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다섯째날 1

 

 아침 6시. 이른 시간을 택해 긴린코 호수에 가보기 했습니다.

 

 '석양에 비친 물고기의 비늘이 금빛으로 빛난다 하여 이름 붙여진 긴린코 (금색 비늘 호수) 이런 뜻이라고 합니다. 물안개가 올라와서 새벽, 석양 즈음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어느 사이트에서 찾은 이 구절이 제가 유후인에 오게 된 이유입니다. 덕수장의 문을 막 나서는데 코 앞까지 유후다케산이 한눈에 커다랗게 들어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작은 마을 유후인을 엄마닭처럼 품고 있는 듯하다고나 할까요. 설산으로 인해 머리가 허연 어미닭 같은 산.

 

  료관 바로 앞에 개울이 흐르고 있어 개울길 따라 곧바로 걷습니다. 뒷짐지고 느긋이 걷는 이 길이 너무 좋아 죽겠습니다. 개울가를 사이에 두고 난 작고 아담한 유후인마을이 잠에서 조금씩 깨어나 시야에 나타납니다.

  

'호수에는 맑고 차가운 물이 솟아나는데 한쪽으로는 따뜻한 온천물이 흘러들어 항상 물안개가 자욱한 곳으로 유명하다. 긴린코 호수까지 걸어가는 길 또한 산책로로도 손색이 없을 만큼 운치가 있어 언제나 유후인의 방문지 1순위인 곳이다.' 

 

 예술인 마을 유후인의 예술스러운 까페며 갤러리 엑세서리 가게들도 아직 오픈하기 전이라 이곳저곳 한눈 팔거나 기웃거리지 않고 바로 호수에 도착합니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물안개가 수면 위를 우아하게 '날아다니고' 있는 거예요. 물안개가 바람결 따라 한 방향으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 물안개의 결에 제 마음을 살짝 올려놓으니 오히려 가만히 서 있는 제 몸이 반대 방향으로 밀려 움직이는 착각이 일어납니다. 마치 유람선을 타고 호수 위를 스르르 미끌어져 가는 것 같은 기분 좋은 착시현상입니다. 마음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 저는 가만히 서 있고도 이곳 저곳을 움직여 다닐 수 있습니다. 재밌습니다...

 

  그것도 이제 그만두고 그저 멍하니 서 있습니다. 평화란 뭘까요? 애써 찾아야 하는 그 무엇일까요? 아니면 애써 무엇인가를 찾지 않는 고요한 마음일까요? 행복이란 뭘까요? 원하는 것을 얻어야 찾아오는 마음일까요? 아니면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일까요? 마치, 지나는 소나기를 피해 어느 집 처마 밑에 잠시 서 있는데, 그 찰나 문뜩 찾아온 감사한 마음 과 같은... 후자라 한다면, 그렇다면... 저는 지금 평화롭습니다! 행복합니다!

 

  돌아오는 길입니다. 작고 운치 있는 갤러리가 즐비한 골목을 누비며 일부러 길을 잃어봅니다. 한 가게 앞을 지나다 창가에 걸려 있는 토토로 캐릭터가 우스꽝스러워 결국 한눈을 팔고 맙니다. 그 통에 다음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갑자기 시꺼먼 물체가 튀어나와 뒤로 움찔 물러섰습니다.

 

  인력거와 인력거꾼이었어요. 오직 사람의 힘을 이용하여 움직이는 인력거가 21세기 첨단기술로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일본과 공존하고 있는 거네요. 어디까지나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상술이라지만, 호기심만은 피할 수 없더군요. 타보기로 했습니다. 어디든 좋으니 한 시간만 운행해달라 했습니다.

 

   인력거꾼을 자세히 보니 앳된 모습의 젊은이었어요. 좀 미안키도 하고, 어린 나이에 왜 이런 험한?직업을 선택했을까 하는 원초적 호기심으로 말을 걸어봅니다.

 

  "저희 먼 할아버지대부터 이어오는 직업입니다. 그리고 저희 할아버지는 마라톤선수시기도 했구요. 저 역시 대를 이어오면서, 마라톤대회에 나가 우승하는 것이 꿈입니다."

 

  헐떡이면서도 말을 또박또박 이어가는 그의 얼굴엔 좀 전에 느꼈던 앳된 모습보단, 뭔가 가슴에 꽉찬 의지와 강인함이 엿보이는 멋지고 당당한 젊은이상입니다.

