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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참 바쁜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방과 후에는 아이들과 함께 생태교육을 하러 현장을 찾아다녔다. 대안교과모임에도 참여하고, 녹색연합 등 NGO 활동도 활발하게 했다. 방학 때도 각종 모꼬지와 기행, 회의들을 하느라 집에 붙어 있는 날이 별로 없었다. 나를 만나 결혼하고 아기를 갖기 전까지 그랬다는 말이다.

난 결혼해도 아내가 그렇게 바쁘게 지낼 거라 생각했다. 저녁과 주말에도 일이 있으면 불려 나가는 내 직업 특성(인터넷 신문 기자) 때문에, 아내가 분주하게 지내는 게 은근히 좋았다. 내가 가정에 소홀한 것이 그렇게 덮일 수 있을 것 같아서. 아내는 기대와 달리 가정적인 사람이었다. 늘 나보다 먼저 집에 와서 기다렸고, 주중에 하루 정도는 함께 저녁식사를 하자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다.

결혼하면 왜 '쪼잔'해질까

그렇지만, 아내의 소박한 바람은 현실이 되지 못한 채 첫째 아이 출산을 맞았다. 난 아내 생일에도 출장을 갔다. 입덧으로 고생하던 시절, 아내는 나와 함께 마을에 있는 중국집에서 우동을 먹고 싶다고 한 적 있다. 무슨 이유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난 일을 핑계로 아내를 홀로 식당에 보냈다. 아내는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 설움을 쏟아낸다. 아마 평생 들어야 할 거라고 누군가 일러주었는데, 그때는 설마 싶었다.

나에게도 할 말은 있었다. 겨우 시간을 내면 꼭 아내에게 다른 일이 생겼다는 '머피의 법칙'을 제시한 적도 있고, 연애 기간도 짧았고 연애 경험이 없어서 이성을 대하는 법을 잘 모른다고 '경험부재론'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결혼한 지 두 달 만에 갑작스럽게 아이가 생겨 준비가 덜 됐다는 '환경결정론'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결국은 미안하다는 소리인데, 아내에게는 변명으로 들리게 만드는 '능력'을 발휘했다.

가끔 구석으로 몰릴 때면, 고양이에게 반항하는 쥐처럼 버럭 대들기도 했다. "넌 칼퇴근하는 공무원이라 일반 직장에 다니는 사람 처지를 이해하지 못해. 6시든 7시든 바로 나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말이 많아질수록 '쪼잔한' 인간성만 드러낼 뿐이었다.

"그동안 있었던 일은 다 잊을게"

아내와 딸들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늘 돌아보게 된다. 그 때마다 결론은 '미안하다'는 것으로 맺어진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세 여자를 제대로 처다보기는 힘들 것 같다.
아내와 딸들아내에게,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늘 돌아보게 된다. 그 때마다 결론은 '미안하다'는 것으로 맺어진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세 여자를 제대로 처다보기는 힘들 것 같다. ⓒ 주재일
하여튼 일거에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첫째를 출산할 때 아내 곁을 지켰다. 조산사 지도를 받아 아내 팔다리를 주무르며 힘내라고, 잘하고 있다고 응원했다. 내 노력이 기특했는지 아내는 아이를 낳고 나서 나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은 다 잊을게"라고 말했다. 내 귀를 의심했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내가 너를 찍었다는 말(아내가 나에게 프러포즈할 때 쓴 멘트)보다 더 짜릿했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여세를 몰아 한 달간 육아휴직하면서 아내를 보필했다(고 말하면 아내가 화낸다). 회사 대표와 협상 끝에 3개월이 3분의 1 토막 났지만, 작은 회사 최초로 남자가 육아휴직을 했다는 자부심이 컸다. 그 다음이 문제였지만. 한 달 동안 회사에 나가지 않은 것은 좋았는데, 집이 회사였다. 밤늦도록 회사에서 지시한 일을 하다가 아침에 늦게 일어났고, 피곤에 찌든 채 하루를 보냈다. 아내는 자다 말고 책상에 앉아 있는 내 뒤통수에 대고 화를 냈다.

"차라리 회사 가라. 인간아."

덕분에 어렵게 들었던 선언도 한 달 만에 폐기되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바쁘게 뛰어다녔다. 사나흘 걸리는 출장을 몇 번 갔고, 외국으로 취재를 다녀온 적도 있다. 만나기로 약속했다가도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일터로 간 적도 있다. 해외 출장을 갈 때는 예약 문자 서비스로 매일 아내에게 내 마음을 날렸지만, 그 정도 노력으로는 아내 불만을 날리지 못했다. 쌓인 게 좀 많아야 날아가지.

"앞으로 몇 년을 이리 살아야 하나"

둘째를 임신했을 때 아내 얼굴은 기쁨과 시름으로 뒤섞였다. 원하던 아이가 생겨 행복했지만, 점점 세상에서 고립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이가 하나일 때도 저녁 시간을 내서 누군가를 만나는 게 힘들었는데, 둘이라면? 상상만으로도 힘 빠지는 상황이었으리라. 그토록 열심을 내던 활동을 접은 채 2년 가까이 보냈고, 이제는 하루하루 학교에서 아이들 만나는 것도 버거워 하는 찰나에 또 몇 년을 더 고립되어 살아야 하다니.

