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중학교에 들어간 처남이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은 몇 가지 안 됩니다. 초등학교와 견주면 제법 늘었다 할 테지만, 1988년에 중학교에 들어간 제가 배우던 교과서 가짓수가 열여덟 가지쯤 되었고, 고등학교에서는 스무 가지 넘는 과목을 빽빽하게 배워야 했던 지난날을 돌아보니, 세월이 바뀌었는지 제 고향동네 학교가 지나쳤는지 궁금해집니다. 제가 중학교에 다니고 고등학교에 다니고 할 때에는, 중간시험이나 기말시험을 치를 때면 날마다 네 과목씩 나흘이나 닷새에 걸쳐 보았습니다(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낮밥까지 싸 와서 하루에 대여섯 과목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체육과 미술과 국민윤리와 교련과 독일말과 기술과 공업과 음악까지 어느 한 과목도 시험에서 빠지는 법이란 없었습니다.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을 따로따로 배우는 가운데 시험도 늘 따로따로 잔뜩 있었고요. 사회문화, 정치경제, 국사, 세계사 시험으로 골머리를 앓으면서, 국어, 문법, 문학, 작문, 한문이 따로따로였는데, 그나마 문과라서 우리는 수학 시험이 둘셋이 아니었던 대목에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습니다.

 

 

 다른 동네에 살던 동무들은 어떻게 중간ㆍ기말시험 가짓수가 스무 가지가 넘느냐고 고개를 갸웃갸웃했는데, 국민윤리와 철학을 또 따로 나누어서 시험을 치렀고 영어와 수학을 더하면 스물세 과목이 훌쩍 넘습니다.

 

 그때야 그렇게 배워야 한다 했으니 배워야 했고, 빡빡한 수업만큼 날마다 챙겨야 할 교과서와 참고서와 문제집 권수가 어마어마해서 책가방 무게는 늘 십 킬로그램이 넘었습니다. 여기에 영어사전과 국어사전과 독일말사전을 더하면 십오 킬로그램쯤. 그리고 도시락 두 끼니. 체육이나 교련이 있는 날은 옷가지를 챙길 손가방을 따로 들어야 했고. 폐품을 가져오라고 하면 무거운 가방에 옷가방에 폐품꾸러미까지 해서 어깨와 손목아지가 새벽부터 뻑적지근한 채로 미어터지는 시내버스를 타고 사십 분쯤 시달리는 하루.

 

 이런 하루하루를 여섯 해 보내는 동안, 제 또래동무이든 선배이든 후배이든, 교과서 아닌 책을 챙기면서 읽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교과서 아닌 책을 학교로도 가지고 와서 읽은 동무는 꼭 두 사람 보았는데, 중학교에서 한 번 고등학교에서 한 번 보았습니다. 중학교에서는 《영웅문》을 읽던 동무였고, 고등학교에서는 문학책을 읽던 동무였습니다. 그무렵을 곰곰이 돌아보면, 동무들끼리 '우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던 일은 없었다고 느낍니다. 언제나 시험과 대학교 이야기, 텔레비전 연속극과 운동경기와 연예인과 인기노래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며, 사이사이 여자친구와 미팅 이야기가 끼어들었습니다.

 

 

 보는 테두리가 좁았으니 좁은 눈으로 좁은 이야기를 나눌밖에 없고, 아는 테두리가 갇혀 있었으니 갇힌 눈으로 갇힌 이야기를 주고받을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먹고사느냐 하는 이야기조차, 내 꿈이 무엇이냐 하는 이야기마저,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는커녕, 동네와 식구 이야기라도 제대로 나누게 되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외워야 하고, 머리에 집어넣어야 하고, 틀에 매여야 하는 가운데, 우리 스스로 걷는 길은 한결같이 외곬로 치닫습니다. 이때에는 우리가 문예반에 있든 교지편집반에 있든 사진반에 있든 미술반에 있든, 우리 스스로를 느끼며 우리 스스로 펼치고자 하는 이야기를 끄집어내지 못하고 맙니다. 언제나 '위'에서 바라는 대로 따르고, '교사'가 이끄는 대로 끄달릴 뿐입니다. 젊은 나이라 하여도 젊은 생각이 아니고, 풋풋한 나이라 하여도 풋풋한 생각이 아니며, 싱그러운 나이라 하여도 싱그러운 생각이 아닙니다. 새로운 생각이나, 새삼스러운 생각이나, 맑은 생각이나, 남다른 생각이나, 반짝반짝하는 생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니, 이와 같은 생각은 처음부터 새어나오지 못하도록 꽁꽁 싸이고 꾹꾹 눌려 있었다고 할까요. 교과서란, 교재란, 제도권이란, 시험이란, 점수란, 학교란, 우리 넋과 얼을 숨쉬지 못하게 억누르거나 가로막는다고 할까요.

