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곡성 5일장을 찾은 여수매영답사회원들. 곡성장은 오는  9월이면 새단장된 곳으로 이사를 가게되지만 국밥집이 유명해 기차마을과 연계해 먹거리 장터로 보존할 계획이다.
 곡성 5일장을 찾은 여수매영답사회원들. 곡성장은 오는 9월이면 새단장된 곳으로 이사를 가게되지만 국밥집이 유명해 기차마을과 연계해 먹거리 장터로 보존할 계획이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장날은 장이 지닌 외형적인 모습뿐 아니라 그곳에 모이는 사람들, 소소한 일에 감사하며 미소 짓는 이웃의 모습이 있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에 의하면 순조 30년(1830년)에 5일 마다 열리는 장시가 905개 소가 있었다. 허나 젊은이들이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현재의 시골 5일장 모습은 휑한 모습이 대부분이다. 도시화와 산업화에 밀려 축소되고 간신히 명맥만 유지되고 있다.  

장터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기능만 한 것은 아니다. 5일에 한 번씩 사람들이 모이는 특별한 공간으로 타인과의 만남, 지역간의 교류, 정보 교환이 이루어지는 소통의 공간이다. 할일이 없어도 갓 쓰고 장터에 나가는 이유다.

김병호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에 의하면 조선시대에는 부보상이라 불렸던 장사치들이 일제강점기 이후 '보부상'이라 불렸다. 보는 보따리 장사를 의미하며 부는 등짐장사를 뜻한다. 이들은 상단을 형성하여 엄격한 규율과 막강한 조직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 부설 매영답사회 일행 50여 명은 토요일 아침 일찍 여수를 떠나 목적지인 구례에 도착했다. 광의면 수월리에 있는 지리산야생영농조합에서 야생화를 구경하고 곧바로 구례장에 들렀다. 남도의 장타령에는 구례와 곡성장이 이렇게 묘사됐다. 흥을 돋우기 위해 지역의 이름을 빗대어 재미있게 묘사한 내용이다.

구례 구례 구례장 구린내 나서 못가겠네
아이고 데고 곡성장 서러워서 못가겠네

 40년째 농기구를 만들고 있는 할아버지의 대장간
 40년째 농기구를 만들고 있는 할아버지의 대장간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2대째 튀밥집을 운영해 오십년쯤 됐다는 아주머니가 튀밥을 튀기는 순간
 2대째 튀밥집을 운영해 오십년쯤 됐다는 아주머니가 튀밥을 튀기는 순간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현재의 구례장은 깨끗한 기와집으로 새 단장을 했다. 장을 보러 나온 할머니들에게 물었다.

"할머니 옛날에는 냄새가 많이 났다는데요?"
"옛날에는 배수가 잘 안돼 지저분하고 냄새가 났는데 3년 전에 군수가 지붕을 고치고 주차장도 만들어 이제는 깨끗해졌지."

기계화가 됐지만 아직도 잔손질과 인습에 절은 노인들이 가끔씩 농기구를 찾기 때문에 철물을 만든다는 대장간 할아버지는 40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쌀과 잡곡을 파는 할머니가 일곱 평쯤 돼 보이는 가게에서 혼자 하품이다.

 강심과 이뇨작용 및 풍습통에 좋다는 '부자' - 맹독성이 있어 잘못 먹으면 큰일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강심과 이뇨작용 및 풍습통에 좋다는 '부자' - 맹독성이 있어 잘못 먹으면 큰일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할머니 장사가 신통찮은가 봐요? 연세가 몇이고 장사 시작한지 얼마나 됐습니까?"
"항정업제(한정없지). 내 나이가 얼매나 들어 보이요? 젊어서 시작해 새끼들 다 갈치고 묵고 살았응깨. 젊은 사람들은 다 올라가 불고 늙은이들만 남았어. 놀기는 그렇고 심심헌깨 이렇게 나오제"   

지리산을 둘러싸고 있는 구례장은 한약재가 많이 나온다. 항암제로 쓰인다는 겨우살이, 상황버섯, 독성이 있어 잘못 사용하면 큰일 난다는 부자, 산더덕, 산도라지 등 이름 모를 약초들이 즐비하다.

