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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 윤구병선생한테서 들은 이야기다. 남미 어디에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사회운동으로서의 인문교육에 종사하던 서구 출신 자원활동가의 이야기라더군.  학업성취도 측정을 위한 시험을 치루는 날이었다네.  시험지를 받아든 학생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여기저기서 답안에 대해 상의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는 거야.  그래서 이렇게 일러 주었다지.

 

"시험 답안은 혼자 힘으로 쓰는 거야.  친구의 생각을 묻거나 남의 걸 보고 쓰면 못 써!"

 

그랬더니 이런 대답이 왔다는구만.

 

"우리는 예전부터 서로 돕고 사는 게 옳은 거라고 배웠어.  특히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외면하는 건 사람의 도리라 아니라고 말이야.  근데 지금 우린 바로 그 어려운 문제에 부닥쳤거든.  서로 돕는 게 어째서 나쁘다는 거지?"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사회질서의 주된 원칙으로 삼는 문화 속에서 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온 그 자원활동가는 충격과 함께 감격을 먹었다지.

 

대한민국 제도교육은 바야흐로 무제한 경쟁을 일상화하는 정책을 전방위적으로 구가하고 있다.  경쟁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개인별/학급별/학교별/지역별 차이를 확실하게 드러내려는 거지. 전국의 초중등 학생들을 성적에 따라 한 줄로 세우는 일제고사를 강행하면서 경쟁을 일상화하는 학교생활을 굳혀가려 하는 게야. 

 

학교에서 살아남자면 누가 상대가 되었든 경쟁해야 하고, 거기서 이겨야 해.  전방위적 노력이 학생의 미덕이고, 승리는 불변의 가치인 게야. 학과목 수업 외 수행과제로 행하는 봉사에서도 남들보다 높은 점수를 얻으려고 노력해야 돼. 그냥 착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선행이라는 기록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거지.

 

동네에서 더불어 놀고 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는 동무들을 늘 경쟁상대로 바라보면서 살자면 얼마나 피곤해질까?  내가 꼭 일등을 하기 위해 남들에게는 감추고 나만이 가지고자 애써야 한다면 그 조바심과 스트레스를 어찌 다 감당해내지?  내가 모르는 걸 너한테서 배우고 내가 잘 하는 과목에서 너를 도와서 너랑 나랑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우리 모두가 나아지도록 힘쓰는 게 나한테 손해가 될까?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건 자라서 어른이 됐을 때 가족-친지-이웃과 좋은 관계를 이루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끔 받쳐줄 여러 자질을 갖추도록 하는 일일 터이다. 놀이터에서만이 아니라 교실이나 운동장에서도 친구들과 서로 돕고 함께 발전하고자 하는 습관과 심성을 지닌 아이들이 커서도 원만한 인격의 시민이 되고 훌륭한 리더가 되는 법이다. 커서만이 아니라 어린 시절만 놓고 보더라도, 저 혼자서 앞서 나가겠다고 마음을 앙다잡먹는 아이가 꼭히 좋은 성적을 내는 건 아니다.  훌륭한 학생인 건 더욱 아니다.

 

내가 조금 뒤처지면 어때?  친구를 밀쳐내려 하기보다 더불어 잘 되고자 힘쓸 때, 인기가 좋아 친구들이 많아질 뿐 아니라 성적에서도 오히려 더욱 부드럽게 발전하게 마련이야.  대학에 진학하거나 사회에 진출해서라면 더욱 그렇지.  성공적인 삶이란 남들과 적대하기보다 연대하는 데에서 이루어지기 쉬운 법이거든.  어릴 적부터 이웃을 향한 따스한 관심과 티내지 않는 배려의 태도를 몸에 배게 익힌 아이들이 결국 사람다운 사람, 더욱 쓸모있고 훌륭한 인물로 성장하는 게야.

 

하긴 교육에서 경쟁을 완전히 배제할 수야 없지. 시험을 치루고 점수와 등급을 매기는 평가의 과정을 빠뜨릴 수는 없는 법이지.  하지만 그 평가의 결과를 학생이나 학교에 대한 지원과 혜택의 기준으로 삼는 게 문제라는 거야.  더구나, 그 평가에 앞서 치루어야 하는 경쟁이란 게 공평하지 않은 건 더욱 문제지.  국제중학교와 특수목적고를 많이 세워서 부잣집 아이들에게는 중산층이나 서민층의 아이들과는 다른 특수교육을 시켜야 하겠다는 게 공정책-김진춘으로 이어지는 이명박식 개혁교육의 주요 항목이잖아.  심지어 고등학교의 등급을 매겨 내신성적에서 차등을 주겠다고까지 하는 것 같던데? 

 

줄여서 말하자면 결국 이런 거지.  부모들이 잘 살고 못 사는 현재의 형편을 고르게 할 사회정책을 펴기보다 교육제도를 통해 그 차별을 길이길이 지속시키겠다는 거 아냐?  돈 없는 계층의 자식들에게는 학교선택의 기회를 빼앗고 수업환경과 복지혜택에서 저급한 수준을 감수하도록 강요하겠다는 거야.  특수학교에 보낼 여건이 안 되면 학원과외라도 시킬 수 있어야 그나마 번듯한 졸업장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려는 거지.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건 혀에 발린 서비스일 뿐, 공교육이 져야 할 책임을 최소화하려는 게 본심인 듯해.  한 마디로 학교를 사업체로, 교육을 시장으로 만들겠다는 게야. 

 

자본연관비율이 10에 육박하는, 다시 말해 국가사회 실질경제력의 10배에 달하는 명목가치가 지배하는, 이 시대에 돈과 자본은 실상 거품일 뿐이지.  그 거품을 부풀려 거대한 부를 움켜쥔 극소수 부자들은, 시장경제-자유무역의 경쟁에서 낙오하는 사람들을 무능력자/나태꾼/떼쟁이로 몰아부치고 싶어 하지.  실업자/반半실업자들은 물론 임금노동/농업/축산업/어업/자영업에 종사하는 서민과 중산층은 자녀교육에서도 실질가치를 온통 바치고도 더욱 큰 부채를 떠안으면서 명목가치의 상승을 꿈꾸도록 훈련되고 있는 게야.

 

자, 이제 어떡할 거여?  이명박식 '없는 자 허리띠 조르기'의 행진을 일부나마 저지시킬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내일 4월 8일은 경기도 교육감 선거가 있는 날이거든.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투표가 가능하다는 건 알고 있겠지?  제 정신 가지고 살아남을 의지가 아직 남아 있다면, 그리고 딸-아들-조카-동생들을 경쟁지옥에서 허우적거리지 않도록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나라를 되일으키는 거룩한 운동에 동참하는 일이라 자신있게 믿으면서 투표장에 꼭 들리도록 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프라이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교육감 선거#이명박식 교육개혁#공정택과 김진춘#공교육 살리기#사교육비 줄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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