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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바닷가에서 조개를 줍는 아내.
바닷가에서 조개를 줍는 아내. ⓒ 송성영

"더 이상 궁상맞게 못살겠어!"

"나가라구? 그래 좋아 나간다! 툭 하면 화만 내구, 나도 이제 지긋지긋하다."

그 말을 내뱉기가 무섭게 짐 보따리를 챙겼습니다. 소박맞은 여편네처럼 옷가지에 취사도구까지 챙겼습니다. 아내는 방안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꼼짝하지 않습니다. 이사라도 가듯 책을 비롯한 온갖 짐 보따리를 바리바리 챙겨 자동차 가득 옮겨 싣고 홧김에 전기밥솥도 챙겼습니다.

자동차 키를 돌려 시동을 거는 순간, '난 이제 자유다' 홀가분할 것 같았는데 자동차 뒤칸에 실린 짐 보따리의 무게가 온몸으로 실려 왔습니다. 내가 자동차를 끌고 가고 있는지 자동차가 나를 끌고 가는지, 그저 길 닿는 대로 어디론가 끝없이 떠나고 싶습니다.

"소박하게 사느니 어쩌니, 더 이상 궁상맞게 못살겠어.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돼! 세탁기 돌릴 물도 부족하고, 누구는 비데 쓰고 있는데 겨울에는 엉덩이 시렵고, 여름에는 똥물 튀기는 화장실은 또 어떻고."

시골 생활 12년째, 시골에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아내가 반기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살아온 나날들을 몹시 억울해했습니다. 자신의 존재감이 고집불통 남편의 생활방식에 억눌려 왔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인효 엄마도 여기 생활이 좋다고 했잖아,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고…."
"그게 다 인효아빠 주변 사람들이잖아."
"그게 어째 내 주변 사람들이라고만 할 수 있는 겨, 그럼 그분들이 싫어?"
"아니 싫다는 게 아니고, 내 맘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잖아."
"맘대로 못하는 게 뭐가 있다구 그랴, 하고 싶은 거 다하잖아, 아이들 그림 가르치고 또 그림 그리고 싶으면 얼마든지 그릴 수 있고."

"아무튼 내 맘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어. 나도 이제 중고차라도 한 대 있어야겠어."
"지금 무슨 소리하고 있는 겨, 우리가 차가 없어? 차가 왜 더 필요해! 그건 절대 안돼!"
"펑펑 놀구먹구 하는 여자들도 다 끌고 다니는데 내가 왜 필요 없어? 애들 가르치러 다니는데. 인효아빠가 차 끌고 방송국 나가면 나는 어떻게 학교 다니라구."
"아니, 내가 차를 한 달에 몇 번이나 끌고 다닌다구 그려, 만약 중고차 사면 알아서 혀, 그날부터 방송 원고 쓰는 거 그만 두고 농사만 질테니께."
"아이구, 말이 안 통해 말이. 이것봐 내가 맘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다니까. 당신하고 얘기하면 복장 터져 죽겠어."

아내는 두 군데의 초등학교를 오가며 방과 후 학습 지도교사로 일하고 또 면소재지에 있는 노인회관 한 켠을 빌려 그림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그날 자동차가 없어 춥고 배고픈 상태에서 어두운 시골 길을 터덜터덜 걸어오다가 화가 치밀어 올랐던 모양입니다.

왜 그렇게 갑자기 돌변했을까? 마흔 살 후반으로 접어 든 아내. 아내가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화를 자주 낸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갱년기 현상일 것이라 합니다. 달거리가 불규칙적으로 찾아온다는 아내의 몸 상태를 놓고 보면 갱년기 현상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고맙다는 말은 못할망정 그게 무슨 말이야?"

하지만 열이 오르락내리락 한 상태에서 화 기운을 참지 못하는 갱년기 현상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또 다른 원인이 있었습니다. 아내가 나에 대한 불만이 쌓이기 시작한 것은 우리 집 뒤편으로 호남고속철도가 지나간다는 황당하고도 느닷없는 소식을 접할 무렵이었습니다. 보상금 한 푼 없이 이사 가야 할 것을 고민하고 있는데 아내가 큰 걱정 없이 그랬습니다.

"걱정 말어."
"그려, 까짓 거. 그냥 어디 빈집 찾아가 수리해서 살믄 되겠지 뭐."
"우리 돈 있어."
"무슨 돈?"
"그동안 모아 놓은 돈이 있어."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아내는 수천만원의 돈을 모아 놓았던 것입니다. 아내는 시골로 들어와 10년 넘게 아이들 그림 지도를 해 왔는데 그 돈을 꼬박꼬박 모아왔던 것입니다. 먹을 거 입을 거 아껴가며 한 달에 2,30만원씩 남몰래 저축을 해 왔던 것입니다. 나는 그때까지 우리 집 전 재산이 통장에 찍혀 있는 일이백만 원이 전부인 줄만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에게는 분명 엄청나게 큰돈이었습니다. 내심 아내가 고마웠습니다. 하지만 내 입에서는 엉뚱한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습니다.

