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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하는 사람은 '사진말'을 나눕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자전거말'을 나눕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사랑말'을 나눌 테지요. 저는 책을 읽는 사람이라서 '책말'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오늘부터 한 주에 한 번씩, 열두 가지 토막글로 '책말로 책한테 말 걸기'를 해 봅니다. 제대로 말걸기가 될는지, 앞으로 꾸준하게 말걸기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더딘 걸음이라 할지라도 꿋꿋하게 걸으면서 500가지 토막글 '책말'을 펼쳐 보일 수 있다면, 그지없이 고마운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 글쓴이 말)

 

 

(001) 우리 마음을 괴롭히는 책 : 우리 마음을 괴롭히고 들쑤시는 책이 좋다고 느낀다. 그저 쉽게 듣고 훌렁훌렁 보아넘기는 책은 그다지 좋지 않다고 느낀다. 가만가만 곱씹고 오래도록 되씹을 수 있는 책이 좋다고 느낀다. 밥은 씹어야 맛이고, 책은 차분히 씹고 삭여서 똥으로 누어야 제맛이 아니냐고 느낀다.

 

(002) 훌훌 넘기는 책 : 씹지 않고 훌훌 넘기는 밥 때문에 밥통이 얹힐 때가 있다. 씹지 않고 훌훌 넘기는 밥은 그냥 똥으로 주루룩 나온다고 느낀다. 씹지 않고 훌훌 넘기는 책 때문에 머리통이 지끈거릴 때가 있다. 씹지 않고 훌훌 넘겨 버린 책 때문에 그예 사람들 입이나 손을 거쳐 지식쪼가리가 날것 그대로 툭툭 내뱉듯 떨어져 나오지 않느냐고 느낀다.

 

(003) 마음을 따뜻하게 다스리는 책 : 밥 한 그릇 먹으면 몸이 따뜻해진다. 밥 한 그릇 비우는 만큼 몸이 튼튼해진다. 책 한 권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책 한 권 받아들이는 만큼 마음도 튼튼해진다.

 

(004) 헌책 사도 될 책을 새책으로 사니 아깝지 않니? : 방송국 피디가 묻는다. "새책으로 샀는데, 이렇게 헌책방에서 헌책으로 만나면 아깝지 않으세요?" 피식 웃으면서 내가 대꾸한다. "어차피 사려고 한 책이기 때문에 헌책으로 값싸게 살 수 있던 책을 새책으로 사는 일은 하나도 아깝지 않아요. 저는 책을 사서 읽는 사람이지, 새책이나 헌책을 싸구려 물건으로 사들이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좀더 싸게 살 수 있다면 그런 대로 좋을 수 있겠지만, 싸게 사서 좋을 뿐이지, 마음에 드는 좋은 책을 사고 마음에 드는 좋은 책으로 제가 아름다워져서 좋은 일이 아니니, 그런 일은 따지지 않습니다. 책이면 그냥 책일 뿐입니다."

 

(005) 길을 밝히는 책 : 우리 세상에서 몸과 마음 모두 참되게 가꾸며 걸어갈 길은 쉬 찾기 어렵다. 참다운 삶을 가꾸는 길은 거의 안 뚫려 있기 마련이다. 쉬 뚫려 있지 않은 참된 길이라, 이런 길을 밝히는 책을 애써 읽어도 속시원히 풀이법을 못 찾기 마련이다. 그래서 참되게 가는 길을 밝히는 책을 구태여 안 읽으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느냐 싶다. 그렇지만 그 어느 일이 손쉽게 풀리기만 하는가. 그 어떤 일을 부딪침 없이 이루어 내든가. 벽을 허물거나 가시밭길을 헤쳐나가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얻을 수 있는 솜씨가, 가꿀 수 있는 재주가 있겠는가. 참된 마음을 골고루 나누려는 마음 지긋이 품고 차근차근 길을 가다 보면 길은 저절로 나타나거나 보이거나 뚫리거나 열리리라 믿는다. 뭐, 안 열리면 어떤가. 내가 그 길을 걸었으면 그렇게 걸은 일만로도 흐뭇한데.