 

 그러면, 중고등학교를 거쳐서 들어가게 되는 대학교는 어떻게 다를까요. 대학교라는 곳은 얼마나 다를까요. 입시 틀거리는 오로지 대학교만 바라보도록 맞추어져 있는데, 이 입시 틀거리에서 가까스로 풀려난 대학교에서는 어떤 짜임새로 우리 넋과 얼을 살리거나 북돋우려고 할까요. 저마다 저다움을 누리도록 하는 가운데 제 꿈과 제 뜻을 펼치는 슬기롭고 싱싱하고 해맑은 흐름이 우리네 대학교 문화이자 배움터로 자리잡고 있을는지요.

 

 

 대학교에 잠깐 몸을 담그며 보도사진을 배우던 때, 아직 시간강사였던 분은 '미진사'에서 나온 사진실기 책 하나와 '케네스 코브레' 님이 쓴 《포토 저널리즘》 두 가지로 강의를 이끌었습니다. 보도사진은 실기만으로는 할 수 없기에 이론도 익혀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만, 이 강의를 듣는 저 같은 '사진찍기를 하나도 모르는 젬병'이 1/3쯤이나 있었기에, 깊이있게 이끄는 강의를 처음부터 하지 못하고 필름넣기와 되감기 같은 밑지식부터 가르쳤습니다. 그렇지만 그 밑지식이나 이론이라고 하는 테두리는 살짝살짝 훑고 지나쳤습니다. 그런 자잘한 대목까지 '아까운 강의' 때에 다 말할 수 없으며, 그런 자잘한 대목은 우리 스스로 책을 읽으면 다 알게 되는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가르쳐야 할 대목과 우리가 마음써서 배울 대목이란 그와 같은 책 몇 권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며, 잘 찍었다는 본보기 사진 또한 아니라, '우리 스스로 사진을 어떻게 바라보며 읽어내느냐'에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스스로 어떤 사진을 찍으려 하느냐'에 있고, '우리가 찍은 사진이 어떻게 쓰여지느냐를 얼마나 헤아리느냐'에 있으며, '우리가 사진을 찍을 때 어떠한 매무새여야 하느냐'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 강의를 들은 지 열한 해가 지났습니다. 강의를 맡은 분은 이제 전임교수가 되어 사진학과 수많은 제자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분이 우리를 가르치며 들려준 마지막말은 "'내 사진'을 만들고 싶으면 십 년을 기다리며 찍으라"였습니다. 사진찍기를 배운 지 열한 해이니, 열 해는 꽉 채웠습니다. 이 열 해를 채운 사진길을 거슬러 보노라면, 그분이 우리한테 했던 말에 담은 마음을 고개를 끄덕이며 되씹게 됩니다. 그무렵 아무리 좋은 말을 해 보았자 아직은 우리한테 들을 귀가 없고 새길 마음그릇이 모자라다고 여기면서 열 해를 기다리라 했구나 싶은 한편, 열 해를 묵혀도 못 알아들을 사람은 진작 그 말을 잊어버렸겠구나 싶습니다. 그무렵 그분은 우리한테 "재주가 뛰어나다고 사진을 잘 찍을 줄 알아?" 하는 말을 그처럼 넌지시 빗대어 일러 주면서, 우리 스스로 '내 사진길'을 닦으라고 했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대단히 뛰어나다는 장비가 있다 하여 대단한 사진을 찍을 수 없듯, 대단히 빼어난 솜씨나 재주가 있다 하여 대단히 빼어난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100만 원 주고 장만한 손전화가 3만 원 주고 마련한 손전화보다 잘 터질는지 궁금하지만, 3만 원짜리 손전화가 덜 터진다 하여도 이야기를 주고받는 데에 아무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리고, 손전화를 걸고 받을 때에는 한결 뛰어난 기계 성능이 돋보일는지 몰라도, 우리한테는 '전화를 걸고 받는 사람이 나누려는 이야기 알맹이'가 더욱 소담스러우며 마음 기울일 대목입니다. 300만 원을 웃도는 노트북을 써야 글을 더 잘 쓸 수 있을까요? 재활용매장에서 십만 원 주고 마련한 값싼 셈틀로 글을 쓰면 형편없는 글이 나올까요? 펜탁스쯤 써야 35미리 필름사진이 훌륭해질까요? 미놀타 엑스300을 쓰면 35미리 필름사진이 형편없을까요? 롤라이를 쓴다 하여, 핫셀을 쓴다 하여, 어마어마하게 느껴질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사진찍는 모두가 이 사진기만을 써야 합니다. 디지털 장비에서도 매한가지입니다. 신문사 기자들이 쓰는 그 수천만 원에 이르는 장비를 갖추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수천만 원에 이르는 장비 때문에 우리 스스로 우리 손을 쓰고 우리 눈을 움직이며 우리 마음을 바치는 가운데 우리 몸뚱이를 모두어 내는 사진 하나로 새롭게 태어나지 못하고 맙니다. 우리들 눈 손 마음 머리 가슴 넋 몸 다리 들을 바치면서 저마다 제 깜냥을 키우는 사진으로 발돋움하기보다는 '사진기 성능'에 발목이 잡힌 채 '내 사진은 어디 있지?' 하는 길헤맴조차 못하고 '잘 찍은 사진 한 장' 테두리조차 가 닿지 못하는 가운데, 허울좋은 '사진가'와 '사진기자'라는 이름만 이마에 찰싹 붙이게 될 뿐입니다.

