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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화 피고지는 섬마을에
 철새따라 찾아온 총각선생님
 열아홉 살 섬 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떠나지 마오

이미자의 애절한 이 노래 '섬마을선생님'이 눈앞에 선합니다.  내가 이 노래를 처음 들은 지가 40년이 넘었나봅니다. 그런데도 이 노래가 지금껏 선한 이유는 아마도 같은 제목의 영화 주제가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섬마을선생님'이 개봉된 해가 1967년이니까 내가 이 영화를 본 것은 그 후 몇년이 지나서였을 것입니다.

60년대 농촌에는 가끔씩 마을 공터에서 포장을 쳐 놓고 상영하는 낡은 영화가 거의 유일한 문화행사였습니다.  그 시절 동네에 영화가 들어오면 해가 어스름 넘어갈 무렵 가설극장에서는 마이크시험을 몇번 끝낸 연사가 심파조로 연설합니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고 사랑하시는 00면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밤 여러분을 모시고 상영할 영화는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

이 방송이 나오기 시작하면 어린 우리들은 물론 어른들까지도 마음이 달뜹니다. 동네 사람들은 이른 저녁을 먹고 공터 포장친 가설극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정작 영화 볼 돈이 없는 아이들은 마음만 달떳지 입장료가 없어서 포장 밖에서 안달하며 서성거릴뿐입니다.  포장 안에서 들려오는 영화 장면 소리만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영화가 거의 끝날 무렵 포장을 걷으면 그때 끝부문만 조금 보는 것으로 만족 해 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 학교운동장에서 포장을 치지 않고 무료로 상영하는 영화가 들어온 것입니다. 그 영화가 바로 '섬마을선생님'이었습니다. 면(面)에서든가 군(郡)에선가에서 지원해 상영하는 무료영화인 것입니다. 그때 처음부터 끝까지 본 몇 편 안되는 영화 중 한편이 바로 이 '섬마을선생님'이었습니다. 영화는 비오는 것처럼 필림이 낡았지만 참 재미있었습니다. 거기에다 이미자의 주제가가 어린 가슴에도 더욱 애절하게 남았습니다.

40여년 전의 이런 추억을 새로게 떠올리며 마치 그 시절 가설극장에서 노래가 나오면 어린 가슴 울렁이듯 '섬마을선생님'의 그 섬마을을 가게되었습니다.  

3월 7일 <섬을 걷다>(홍익출판사)의 저자인 강제윤 시인과 문화계인사 30여명이 함께 그 섬 '이작도'를 갔습니다.

 큰마을로 가는 길
큰마을로 가는 길 ⓒ 민종덕

이작도는 인천 연안부두에서 오후 2시 쾌속선을 타고  약 1시간 10분가량 가야 합니다.
대이작도와 소이작도로 나뉘어진 섬에 우리는 대이작도에 내렸습니다. 이작도의 주산인 부아산에 올랐습니다.  해발 159미터의 산 정상에 오르면 주변의 섬들이 발아래인듯 보입니다.

소이작도 부아산에서 바라본 소이작도
소이작도부아산에서 바라본 소이작도 ⓒ 민종덕

승봉도 부아산에서 바라본 승봉도
승봉도부아산에서 바라본 승봉도 ⓒ 민종덕

손가락 바위 소이작도에 있다
손가락 바위소이작도에 있다 ⓒ 민종덕

부아산에서 내려와 삼신할머니 약수터와 장승공원을 거쳐 작은풀안 해수욕장 근처 숙소에 짐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큰풀안 해수욕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이른 봄이어서 그런지 드넓은 모래벌 해수욕장은 텅 비어있습니다.  다정스런 연인들이 영화 장면처럼 거닐법도 한데 말입니다. 철 이른 해수욕장이 텅 비어있는 까닭이 계절 탓만은 아닌것 같습니다.  경제 불황은 봄날도 비켜가지 못할것 같습니다. 