"아무 데나 가서 살믄 돼지, 그걸 뭘 모아놨어. 사람들 한티 돈 없이 산다고 했는디, 그동안 거짓말하고 살아온 줄 알것다."    
"그게 뭐 어때서? 사람들 시선이 그게 그렇게 중요해?"
"아니 그게 아니구, 좀 그렇잖어."
"고맙다는 말은 못할망정 그게 무슨 말이야?"
"고맙지, 고맙지만…."
"에이, 알았어, 인효 아빠는 꼭 저렇다니까, 사람 속 뒤집어 놓고."
"나는 그냥, 괜히 돈 때문에 욕심만 생길 거 같구 해서…."
"뭐라구! 그게 말이라고 하는 소리야? 이게 어떻게 모은 돈인데 욕심이라니, 내 참 기가 막혀서."  

아내는 입을 닫았습니다. 뒷수습을 해보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쥐뿔도 가진 것 없으면서 똥배짱이나 튕기는 남편이 한심했을 것입니다. 그 돈을 모아온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못하고 괜한 욕심만 생긴다고 했으니 아내의 심정이 오죽했겠습니까?

아내는 사소한 말끝에도 버럭버럭 화를 냈습니다. 힘든 시골생활 마다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만 해도 고마운 아내였기에 끊임없이 다가갔습니다. 하지만 곁에 다가가는 것조차 귀찮아했습니다. 결혼 전에 꿈꾸었던 인도 여행까지 권유했지만 그조차 내키지 않아했습니다. 아내의 화 기운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처음 시골에 정착하면서 그랬던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싸움질을 했습니다.

싸움이 벌이지면 세 치 혀끝으로 싸우는 격투기 선수들 같습니다. 아내가 가볍게 잽을 날리면 한두 차례 피하다가 나 역시 견디지 못해 받아치기 잽을 가볍게 날립니다. 그러다가 서로 스트레이트를 날리게 되고 둘 중 하나가 정통으로 얻어맞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싸움판이 벌어지게 됩니다. 결국은 되돌릴 수 없는 심한 말까지 내뱉게 됩니다. 

부부싸움, 말로 한다지만 완전 격투기네!

 갱년기에 접어든 아내는 스스로 탈출구를 찾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
갱년기에 접어든 아내는 스스로 탈출구를 찾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 ⓒ 송성영

싸움의 규칙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링 밖에서도 싸웁니다. 과거에 어쩌니 저쩌니 해가며 치사한 반칙까지 동원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미 게임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쯤 되면 아내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덤비고 나는 몇날 며칠 코너에 몰려 얻어맞고 있어야 합니다. 두 손 들고 반성해도 소용없습니다. 아내는 쉽게 용서하는 법이 없습니다. 며칠 내내 화를 냅니다. 아내의 화를 견디지 못해 내가 다시 화를 냅니다. 다시 싸움이 시작됩니다.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인효 아빠는 없이 사는 게 좋은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제 싫어. 인효아빠도 이제 돈 좀 더 벌어."
"별로 쓰고 싶지도 않은 방송원고 써가며 꼬박 꼬박 생활비 벌어 오고 있잖아."
"한 달에 한 번? 그게 버는 거야! 얼마든지 더 벌 수 있잖아."
"내가 덜 버는 만큼 누군가 더 벌겠지, 그렇다고 그동안 빚 한 푼 진 거 없고 또 생활비 없어 밥 못 먹은 적 없잖어."

"만날 빈둥빈둥 놀고만 있으면서."
"빈둥빈둥 놀고 있다구? 돈이 안돼서 그렇지 농사짓는 일이 노는 것은 아니잖어."
"에이그, 그것두 농사라구…."
"무슨 소리여? 내가 즐겁게 농사짓고 있으니께 빈둥빈둥 노는 것처럼 보이지 자연농으로 농사지면 남들보다 두 배, 아니 세 배, 네 배 이상 힘들게 일하는 거라구. 그런 건강한 먹을거리들은 돈 많은 부자들도 못 먹을걸?"   

"애들도 커가는 데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그래?"
"갑자기 왜 그려. 이때까지 별 걱정 없이 잘 살았잖어, 뭐가 걱정이여?"
"인효 아빠는 그런 답답한 생각을 바꾸고 돈벌이를 좀 더 해야 해."
"아파트 살 때처럼 돈 버는 일에 죽어라 매달리며 살 수는 없어. 나를 바꾸라구? 그럼 그건 내가 아니지."
"제발 좀, 집에서만 빈둥거리고 있지마! 보기 싫어 죽겠어!"
"뭘 자꾸만 빈둥거린다구 그려. 그렇게 보기 싫으면 내가 나가지!"

가출 사흘째, 맘씨 좋은 선생님 손에 이끌려 아내에게 돌아가다

신경이 날카로워진다는 갱년기에 접어든 아내를 이해하지 못하고 사흘 걸러 한번씩 싸웠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집을 뛰쳐 나왔던 것입니다.