 

(006) 밥 한 그릇과 책 한 권 : 밥 한 그릇 차리는 데엔 수많은 사람 땀방울과 품과 시간이 든다. 그런데 밥 한 그릇 차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땀을 흘리고 품을 들이고 시간을 바치는가를 제대로 읽어내는 사람이 드물다. 그래서, 사람들은 밥 한 그릇을 아주 손쉽게 재빨리 비우기는 하면서도, 누구한테 고마워해야 할지를 모르지 않느냐 싶다. 책 한 권 엮어내어 세상에 내놓기까지 참으로 많은 사람 땀방울과 품과 시간이, 게다가 돈까지 많이 든다. 그런데 책 한 권이 세상에 태어나 새책방 책꽂이에 꽂히기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곰곰이 읽어내는 사람이 얼마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책 한 권을 아주 손쉽게 재빨리 읽기는 하면서도, 책에 담긴 빛줄기와 열매를 제대로 받아먹지 못하곤 한다. 그 좋은 보람을 제 삶으로 녹여내지 못한다. 그 훌륭한 책을 수없이 읽고도 제대로 몸으로 옮기는 일이란, 그러니까 실천으로 세상 이웃과 나누는 일이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저 다들, 빨리빨리 밥그릇 비우고, 빨리빨리 책을 덮어 버리고 만다.

 

 

(007) 어디에 새겨 놓을 말인가 : 내 나름대로 생각하기에, "책이란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아주 멋지게 풀어냈다고 생각한 글을 어느 책 귀퉁이엔가 적었는데, 도무지 어느 책에 적었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한참 이 책 저 책 뒤적이다가 짜증이 나고, 짜증이 커지다가 두 손을 들고 만다. 참 바보 같다. 아니, 바보다. 그렇게 멋지고 훌륭한 말이라면 책에 적을 노릇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담거나 머리속에 새겨 놓아야 하지 않았나? 그래서, 언제라도 떠올리고 어느 때라도 되씹으면서 내 삶을 돌아보고 내 둘레에 있는 사람들한테 나누어 줄 수 있게 말이다. 혼자만 꽁하니 간직하려고 끄적끄적한 탓에 나 스스로 일군 좋은 열매를 나 스스로 내팽개치고 만 꼴이다. 더없이 어리석다.

 

(008) 사람은 똥공장 : '사람은 똥공장이라, 부지런히 똥 만들려고 일하고 밥을 먹는다'고 어느 시골 할머니가 말했다. 그러면 책은 무엇일까? 왜 있을까? 좀더 나은 똥을 만드는 기름칠인가? 구린내나는 똥을 만드는 구역질인가?

 

(009) 책에 담을 이야기 :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 생각뿐 아니라, 지식뿐 아니라, 삶과 슬기까지 담아야 비로소 책다운 책 하나 만들 수 있겠지.

 

(010) 땀과 책 1 : 언제나 바지런히 힘쓰고 움직이고 일하는 사람들이 쓴 책은 우리 마음을 깨우고 머리를 열어 주는 큰 울림을 선물해 주기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이 쓴 책이라면 날마다 꾸준히 읽어서 내 삶을 가꾸어도 좋다. 아니, 늘 곁에 두면서 나날이 읽고 새기고 뉘우쳐야겠지. 나는 날마다 내 어리석음을 잊어버리니까. 내 못남을 잊으니까. 내 어설픔을 돌아보지 못하니까.