 

  순간, 부럽단 느낌이 듭니다. 가방끈 길이가 길어야 사람답게 산다는 우리 방식의 삶의 논리대신, 이들은 조상들로부터 이어져온, 삶의 길이가 긴 사람들이 갖는 자부심이 살아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죠.

 

  이 어린 인력거꾼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일정한 속도로 쉼없이 달립니다. 덜컹하고 인력거가 튕겨오를 때도 그의 발걸음은 마치 시계추의 운행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길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그의 숨소리가 인력거를 통해 제게도 전달되고 있는 듯합니다. 주변의 풍광이 그의 발길과 인력거의 바퀴 아래 붕 떠다니는 듯했죠.  

 

  드디어 그의 이마에도 땀이 배어나기 시작합니다. 땀방울이 송글하는 모습으로 저는 더 이상 얌전히 앉아 있기 참 어려웠어요. 저 땀방울이 콧잔등에 흘러내리면 차라리 내려야지 했어요. 땀방울이 콧잔등에 걸쳐졌을 때, "멈춰주세요!"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왠지 소리가 나오질 않았어요.

 

 '그래 저 땀방울이 목선을 타고 흐를 때, 그 때가 되면 이 인력거꾼은 42.195km의 마라톤선수가 되어 골인지점에 첫 테이프를 끊는 꿈에서 깨어날 수 있을 거야.'

 

 그러나 그는 저의 계산법관 상관없이 정확히 한 시간 후 인력거를 멈추더군요.

 

  덕수장에 돌아오자마자 모닝 온천욕을 즐깁니다. 어제 밤과 다르게 파란 하늘이 보입니다. 아침의 시원한 공기가 머리를 맑게 해주네요. 일본 땅을 처음 밟은 후 지금까지의 시간을 잠시 돌아보니, 제 생애 그 어느 때보다도... 참으로 천천히 느리게 지내고 있는 거 같습니다. 자연은 변함없이 하루 한번 해는 뜨고 지고 했을 터인데도요...

 

  체크아웃하고 있습니다. Tomoko Tokunaga. 그녀는 미혼의 처녀로 덕수장의 손녀딸이자 실질적인 이곳의 운영자입니다. 이 료관을 첨 열기 시작한 그녀의 할아버지가 곁에서 고구마를 드시고 있네요. 연세가 꽤 되어보이십니다.

 

"저희 할아버지 작년에 100세셨어요. 큰 잔치를 했지요...ㅋ"

"오! 그러세요! 저 100살 넘으신 분 첨 만나요. 영광이에요...^^"

"하하하... 참, 미야자키로 해서 아오시마에 가신다구요. 그럼 저의 고모가 한 분 그곳에서 여관을 하고 계세요. 아오시마에서 제일 큰 호텔 바로 옆이라 찾기 쉬우실 거예요. 적어드릴게요... 하지만 고모는 영어를 잘 못하세요."

"그러시면, 도쿠나가상 저의 일본여행 서바이벌을 위해, 저랑 손잡고 함께 가셔야겠는데요..."

"하하하... 참, 그리고 아오시마에 가시면 꼭 日向夏라는 과일을 드셔보세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인데요... 으음... 뭐랄까? 아무튼 오렌지 비슷한 거예요. 꼭 먹어보세요. 전 시럽에 찍어 먹는 걸 특히 좋아하죠."

"일향하 이름이 너무 재밌어요. 일본사람들은 이름 만드는 데 감각이 있는 거 같아요. 해  바라기 여름이라 해석해도 되나요? 과일이름치고 꽤나 서정적이잖아요. 맛이 정말 궁금한데요."

 

 12시 6분에 오이타에 도착한 후 안내판을 보니, 12시 10분에 바로 미와자키 행 열차가 온다 합니다. 반사적으로 뛰어 겨우 기차에 올라탔어요. 사실 다음 기차를 기다려도 괜찮을 것도 같았지만, 왠지 좀 서두르는 편이 나을 거 같더군요.

 

 창가에 따스한 햇살에 한쪽 볼이 뜨뜻해옵니다. 달콤한 낮잠을 청해봅니다. 잠이 잘 올 거 같네요. 입안에서 혼잣말을 중얼거려봅니다...

 

 '해 바라기 여름... 그곳이 이 여행의 마지막 종착점이 되겠구나...'


#일본여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