 

 

 '재주ㆍ기술ㆍ교재가 있어야 사진을 잘 찍는다'는 이야기는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아니, 어느 만큼은 잘 들어맞는다고 느낍니다. 다만, '잘 찍는' 사진은 될 터이나 '좋은 사진'이나 '훌륭한 사진'이나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사진'이나 '웃음이 묻어나는 사진'이나 '눈물을 자아내는 사진'이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사진'이나 '고개를 숙이게 되는 사진'으로는 뻗어나가지 못한다고 느껴요.

 

 '빼어난 재주'로 찍는 사진은 '빼어난 재주'라는 틀에 갇힙니다. 손재주이든 기계재주이든. '뛰어난 교재'를 바탕 삼아 찍는 사진은 '뛰어난 교재'라는 울타리에 갇힙니다. 그 교재를 필립 퍼키스가 썼든 이명동이 썼든 한정식이 썼든.

 

 

 '잘 찍은 사진'이란, 나 스스로 흐뭇하거나 즐겁게 받아들이는 사진은 아닙니다. 남들이 보기에 '뭔가 있어 보이는' 사진일 뿐입니다. 뭔가 있어 보이는 사진이란 '우쭐거리거나 자랑할' 만한 사진은 됩니다. 다만, '사진을 찍는다는 보람'을 얻거나 나눌 만한 사진으로 거듭나지 못합니다. 찍는이부터 스스로 사랑하고 좋아하면서 찍을 수 있어야 '좋은 사진'이지, 찍는이부터 스스로 겉모습과 겉차림과 겉껍데기에 매인 채 '잘 찍기'에 빠져 버린다면, 한두 번 슥슥 구경할 사진까지는 될 테지만, 두고두고 곁에 놓고 들여다보며 흠뻑 빠질 만한 사진으로는 이어지지 못해요. 이렇게 되는 동안, 사진이란 '기계를 다루는 가벼운 잔재주'에 머물 뿐이고, '더 비싼 기계가 있으면 더 잘 찍는 일거리'에 고이는 가운데 '사진문화'나 '사진예술'이란 가뭇없이 사라지며, '돈벌이 사진'과 '이름내기 사진'과 '사진밭(사단) 권력 사진'에서 맴돌다가 스러집니다.

 

 재주는 재주에 매이고, 기계와 장비는 기계와 장비에 얽히며, 교재는 교재에 갇힙니다. 사랑은 사랑으로 북돋우고, 믿음은 믿음으로 키우며, 꿈은 꿈으로 거듭납니다. 이리하여 사진은 삶입니다. 저마다 스스로 힘을 다해 꾸려 나가는 삶이 고스란히 사진입니다. 저마다 살아가는 대로 사진이 나옵니다. 저마다 제 삶에 어떻게 힘을 바치고 땀을 쏟느냐에 따라서 사진이 달라집니다. 저마다 어떤 이웃과 어느 자리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사진이 새로워집니다. 저마다 어떤 꿈을 어떤 매무새로 펼치려 하는가에 따라서 사진이 아름다워집니다.

 

 

사진이 사진이 되게 하자면, 사진을 찍는 우리가 먼저 '사진찍는이'가 되어야 하는데, 사진찍는이가 되기 앞서 우리 스스로 '튼튼하고 사랑스러우며 믿음직한 한 사람'으로 곧게 설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내 눈길이 사진으로 담기고, 내 마음이 사진에 스미며, 내 다리품이 사진에 깃듭니다. 내 손길이 사진으로 태어나고, 내 마음결이 사진으로 다스려지며, 내 온몸이 사진과 함께 거듭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태그:#사진, #사진찍기, #사진말, #골목길, #교육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