 

(011) 밥 같은 책 : 우리는 질리지도 않고 날마다 밥을 먹는다. 열 번 스무 번이 아닌 십만 번 백만 번을 먹는다. 그렇다면, 열 번 스무 번이 아니라 날마다 읽고 또 읽는 데에도 질리지 않는 책이 있을까? 있다면 어떤 책이 밥과 같을까? 누구한테나 소담스럽다면 누구한테도 소담스럽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 어느 한편으로는 옳다고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말장난이 아니랴 싶다. 그렇다면 날마다 먹는 밥은 날마다 먹지 않아도 되는 밥이란 소리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날마다 읽어도 흐뭇한 책은 날마다 안 읽어도 된다는 소리로 들리기 때문이다. 어쩌면, 날마다 읽어야 할 책이라면 날마다 안 읽고 날마다 그 책대로 살아내면 되지 않느냐는 뜻이 담겨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밥 안 먹고 살 사람이 누구인가. 밥을 몸에 집어넣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나는 내 몸과 마찬가지로 내 마음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 마음이 날마다 새힘을 얻을 수 있게끔 꾸준하고도 한결같고도 끝없이 새로운 책을 내 마음한테 밥으로 삼아서 먹인다. 날마다 몇 권씩 새책을 새밥 삼아 먹인다. 밥처럼 소담스러운 책이요, 책처럼 소담스러운 밥이다. 밥처럼 반가운 옆지기요, 옆지기처럼 반가운 밥이다. 밥처럼 고마운 내 삶이며, 내 삶처럼 고마운 밥이다. 내가 생각하기로, 날마다 밥을 먹는 사람이라면 날마다 책을 읽어야 한다고 본다. 날마다 책을 읽는 사람은 날마다 밥을 먹는 매무새로 날마다 온몸 부대끼면서 우리 세상을 알차게 가꾸는 일에 나서야 한다고 느낀다. 밥 다르고 책 다르지 않으며, 몸 다르고 마음 다르지 않다. 왼손이 가니 오른손도 가는 일이요, 왼손과 함께 오른손이 함께 움직이는 일이다. 늘 곁에 두고 즐기는 밥처럼 늘 얼싸안고 즐기는 책이며, 늘 돌아보는 우리 이웃이고 늘 어깨동무할 우리 삶터라고 본다.

 

(012) 읽을거리와 꾸밀거리 1 : 읽는 사람이 쥐어드는 책은 가볍다. 값싸다. 그러나 책꽂이를 꾸미는 책은 무겁다. 비싸다. 읽는 책 가운데에도 두께가 만만하지 않고 무거운 종이를 쓰고 사진과 그림 많이 넣어 비싼 책이 있을지 모른다만, 이런 책은 돈셈으로나 비싸지, 담긴 알맹이를 헤아리면 값싸게 엮인 책이 아니랴 싶다. 글쓴이와 책 엮은이가 흘린 땀방울을 헤아리면 값싼 책이다. 이리하여, 우리들 두 손에 쥐어들도록 하는 '읽을거리'라 한다면, 마땅히 가볍고 값싸게 만들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한다. 좋은 읽을거리이면서 좋은 꾸밀거리가 될 수 있겠다마는, 알알이 훌륭하고 속속들이 거룩한 책이라 한다면, 애써 책이 되어 준 고마운 나무님 넋과 얼을 돌아보면서 다문 종이 한 장이라도 아끼거나 덜 쓰려는 매무새로 책을 만들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한다. 사람들이 더 잘 알아보도록 만지고 손질하는 일은 틀림없이 해야 한다만, 지나친 겉꾸밈이나 겉차림을 한다든지, 군더더기 같은 띠종이를 여러 겹 매단다든지 하면서 자꾸자꾸 '읽을거리'에서 '꾸밀거리'로 탈바꿈하지 않게끔 다스려야 하지 않느냐 생각한다. 우리들은 집안을 아름다이 꾸미려고 책을 만들거나 사거나 읽지 않는다. 뭐, 이제는 돈이 넘쳐나서 집안을 아름다이 꾸미고자 책을 장만하기도 할 테지만, 책이란 처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또 앞으로도, 마음을 가꾸려고 읽는다고 생각한다. 마음밥 책이지 책꽂이밥 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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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책읽기, #책, #책이란, #책삶, #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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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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