한 바퀴 도는 데 튀밥 튀는 소리에 발걸음이 끌렸다. 과자는 돈이 없어 못 사먹고 노인당에 있으면 심심해 나눠 먹으려고 나왔다는 할머니가 먹어보라며 떡가래 튀김을 한 주먹 쥐어준다.

튀밥 튀기는 사람은 남자가 아닌 나이든 아주머니다.

"아주머니 몇 년째 튀밥을 튀깁니까?"
"모르겠어요. 2대째니까 한 오십년 됐나?"

튀밥 튀길 때 뻥 소리와 동시에 튀밥을 받아내는 긴 망태같은 걸 들어봤다. 한 10킬로쯤 될 것 같다.

"아주머니 안 무거우세요? 그리고 이거 이름이 뭡니까?"
"무거워 죽겄어. 쓰개."

"쓰게요? 쑤개요?"하며 몇 번이나 물어봤지만 처음 들어본 이름이라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아마 뚜껑이 열리는 순간 튀밥이 날아가지 않도록 씌운다는 뜻에서 '쓰개'가 맞는 명칭인 것 같다.

구례장을 구경하고 일행은 곡성장으로 떠났다. 김두한이 나오는 '야인시대'의 배경으로 나왔다는 곡성장은 옛날 원형을 거의 보존하고 있다. 시커멓게 변한 스레트 지붕이며 군데 군데 파란 천막으로 덮인 어물가게 들은 옛날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옛날 모습이 그대로 남아 영화 '야인시대'의 배경이 됐다는 곡성장 입구
 옛날 모습이 그대로 남아 영화 '야인시대'의 배경이 됐다는 곡성장 입구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점심시간이 넘었는데도 맛이 있어 사람들로 가득한 국밥집
 점심시간이 넘었는데도 맛이 있어 사람들로 가득한 국밥집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구례에서 일정이 늦어져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임에도 국밥집은 자리가 없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며 소주잔 부딪히며 호기롭게 얘기하는 모습들. 자리가 없어 길가에 간이 탁자에 앉아서 어린아이들까지 맛있게 먹는 모습에 배고팠던 어릴적 모습이 다시 생각난다.

40년째 국밥집을 한다는 주인아주머니는 기름 값이 비싸 장작을 때기도 하지만 밥이 훨씬 맛있단다. 아니나 다를까 밥도 찰지고 콩자반, 파김치, 총각김치, 파래, 젓갈, 구수한 콩나물, 시래기 국 등 반찬이 열 가지다. 손님이 많아 정신이 없는 가운데도 "부족하면 밥 더 드세요"하는 주인아주머니 말씀은 역시 시골 인심이다.

마음씨 좋은 인상으로 가게 앞에 철물을 내놓고 파는 임금택(65세)씨는 2대째 철물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시장에 있는 가게는 5일에 한 번씩 열지만 손님이 없어 요즘 장사가 어떤지를 물었다. 

 2대째 철물점을 운영한다는 주인이 들어보이고 있는 것은 6~7십년대 사용한 일종의 수동식 양수기다. 양쪽에 달린 고리에 줄을 달아 두 명이서 한조가 되어 논에 물을 퍼 올리는 기구. 오른쪽 끝에는 지게가 보인다.
 2대째 철물점을 운영한다는 주인이 들어보이고 있는 것은 6~7십년대 사용한 일종의 수동식 양수기다. 양쪽에 달린 고리에 줄을 달아 두 명이서 한조가 되어 논에 물을 퍼 올리는 기구. 오른쪽 끝에는 지게가 보인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옛날에 농사를 인력으로 할 때는 괜찮았는데 기계화가 되고 젊은 사람들이 떠나고 나서는 장사가 안돼요. 농촌이 살아야 도시 사람도 먹고 살텐데 농촌이 너무나 빈한해요. 다른 물가는 다 오르는데 농산품 가격만 옛날 그대로니 시골이 발전할 수가 없죠."

한쪽에 놓인 지게를 보고 물었다.

"지금도 지게를 찾는 사람이 있습니까?"
"석유 값이 비싸져 산에 올라가 나무하려는 사람이 가끔 찾기도 하지만 축제에 전시용이거나  장식품으로 사갑니다."

