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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씩 왼쪽아래 어금니 쪽으로 혀끝이 절로 갔다. 이가 들떠있는 것 같았고 그 속에서 뭔가가 은밀하게 벌어지는 느낌이었다. 언젠간 들러야지 하다가 미루고, 이번엔 꼭 가야지 하면서 갈 수 없었던 치과를 실제로 찾아가기 까지는 3년이 넘게 걸렸다.

"잇몸이 많이 부었어요. 충치도 있네요. 그리고 여기 하나, 둘, 세 군데 사랑니는 다 빼야 됩니다."

이 상태는 생각보다 안 좋았다. 잇몸치료만 생각했었는데 사랑니를 다 빼라고 한다. 잇몸치료를 받기 전, 2주 동안 두 번에 걸쳐 스케일링을 먼저 받아야 했다. 생각해보니 스케일링을 한 지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희미하다. 때마다 스케일링을 받고 살 만큼 여유도 없었지만 아프지 않은데 굳이 스케일링을 하러 가는 것도 번거로워서 그럭저럭 이를 챙겨가며 살지 않았다.

스케일링을 시작으로 내 입안의 공사는 시작되었다. 굳게 마음을 먹었는데도 긴장감이 전신을 휩싼다. 입을 악~ 벌리자 금속회전기기가 돌아가면서 이를 낱낱이 훑었다. 스프레이에서 분사되는 물과 귓속을 찌르르 울리는 소름 돋는 소리가 섞이면서 맞잡은 두 손엔 땀이 뱄다.

스케일링으로 받는 고통이 지나고 다시 잇몸치료로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마취를 한다고 일러주면서 바늘로 여린 잇몸을 몇 군데 찔렀다. 마취기운이 입안에 퍼지는 느낌이 들면서 얼얼한데, 아래 양쪽 어금니 가까운 곳에서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뭔가를 힘들여 떼어내는 것 같았다. 나는 그저 눈을 감고 있지만, 입안에서 벌어지는 대공사에 엄청 큰 망치와 펜치, 끌 따위가 각각의 소임을 하는 것 같았다.

잇몸치료가 정리되고 이번엔 왼쪽 아래 사랑니를 뽑으려고 다시 마취를 했다. 저 안쪽으로 깊숙이 난 사랑니를 빼기는 쉽지 않았다. 의사가 '자, 이제 뺍니다.' 하면서 펜치가 이를 꽉 잡는 순간, 잘 빠져나오지 않는 이를 흔들며 뺄 때 내 머리가 양옆으로 두어 번 흔들렸다.

"뺐어요!"

사랑니가 빠진 깊숙한 자리에 솜뭉치를 넣어주던 간호사가 말했다.

"에? 언제 뺐어요. 내 이 보고 싶은데요."

"버렸어요. 피가 잔뜩 묻었는데 그게 보고 싶으세요?"

"아, 궁금해서요. 근데 나머지 사랑니도 꼭 빼야 하나요?"

"네~ 사랑니 상태도 안 좋고 빼는 게 좋아요. 음식물도 자주 끼고 양치도 힘들고요. 그깟 사랑니에 공들일 필요 있나요?"  

병원을 나오니 눈물이 찔끔 났다. 입은 마취상태로 다물어지지도 않아 붙이다시피 하고, 흔들린 머리는 어지러웠다. 아직도 잇몸치료는 계속 받아야 하고 남은 사랑니 두개도 뽑아야 하는데 그 험난한 시간을 어떻게 견딜까 싶었다. 집으로 가는 걸음이 무거운 쇳덩이를 끌고 가는 것처럼 힘들었다.

사랑니는 언제부터 났을까? 위아래 양쪽 안 저 끝에 솟아나면서 깊숙하게 뿌리 내렸을 사랑니. 지난 20대의 어느 날, 사랑을 잃고 울면서 하염없이 길을 걷는 내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사랑 때문에 운다는 유행가 가사가 내 일이 될 줄은 몰랐다. 뽑은 사랑니를 보고 싶다는 내 말에 간호사가 했던 말을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난다. 그깟 필요 없는 사랑니 뭐가 궁금하다고. 사랑니뿐만 아니라 떠난 사랑에도 공들일 필요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마음이 어디 그렇던가.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떠난 사랑이 궁금하고 새록새록 보고 싶었다. 

바윗덩어리가 올라앉은 것 같은 마취기운이 시나브로 사라지자 이를 뽑은 자리가 욱신거렸다. 마취기운만 풀리면 곧바로 밥을 먹을 것 같았지만, 아직 괜찮은 오른쪽 어금니도 영향을 받았는지 밥을 씹기가 부담스러웠다. 김치조차 맘대로 먹는 게 수월치 않으니 가장 만만한 게 물렁한 두부다. 두부부침, 두부국, 순두부... 말랑한 음식을 며칠 먹으니 아작아작 씹어 먹을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 몰랐다. 이가 아파서 밤새 잠을 못 잤다던 옛날 어르신들 말을 내가 겪고 나서야 그 아픔을 알겠다.

일주일쯤 지나자 부었던 잇몸도 가라앉고 치통도 잠잠해졌다. 요즘 나는 밥을 먹고 나면 곧바로 이를 닦는다. 치간 칫솔질도 꼼꼼하게 한다. 이렇게 열심히 이를 닦은 기억이 별로 없다. 앞으로 잇몸치료는 세 번 정도가 남았고, 사랑니 뺀 자리가 아물면 다른 사랑니를 또 빼야 한다.

이미 알아버린 치통의 경험이 끔찍하다. 아직 잇몸치료가 남아있고 사랑니를 빼고 견뎌야 할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공들일 필요 없던 사랑'에 공들이고 나서야 건강한 사랑을 다시 깨달은 것처럼 아픔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일지만, 치료가 끝날 때까지 꾹 참고 기꺼이 사랑니를 앓으려고 한다. 꽃피는 봄 사월, 라일락 향기가 바람 끝에 금방이라도 실려 올 듯하다. 

덧붙이는 글 | sbs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사랑니#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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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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