 곤란을 겪는 것과는 대조적이어서 더 빛난다.

 

법관 출신이지만 인간을 알아가는 지식인이구나 

 

향후 박원순은 어떤 모습으로 세상과 소통할까. 인터뷰로 밥 벌어먹고 사는 유일한 프리랜서일 지승호가 이 문제의 답을 위해 박원순을 만났다. 이야기는 박원순의 어린시절로부터 시작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순수한 인터뷰를 통한 자서전에 가깝다. 7남매중 여섯째로 태어났는데 집은 가난했고, 30리를 걸어서 학교를 왕복했다고 한다.

 

어떻든 그는 시골출신으로는 상상하기도 힘든 경기고를 석달 동안 양말 한 번 안 벗는 노력 끝에 합격한다. 건강을 잃어 서울대를 재수해야 했지만 이후 그의 여정은 자연스럽게 시민운동을 향해진다. 그것은 천성적으로 사람들에게 모질게 할 수 없는 성격이나 약자에 대한 배려를 잊을 수 없었던 마음, 그리고 그가 좋아했던 책 읽기에 의해 습득할 수 밖에 없었던 교양의 성장도 그가 약자들의 편에 서게 한 것 같다.

 

어떻든 박원순은 조영래 변호사와 같이한 망원동수재사건, 부천서 성고문 사건 등으로 인권변호사의 길에 들어선다.(109p) 이후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이나 미문화원사건 등에도 참여한다. 또 한겨레 논설위원 등을 포함해 문필가로서의 길도 걷기 시작한다.

 

그는 1991년 영국 유학을 통해 세계 시민운동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귀국한 1993년 말부터 김중배 선생, 조희연 교수 등과 참여연대의 설립을 논의한다. 그리고 박원순의 색깔은 참여연대를 통해서 나오기 시작한다. 그는 10년 동안의 활동을 위해 나름대로 NGO철학을 정리하는 셈이다. 그는 이후 '아름다운 재단'을 통해 후원회 맥주를 파는 시민단체가 아닌 수익을 만드는 시민단체를 실현시킨다. 또 시민기업의 개념을 정착시키기 위한 '희망제작소'를 만들어서 성공적으로 정착시킨다.

 

책의 마무리는 딸과 아들, 아내, 모든 가족과 지인에게 보내는 유언장으로 되어 있었다. 이 부분을 먼저 읽어본 아내는 박원순 변호사가 너무 자기만을 위해 산 것이 아닌가 하면서 가족들을 동정(?)했다.

 

이 시대 블루오션인 NGO를 만들어가는 여정 보여줘

 

사실 이 책을 읽고 나는 두 가지를 생각했다. 지금하는 내 사업을 사회적 기업으로 만들어가는 게 더 바람직하고, 궁극적으로 내가 지향하는 바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시도를 안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희망제작소 사이트 등에는 이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상담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 없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다른 하나는 훗날 내 고향 마을에 돌아가 자연속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는 한편 약한 이들이 모일 수 있는 생태마을을 만들고 싶다는 내 소망이었다. 사람들이 떠난 내 시골 마을은 이제 내 어머니 혼자 남아서 고향을 지키고 있다. 광주에 사는 여동생 내외가 시험적으로 고향마을에서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있는데, 내가 가면 힘이 될 것이다. 내가 생산하는 것들을 기록해서 콘텐츠로 만들어 이미 완성된 물류망에 실어보낼 수 있다면 오히려 도시보다 더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책 '희망을 심다'는 박원순이 말하는 이 시대 블루오션인 NGO를 만들어가는 여정을 잘 보여준다. 이 책을 보면서 나는 박원순이 정치 영역에 관심을 가진 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누가 부인하려해도 정치가 흙탕물 판이라는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 크기도 감히 단정할 수 없을 만큼 클 수 있다. 사실 문국현의 정치적 그릇은 그다지 크지 못해 그곳에 뛰어들자마자 흙탕물에 섞인 것을 볼 수 있었다.

 

박원순 역시 정치로 간다면 비슷한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박원순의 여정을 공감하지만 그가 가진 바다가 현재의 정치판을 포용할 정도의 크기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지레 포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는 이미 상당한 조직과 인맥을 가진 만큼 그를 이전의 선험자들과 비교해서 배척하는 것도 옳지 않다. 그래서 더 궁금해 진다. 박원순의 푸른 바다는 이 흙탕물 정치판을 얼마나 받아서 순화시킬 수 있을지.


희망을 심다 - 박원순이 당신께 드리는 희망과 나눔

박원순 외 지음, 알마(2009)


태그:#박원순, #지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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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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