일을 쉬면 모르지만, 일을 하면서 동료들 사이에서 유령처럼 지내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다. 아내는 그 흔한 회식이나 토론 모임에도 나가지 못했다. 아이에게 젖을 줬기에 밖에서 음식을 사먹지 않았지만(점심도 도시락을 쌌다), 내 일정과 겹쳐서 아이를 봐야 할 때도 많았다. 아내가 별다른 압력을 가하지 않았음에도, 나 스스로 결단해야 할 시점이 오고 있다는 걸 느꼈다.

"좋아. 우선 1년 휴직할게. 첫째 때처럼 집에서 일하지도 않고, 온전히 너와 딸들에게 헌신한다!"

나를 비롯해 상당수 남자들은 한 방에 의존한다. 자기가 4번 타자나 골잡이라고 착각한다. 한 방이 헛방이 되기도 하지만, 설령 터졌다고 해도 여자들은 시큰둥할 때가 많다. 여자들은 발 빠른 1번 타자나 부지런하게 뛰는 박지성 같은 미드필더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결혼 6년차 수준에서 드는 생각은.

난 자유의 몸이지만... 아내는 여전히 묶인 몸

자는 아빠와 딸들 아내는 이렇게 자고 싶었다. 그렇지만 5년 동안 두 딸 젖 먹이며 자느라 밤이 편하지 않았다. 언제쯤 아내도 편하게 자려나.
자는 아빠와 딸들아내는 이렇게 자고 싶었다. 그렇지만 5년 동안 두 딸 젖 먹이며 자느라 밤이 편하지 않았다. 언제쯤 아내도 편하게 자려나. ⓒ 주재일

호기롭게 시작한 육아 생활은 처음부터 만만치 않았다. 내가 먹어봐도 맛없는 미역국을 한 솥 끓여주었고, 매일 똑같은 반찬(콩나물무침이나 시금치무침 따위)만 대령했고, 특별요리 만든다고 부엌에만 처박혀 있다가 구박을 받기도 했다. 어느 날은 주부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고 집안일을 거부한 적도 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지금 나는 '자유'의 몸이다. 과거 일터로 복귀하지 않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다. 나만의 시간이 생기면, 맘껏 내 일을 즐긴다. 그렇지만 아내는 자기 시간에도 머리와 신경의 반쪽은 집에 놓고 간다.

그렇다고 내가 아예 육아에서 손을 뗀 것은 아니다. 주중 이틀씩 아내와 나눠 저녁 시간에 아이들을 본다. 아이들에게 월요일과 수요일은 '엄마날'이고, 화·목요일은 '아빠날'이다. 금요일은 '다같이 날'. 나름 잘 해주는 것 같은데, 아이들은 자꾸 언제가 엄마날이냐고 물어본다.

다섯 살, 세 살배기 딸들을 데려와 씻기고 저녁밥을 먹인 뒤 이야기책을 읽어준 후 재우면 된다. 보통은 10시 전후, 늦어도 11시면 아이들은 곯아떨어진다. 재운 뒤 일해야겠다고 다짐하는 나도 같은 신세가 되기는 하지만.

아내도 나와 비슷한 시간 동안 아이를 보지만, 엄마는 아빠와 처지가 다르다. 특히 아직 젖을 떼지 않은 둘째는 자다가 깨면 엄마를 찾는다. 덕분에 아내는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는 날에도 멀리 가지 못한다. 지금은 익숙해져서 아내를 호출하는 일이 없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전화를 수시로 했다. 미안한 마음이 드는데, 예상 시간보다 늦게 와서 아이가 많이 울면 좋은 낯으로 아내를 맞이하지 않았다.

아이 보느라 나도 힘들었는데 늦게 들어온 아내가 "왜 빨래는 널지 않았느냐", "설거지 좀 해놓지", "방이 왜 이리 지저분해" 같은 말을 하면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곤 금방 후회할 소리를 입 밖으로 내고야 만다.

"나도 너희처럼 푹 자고 싶다"

며칠 전, 둘째가 몸이 좋지 않아 새벽까지 보채며 젖을 물고 있었던 적 있다. 꼭 그런 날은 첫째도 엄마 곁에서 징징거린다. 아빠에게 오라고 어떤 말로 유혹해도 엄마 품을 더 파고들 뿐이다. 아내가 우리에게 던진 한마디가 아직도 내 귀를 윙윙거린다.

"난 5년 동안 똑바로 누워 잔 적이 한 번도 없어. 나도 너희들처럼 어디 한번 편하게 자보고 싶다."

시키지 않았는데도 아내 다리 쪽으로 기어갔다. 그리고 퉁퉁 불어있는 아내 종아리를 주물렀다. 보통 때는 퉁명스럽게 "됐어" 하는데, 그날은 아무 말 없이 모로 누워 젖을 물렸다.


#육아#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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