곡성시장도 올 9월이면 깨끗하게 단장된 시장으로 옮길 예정이다. 군에서는 현재의 장터를 보존해 기차마을을 찾는 관광객들과 옛날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위해 먹을거리 장터로 변신할 예정이다.

기차마을로 유명한 섬진강변을 따라가다가 압록에서 보성강쪽으로 방향을 틀어 4킬로쯤 가다보면 태안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아기자기한 국도를 따라 5분쯤 더 가면 오른쪽에 폐교를 개조해 만든 섬진강문화학교가 나온다. 이 학교의 교장이 김종권씨다. 교장이지만 학생은 없고 방문객이 학생이다.  

독도가 다께시마라고 부르며 일본땅임을 주장한 날부터 그는 수천 장의 독도사진을 찍다가 독도에서 추락해 죽음에서 부활했다. 어려서부터 여행을 좋아해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직업과 연결돼 대학 강단은 물론 동호회원들을 지도했다. 2007년 1월 일기가 고르지 않은 가운데 독도의 비경을 촬영하다 강풍에 날려 바위에서 추락해 24바늘이나 꿰매는 부상을 입으며 죽었다 살아났다.

 태안사 가는 길 폐교를 활용해 섬진강문화학교를 연 김종권씨. 36년 동안 한국의 비경 사진을 찍었다.
 태안사 가는 길 폐교를 활용해 섬진강문화학교를 연 김종권씨. 36년 동안 한국의 비경 사진을 찍었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김종권씨의 남도사진 전시회에 걸린 작품들
 김종권씨의 남도사진 전시회에 걸린 작품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사진은 '찍었다'와 '찍혔다'가 문제라는 그는 '찍었다'는 심안으로 사물을 봤느냐의 문제이며, '찍혔다'는 사물을 눈으로만 봤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산중에 살다 보면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겨울이 너무 길어요. 어쩔 때는 하루 종일 개하고만 대화를 해 거지라도 찾아왔으면 해요. 학교를 운영하는 데 드는 전기료를 감당 못 할 정도로 어려워질 때는 돈을 좀 벌어놓을 걸 그랬나 했다가도 장사꾼 안 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독도 사진을 찍을 때 국정원에서 헬기를 내줬는데 장사꾼한테 헬기를 내주겠어요. 소장하고 있는 사진은 1/200의 일도 안 돼요. 소장한 필름을 1컷에 만원만 받으면 아마 30억 정도 될 겁니다."

일행은 동리산에 자리한 태안사에 들렀다. 태안사는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3호로 신라 경덕왕 원년(724)에 동리산파를 일으켜 세웠던 혜철스님이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에는 대안사로 불렸으며, 우리나라 불교의 구산선문 중 하나인 동리산파의 본산지이다. 선암사·송광사·화엄사·쌍계사 등을 거느려 꽤 오랫동안 영화를 누렸던 사찰로 조선시대에는 효령대군이 머물며 왕가의 온당으로 삼았다.

 우리나라 불교 구산선문 중 하나인 동리산파 본산지인 태안사. 6.25동란 중 소실됐다가 복원됐다.
 우리나라 불교 구산선문 중 하나인 동리산파 본산지인 태안사. 6.25동란 중 소실됐다가 복원됐다.
ⓒ 오문수

관련사진보기


입구에는 한국전쟁 당시 곡성 사수를 목표로 인민군과 격전 끝에 장렬히 전사한 48명의 경찰 영혼을 달래기 위한 충혼탑이 있다. 태안사는 여순사건과 한국전쟁 시 적군과의 접전지인 관계로 많은 목조물이 소실되었으나 복원됐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한 참가자에게 둘러본 5일장의 의미에 대한 소감을 들었다. "시골장이 옛날 같지 않고 쇠퇴해가는 모습에 마음이 안 좋아요." 옆에 있던 김태성씨의 얘기다.

"구례에 비해 곡성 장터가 원형을 보존하고 있어서 좋았지만 현대화 바람에 밀려 이사를 가야하는 게 마음이 아픕니다. 시설의 현대화라지만 시골 장터는 장터만이 갖는 고유함과 정통성이 있죠."

덧붙이는 글 | 남해안신문에도 송고합니다



#5일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육과 인권, 여행에 관심이 많다.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랐을까?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