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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 눈 막 울음이 터질 것처럼 슬픈, 그리고 착한 눈
소의 눈막 울음이 터질 것처럼 슬픈, 그리고 착한 눈 ⓒ 양학용

얼마 전의 일이다. 아침부터 앞집 사는 '소 박사' 하상이 형님, 입이 귀에 걸렸다. 오늘은 송아지를 팔러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밤사이에 송아지 한 마리가 또 태어났으니 입이 귀에 걸렸다 찢어진다 한들 어떠리. 덩달아 나도 좋아 오랜만에 양복바지를 꺼내 입은 그를 따라나섰다. 송아지 경매장 가는 날에 날 꼭 좀 데려가 달라고 얘기해 두었던 것이다.

경매장은 '물 반, 고기 반'이 아니라 '송아지 반, 사람 반'이었다. 송아지를 팔러온 사람, 사러 온 사람, 나처럼 구경 온 사람. 서로 아는 얼굴들을 발견하고 인사하고 웃고 떠들며 자판기 커피를 나눈다.

하상이 형님도 연신 악수하느라 바쁘다. 사방팔방에서 '음매에~' 태어나 엄마와 처음 떨어졌을 송아지들의 울음소리 때문에 경매장은 더 복작거린다. 어찌 들으니 '음매' 울음소리가 "엄마아~"라고 부르는 것도 같다.

축협경매 송아지의 경우, 송아지가 태어나면 축협에서 나와 생년월일이 적힌 '귀표'를 붙여준단다. 그 귀표를 근거로 생후 6, 7개월 송아지만 경매에 응할 수 있다고 하니 다 고만고만하게 태어난 놈들이지만, 덩치는 제각각이다.

덩치 차이에 따라 몸무게가 다르고, 몸무게가 다르면 경매가격도 달라진단다. 보통 200Kg 내외인데, 하상이 형님네 송아지는 뭘 잘 먹였는지 242Kg다.

우와, 뉘 소여? 드디어 낙찰가!
우와, 뉘 소여?드디어 낙찰가! ⓒ 양학용

"형님, 동네 어르신들이 소박사라고 하더니, 진짜네요!"

흐흐. 기분이 좋기만 한 하상이 형님, 연신 웃을 수밖에. 둘러보니 형님네 송아지가 무게로 치자면 세, 네 번째는 가는 것 같다. 경매 표에는 몸무게와 함께 축협에서 매긴 내정가가 적혀있다. 그걸 기준으로 소 사러 온 사람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희망가격을 적어 내면, 잠시 후에 낙찰가를 발표하고 송아지는 새 주인을 따라 트럭에 올라타는 것이다.

황소의 경우 새 주인에게 팔려 간 그날부터 살찌우기 작전에 돌입한다는데, 그건 바로, 거세! 살을 찌우기 위해 불필요한 정력을 낭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라 하니, 좀 비인간…, 아니 '비가축권적'이라 해야 하나? 아무튼, 오늘 팔려갈 어린 송아지가 그렇게 28개월 정도 자라면 '괴기'가 되어 우리 밥상에 오르는 것이다.

혹, 멀뚱멀뚱 소 눈을 자세히 들여다 본 적이 있는지? 막 울음이 터질 것처럼 젖은 눈, 정말이지 세상에 그보다 더 선한 눈망울은 없을지도. 이 놈 저 놈 곧 낯선 세상으로 팔려갈 녀석들의 슬픈 눈을 좇으며 사진에 담고 있는데, 한 아저씨가 시키지도 않은 설명을 한다.

"아, 고 놈이 좋은 손 겨. 뿔이 가늘고 뒷다리가 쭉 뻗은 놈이 제일인 겨. 250은 나올 겨."

그때였다. 사람들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축협 관계자가 가장자리부터 낙찰가와 낙찰자의 이름을 적어나기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탄성을 질러대며 축하인사를 주고받는다.

동시에 송아지들의 울음소리도 커졌다. 한 놈이 울기 시작하자 다들 울어 쌌는데, 거기엔 본능적인 위기의식이 묻어있다.

음매음매 난 안 갈껴! 울 엄마 어딨어유~?  ...
음매음매 난 안 갈껴! 울 엄마 어딨어유~? ... ⓒ 양학용

"음매음매, 난 안 갈껴~어! 울 엄마 어딨어유~?"

녀석들 울음소리가 안타깝다. 안 끌려가려고 떡하니 버티는 놈, 뿔도 다 자라지 않은 머리통으로 이리저리 거칠게 휘둘러대는 놈, 무서워서 더 크게 우는 놈.

"엄마를 찾는 겨."

250만 원을 넘게 받아 얼굴에 꽃이 핀 하상이 형님, 그만 돌아가자고 한다. 집에 돌아오니, 이제 엄마소가 울부짖는다. 평소 그 부드럽고 둥글던 평화로운 울음소리가 아니다. 단번에 잔뜩 화가 묻어있음을 알 수 있다.

"지 송아지 내놓으라고 저러는 겨. 젖 빨던 놈이 안 뵈니까. 한 이틀은 저럴껴."

송아지는 경매장에서 엄마 찾아 울어대고, 엄마소는 송아지 내놓으라고 울부짖고, 그 옆 칸에선 전 날 밤사이에 태어난 송아지가 음매음매 젖 달라고 울고… 녀석들 때문에 내 마음도 싱숭생숭하다.

참, 그날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 있다. 임신기간이 열 달로 사람과 가장 비슷한 동물이 소라는 사실. 그 착한 눈과 '엄마엄마' 슬픈 울음소리, 다 이유가 있었던 걸까. 

내 송아지는 얼만 겨? 사람 반, 송아지 반... 송아지 경매장
내 송아지는 얼만 겨?사람 반, 송아지 반... 송아지 경매장 ⓒ 양학용


#송아지 경매장#소의 눈#시골살이#괴산#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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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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