일단 남쪽으로 내달렸습니다. 지리산 골짜기라도 찾아 들어가 한동안 토굴생활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지리산은 몸과 마음이 뒤틀려 있는 나를 사정없이 내쳤습니다. 언 땅에 텐트를 쳐놓고 침낭 하나로 버텼지만 젊디 젊은 시절하고는 생판 달랐습니다.

하루 만에 짐 싸들고 지리산을 빠져나와 여기 저기 아는 사람들을 만나 동거식 서가숙 싸돌아다녔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면 웃는 얼굴을 내보이고 있었지만 자식들이 보고 싶어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습니다. 아내와 함께 했던 즐거운 일만을 떠올리려 애썼지만 버럭 버럭 화 내는 아내를 생각하면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끔찍했습니다. 가출 사흘째. 경북 영천까지 흘러 들어갔습니다. 영천에서 천연염색하시는 김정화 선생을 만났습니다.

"이제 그만 들어가요, 너무 오래 있으면 집에 들어가기도 쉽지 않아요. 혼자 들어가기 힘들면 내가 같이 가 줄게요."

결국 흉허물 없이 지내는 김 선생의 손에 이끌려 못이기는 척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세상 물정 모르고 가출한 청소년이 뒤늦게 후회하고 맘씨 좋은 선생님 손에 이끌려 학교로 돌아가듯 말입니다. 아내는 가출했다가 돌아온 나를 따뜻하게 반겼습니다. 그런 아내가 고마웠습니다.

그 후 아내는 소설 쓰는 강병철 선배의 도움으로 일주일에 사흘씩 공방일을 거들기 위해 교육연구소에 출근하면서 활기를 되찾아 나갔습니다. 화 기운에 찌들려 있던 얼굴색도 달라졌습니다. 그랬습니다. 아내에게는 당장 그 어떤 새로운 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갱년기의 아내에게 특효약은 새로운 일에 몰두하는 것이었습니다.

뒤돌아 보면 내게 큰 충격을 던져주었던 시골생활을 후회한다는 식의 말이나 자동차 구입 문제는 아내에게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시골생활에 큰 불만이 없고 본래 아끼고 재활용해가며 사소한 물건 하나 허투로 쓰지 않던 아내였으니까요. 아내의 난데없는 욕심은 현실적인 욕심이 아니었습니다. 흔히들 갱년기 여성들에게 찾아온다는 우울증, 그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싶은 그저 탈출구에 불과한 바람 같은 것이었습니다.

나는 아내가 출근하는 날이면 저녁밥을 해놓고 기다립니다. 오늘은 뜰팡에 앉아 있다가 문득 처마 끝에 곱게 핀 수선화를 봅니다. 몇 년 전 아는 스님의 절에서 수선화 몇 뿌리를 가져와 아내의 외양간을 고쳐 만든 화실 앞에 옮겨 심었는데 내내 꽃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그걸 작년 가을 볕 좋은 뜰팡 아래로 옮겼는데 올해 처음으로 꽃을 피운 것입니다.

"내 하소연을 그냥 들어줬으면 좋겠어"

 수선화
수선화 ⓒ 송성영

요즘 아내 얼굴은 수선화를 닮았습니다. 제 자리를 찾은 수선화처럼 밝게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저녁 밥을 해놓고 기다리면 퇴근하고 돌아온 아내는 미안해하고 고마워합니다. 웃는 얼굴을 내보입니다. 웃고 있으니 더 이상 서로 화낼 이유가 없습니다. 서로를 바꾸라고 강요하지 않으니 대화도 매끄럽습니다. 말 많은 큰 아이 인효 녀석이 샘을 낼 정도입니다.

"아, 뭐야. 요새 왜 이렇게 서로 좋아진겨?"
"아빠가 죽어 살기로 했다, 자식아!"

농담 삼아 던진 '죽어 살기로 했다'는 말끝에 학교 다닐 때 배웠던 프랑스의 시인 랭보인가 보들레르인가의 시구절이 떠오릅니다. 그 시는 이렇게 시작하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마누라가 죽었어 난 이제 자유야.'

시구절이 지닌 의미는 다르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이 구절을 인용해 요즘 아내의 성질이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나는 자유다' 라고 말합니다. 아내의 화 기운이 죽었기에 자유롭다고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내가 죽은 것이 아니라 내가 죽은 것입니다. 고집불통의 내가 죽었기에 자유로운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아내의 갱년기는 고집불통인 나를 바라보게 해주었고 아내를 좀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는 폭을 넓혀 준 것입니다. 서로의 불뚝 성질이 언제 다시 불같이 살아날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서로가 자유롭습니다.

"내 하소연을 그냥 들어줬으면 좋겠어."
"얼마든지 들어주겠는데 자꾸만 화 내면서 말하니께 그게 쉽지 않다구."
"또 그러잖아, 그냥 듣기만 하라니까."
"그려 그려, 알았어."


#갱년기#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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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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