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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희망에 혹한 나머지

 

.. 언젠가는 진정한 남자를 찾으리라는 희망에 혹한 나머지 계속해서 부질없이 기다리거나 쓸 만한 남자 우상을 좇는다 ..  《아리엘 도르프만,아르망 마텔라르/김성오 옮김-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새물결,2003) 84쪽

 

 '진정(眞正)한'은 '좋은'이나 '제대로 된'이나 '멋진'으로 고쳐쓰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희망(希望)'은 그대로 두어도 되며, '꿈'으로 손보아도 됩니다. '계속(繼續)해서'는 '자꾸'나 '자꾸자꾸'나 '자꾸만'으로 손질합니다.

 

 ┌ 혹하다(惑) : 홀딱 반하거나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다

 │   - 그는 노름에 혹해서 전 재산을 날렸다 /

 │     아무리 계집에 혹하기로 귀애하던 자식을 몰라보는 사람이 있단 말이오?

 │

 ├ 혹한 나머지

 │→ 홀린 나머지

 │→ 매인 나머지

 │→ 홀딱 빠진 나머지

 │→ 홀딱 반한 나머지

 │→ 넋이 나간 나머지

 │→ 얼이 빠진 나머지

 └ …

 

 홀딱 반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우리 말로 '홀리다'가 있습니다. 누군가한테 마음을 빼앗긴 모습이 너무 끌려다닌다 싶으면 '매이다'나 '붙들리다'를 넣어도 어울립니다. 말 그대로 '홀딱 반하다'라 해도 되며, '홀딱 빠지다'라 해도 괜찮습니다.

 

 말 그대로 하면 될 말을 말 그대로 하지 않으니 탈이 납니다. 말썽이 생깁니다. 말 그대로 하면 될 말을 말 그대로 하면 말하는 이나 듣는 이 모두가 흐뭇합니다. 즐겁습니다.

 

 ┌ 노름에 혹해서 → 노름에 홀딱 빠져서 / 노름에 빠져들어서

 └ 계집에 혹하기로 → 계집에 빠져들기로 / 계집에 홀딱 반하기로

 

 사람에 따라, 미국말에 반하기도 하고 중국말에 반하기도 하고 일본말에 반하기도 할 텐데, 제아무리 바깥말에 홀딱 넘어간다 하여도, 이 땅 이 자리에서 이웃하고 주고받는 말만큼은 올바르게 써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저마다 좋아하고 즐기며 신나게 쓰는 글이 있기도 할 텐데, 그다지도 좋아서 널리 쓰는 글이라 하여도, 혼자서만 즐기는 글이 아니라 한다면 둘레 사람한테 찬찬히 마음을 기울이는 글쓰기로 거듭나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아주 외따로 떨어져서 살아간다면 모릅니다만, 사람들 복닥이는 마을에서 어우러지는 말이 되고 글이 되자면, 좀더 우리 뿌리와 터전을 곱씹고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뿌리와 터전을 돌아본다 하여도, 올바르거나 알맞는 길보다는 얄궂거나 비틀린 길로 굽어져 있기 일쑤입니다. 이리하여 차근차근 제 뿌리를 돌아보는 이들조차, 곰곰이 제 터전을 둘러보는 이들마저, 안타깝고 슬픈 길로 엇나가지 않느냐 싶기도 합니다.

 

ㄴ. 애들이나 혹할 장난이지

 

.. "이왕에 하는 거, 더 굉장한 케이크를 만들면 좋았을 텐데. 하긴, 문화제야 애들이나 혹할 장난이지. 재미 삼아 일 벌이고 있을 뿐이고." "어린애도 만족 못 시켰어." ..  《아즈마 키요히코/금정 옮김-요츠바랑! (8)》(대원씨아이,2009) 105쪽

 

 "이왕(已往)에 하는 거"는 "어차피 하는 바에"나 "어차피 한다면"으로 다듬고, '굉장(宏壯)한'은 '대단한'이나 '놀라운'으로 다듬습니다. '문화제(-祭)'는 '문화잔치'나 '문화마당'으로 손봅니다. "만족(滿足) 못 시켰어"는 "즐겁게 하지 못했어"나 "기쁘게 하지 못했어"로 손질해 봅니다.

 

 ┌ 애들이나 혹할 장난이지

 │

 │→ 애들이나 끌어들일 장난이지

 │→ 애들이나 끌릴 장난이지

 │→ 애들이나 넘어갈 장난이지

 │→ 애들이나 좋아할 장난이지

 │→ 애들이나 불러모을 장난이지

 └ …

 

 조금 큰 아이들이 문화잔치를 꾸리고, 이보다 작은 아이들이 문화잔치에 즐겁게 놀러갑니다. 아이들보다 큰 젊은이라든지 나이든 이들은 그리 눈길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끼리 어울리는 자리라고 여깁니다. 이러면서 나오는 말 "애들이나 혹할 장난"입니다. 어른들은 그리 '끌리'거나 '내키'거나 '반갑'거나 '좋아할' 만하지 않다고 느끼는구나 싶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꾸민 문화잔치에 그다지 '넘어가지' 않고 '눈이 가지' 않으며 '마음이 쏠리지' 않는구나 싶습니다.

 

 '불러모을' 수 있는 사람은 아이들뿐이고, '끌어들일' 사람 또한 아이들뿐입니다. 아이들만 '홀딱 반하'거나 '아주 즐거워'합니다. 아이들은 '신나게 여기'거나 '반갑게 맞이'합니다.

 

 ┌ 아이들이나 마음 쏠릴 장난이지

 ├ 아이들이나 마음 빼앗길 장난이지

 ├ 아이들이나 귀가 쫑긋할 장난이지

 ├ 아이들이나 가고 싶어할 장난이지

 ├ 아이들이나 방방 뛰는 장난이지

 ├ 아이들이나 설레일 장난이지

 ├ 아이들이나 두근거릴 장난이지

 └ …

 

 말하는 사람 느낌이 어떠한가를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조금씩 다르게 가지를 쳐 봅니다. 아이들이나 홀딱 반하면서 즐거워할 일이라 한다면, 아이들이나 '마음이 쏠리'거나 '마음이 빼앗기'게 될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음을 빼앗긴다면, '귀가 쫑긋한다'든지 '눈이 간다'든지 '눈길이 쏠린다'든지 '눈길을 사로잡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눈길을 사로잡는 일이라 한다면, 그곳에 '가고 싶어할' 테고, 그리로 가자며 '방방 뛰기'도 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아이들 마음을 '설레'게 하는 한편, '두근거리'게 합니다. '가슴이 콩콩 뛰'고 '눈을 반짝이며 기다리'게 됩니다.

 

 이렇게 가지를 치고 저렇게 가지를 뻗으면서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말에 끌리지 않기에 얄궂게 말하거나 어설프게 글을 쓰는지 모르는구나 싶습니다. 좀더 아름답고 한결 싱그러우며 더욱 빛나는 우리 말과 글을 아직 모르기도 하고, 스스로 알려 하지 않기에, 언제까지나 제자리걸음이거나 뒷걸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스스로 사랑해야 살뜰히 쓸 수 있는 말입니다. 스스로 좋아해야 알맞춤하게 나눌 수 있는 글입니다. 꼭 온몸과 온마음을 바쳐야 하지는 않습니다만, 아주 조그마한 손길이라도 우리 말과 글에 내밀 수 있는 날을 기다려 봅니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우리 말과 글에 따순 눈길을 보낼 수 있는 날을 손꼽아 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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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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