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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아홉 식구가 된 가족

 

.. 6ㆍ25 때 형이 전사하면서 아홉 식구가 된 가족 ..  《에드워드 김-그때 그곳에서》(바람구두,2006) 22쪽

 

 '전사(戰死)하면서'는 "싸움터에서 죽으면서"로 다듬거나 '죽으면서'로 다듬습니다.

 

 ┌ 가족(家族) : 부부와 같이 혼인으로 맺어지거나, 부모ㆍ자식과 같이 혈연으로

 │   이루어지는 집단

 │    - 가족을 부양하다 / 잃어버렸던 아이가 열흘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

 ├ 아홉 식구가 된 가족

 │→ 아홉 식구가 된 우리

 │→ 아홉 식구가 되었고

 │→ 아홉이 된 식구

 │→ 아홉이 된 우리 식구

 │→ 아홉이 된 우리 집안

 └ …

 

 "아홉 식구가 된 가족"으로 적으면서 어딘가 얄궂다고 느끼지 못했을까요. "아홉 식구"라고만 하든지 "아홉 식구가 된 우리"라 하든지 "우리 식구는 아홉이 되었다"라 해야 올바릅니다. 글쓴이가 엉뚱하게 적은 이런 보기글은, 책으로 묶어내는 출판사에서 고쳐 주어야 할 텐데, 미처 마음을 쏟지 못한 탓인지, 못 보고 지나쳤는지…….

 

 ┌ 가족을 부양하다 → 식구를 먹여살리다

 └ 가족 품으로 → 식구 품으로 / 우리 품으로

 

 한편, '식구'와 '가족' 모두 한자말이지만, '식구'는 따로 한자를 밝히지 않으면 널리 쓰는 토박이말이고, '가족'은 일본사람이 쓰면서 우리한테 스며든 일본 한자말입니다. 이제는 워낙 널리 쓰이게 된 '가족'이고, '식구'는 쓰임새가 줄어들고 있으니 뒤집어졌습니다만, 이런 말뿌리를 곰곰이 헤아려 보기도 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쓰니 '더 많이 쓰는 말'을 써야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옳지 않은 힘으로 옳지 않은 권력을 부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여, 이런 옳지 않은 모습을 '옳게' 받아들일 수 없는 노릇이에요.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아야 하듯 잘못된 말씀씀이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잘못 이루어지는 사회 경제 문화 교육 모두 올바르게 추슬러야 하듯, 잘못 굴러가는 말과 글이 모두 올바로 자리잡도록 힘을 쏟아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즐거운 길을 찾고 싶기에, 그리고 우리 아이들한테 즐거운 길을 이어주고 싶기에, 세상 흐름이며 말 흐름이며 바르고 곧고 아름다운 데로 나아가도록 마음을 쏟습니다.

 

 

ㄴ. 푸른빛과 녹색으로 물든

 

.. 캐나다 북방의 야생 지대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푸른빛과 녹색으로 물든 황야를 떠올릴 때 ..  《어니스트 톰슨 시튼/장석봉 옮김-다시 야생으로》(지호,2004) 290쪽

 

 '황야(荒野)'는 '벌판'이나 '허허벌판'이나 '거친 들판'으로 다듬어 줍니다. "캐나다 북방(北方)의 야생(野生) 지대(地帶)"는 "캐나다 북쪽 들판"으로 손질하면 어떠할는지.

 

 ┌ 녹색(綠色) : 파란색과 노란색의 중간 색

 │   - 짙은 녹색 / 아이는 녹색 물감으로 나뭇잎을 색칠하였다

 │

 ├ 푸른빛과 녹색으로 물든 황야

 │→ 푸른빛으로 물든 벌판

 │→ 푸르게 물든 거친 벌판

 │→ 푸르디푸르게 물든 허허벌판

 └ …

 

 일본 한자말 '녹색'이 우리 말 '풀빛'을 가리키는 줄 모르는 사람이 제법 됩니다. '풀빛'과 '푸른빛'은 같습니다. 그리고,

 

 ┌ 풀 + 빛

 └ 綠(푸를 녹) + 色(빛 색)

 

 '녹색'을 차근차근 뜯어 보아도 "푸른 빛깔"을 일본사람들이 '綠色'이라는 낱말로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 따지고 보면 '綠色' 앞에 '草'라는 한자를 붙인 '초록색'도 '풀빛'을 가리키는 한자말일 뿐입니다. 우리 말은 '풀빛'이거나 '푸른빛'이에요.

 

 그렇지만, 이런 말씀씀이를 살필 줄 아는 지식인이 너무 없는 우리 나라입니다. 이런 말짜임을 꼼꼼히 살피고 헤아릴 줄 아는 슬기로운 사람이 너무 드문 우리 나라입니다. 이런 말틀을 가만히 돌아보며 받아들일 줄 아는 생각있는 사람이 너무 적은 우리 나라입니다.

 

 환경과 생태를 생각한다는 사람부터 '푸름'과 '풀빛'이 아닌 '초록'과 '녹색'을 말합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그린'을 외칩니다. 처음부터 이제까지 '푸름-풀빛'이 한 번도 뿌리를 내리거나 가지를 뻗은 적이 없습니다. 진보든 보수든 개혁이든 수구든 우리 말로 우리 생각을 담아내며 우리 글로 우리 일거리를 펼쳐 보이는 적이 없습니다.

 

 ┌ 푸름 / 풀빛 (o)

 ├ 녹색 / 초록 (x)

 └ 그린 (x)

 

 그나저나, 보기글에서는 왜 같은 빛깔말을 두 차례 적었을까요. 힘주어 말하고 싶어서? 둘이 다른 낱말인 줄 알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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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중복표현#우리말#한글#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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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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