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 길 이름없는 묘지 가에 할미꽃 몇 송이 피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노라 살며시 눈인사 건네더니 산 사람도 쉽사리 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렵다는 이 지상에 나처럼 늙어빠진 할미가 아등바등 살아보겠노라 이토록 넓은 방 한 칸 차지하고 들어앉은 것 같아 미안하다고 깊숙이 고개 떨구었습니다
이 땅이 아무리 투기로 넘쳐나기로서니 이 너른 천지 간에 할머니같이 작은 꽃 몇 송이 피어날 땅 몇 평이야 없겠냐고 봄바람에 자릴 내주고 북쪽으로 가던 수 천 년 늙은 하늬바람이 슬쩍 위로의 말 몇 마디 들려주고는 종종걸음쳐 저 멀리 사라져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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