큰풀안 해수욕장 모래사장이 부드럽다
큰풀안 해수욕장모래사장이 부드럽다 ⓒ 민종덕

해가 넘어가는지도 모르고 부드러운 모래를 밟으며 마냥 거닐었습니다.  해가 꼴딱 넘어가고 나서야 배고픔을 느껴 서둘러 식당으로 왔습니다. 저녁을 싱싱한 해물과 특히 '가시랭이'라는 나물로 맛나게 먹었습니다.  '가시랭이'는 미나리가 나오기 전에 나오는 나물로 봄향기가 진하더군요.

강제윤시인 섬을 낭독하고 있다.
강제윤시인섬을 낭독하고 있다. ⓒ 민종덕

"대륙이 하나의 섬인 것처럼 아무리 작은 섬도 섬은 그 자체로 하나의 대륙이다. 곁에 있어도 같은 섬은 없다. 오랜 세월 섬마다 고유한 문화와 전통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외래문물의 유입으로 많은 섬들이 원형질을 잃어가고 있다. 나는 멀지 않은 시간에 이 나라 대부분의 섬들이 사라질 것을 예감한다. 이미 많은 섬들이 육지와 연결되었다. 다리가 놓이면 섬은 더 이상 섬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배를 타고 섬으로 가는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끝내는 소멸해 버릴 섬들, 섬의 풍경들, 그 마지막 모습을 포획하기 위해 다시 섬으     로 간다."(강제윤 <섬을 걷다> 서문에서)

저녁을 먹고 우리는 파도소리가 들리는 바닷가 비닐하우스에서 낭독회를 열었습니다. 낭독은 강제윤시인이, 노래는 가수 박강수씨 그리고 '섬과 대륙'에 대한 강의는 건축가 이일훈씨가 했습니다.

지난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으나 다음 날 이른 아침에 모두들 일어났습니다.  아침 물때에 맞춰 풀등에 가기 위해서죠.

풀은 우리 말로 모래라는 뜻이랍니다. 그러니까 풀등은 모래등이라는 말과 같은 뜻인가 봅니다.  풀등은 하루에 두번 썰물때 바다 속에 모래등이 드러나는 것을 말 하는것인데 이곳 풀등은 '사리'때면 동서 2.5키로미터 남북 1키로미터의 모래평원이 펼쳐진다고 합니다. 이 풀등을 강시인은 '바다의 오아시스'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런 '바다의 오아시스'를 토건업자들이 여기 모래를 퍼다 팔아먹어 그 면적이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이곳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이 풀등을 더이상 훼손하지 못하도록 지키고 있답니다.    모든 인류가 대대로 누려야할 아름다운 자연도 업자들은 돈벌이 대상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은가 봅니다.    

민박집 '삼촌'얘긴데 어떤 손님은 풀등에 골프채를 가지고 가서 바다를 향해 골프공을 신나게 치더랍니다. 그래서 그 '삼촌'은  그 골프손님한테 오시지 마라고 했답니다. 골프공을 바다에 마구 쳐 버리면 바다는 어떻게 될까요.

풀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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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종덕

풀등을 다녀와 늦은 아침을 먹고 '섬마을 선생님' 촬영지였던 계남분교로 향했습니다. 계남분교는 바닷가 언덕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보니 참 평화롭고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보니 학교는 오래전에 폐교가 되어 낡고 삭아서 애잔함을 더 합니다.  아무리 폐교라도 누가 관리를 했으면 이정도는 아닐텐데...... 가슴이 시려오는듯 합니다.

계남분교 바닷가 언덕에 자리잡은 학교
계남분교바닷가 언덕에 자리잡은 학교 ⓒ 민종덕

계남분교 학교는 폐교된지 오래다
계남분교학교는 폐교된지 오래다 ⓒ 민종덕

그 예쁘고 순박한 열아홉 섬 색시는 이제 막 밭일을 시작하는 저 아주머니쯤 아닐까 상상 해 봅니다.  그렇다면 그 멋쟁이 총각선생님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요.

 봄을 일구는 아주머니. 그때 열아홉살 색시가 이쯤 되었을까?
봄을 일구는 아주머니. 그때 열아홉살 색시가 이쯤 되었을까? ⓒ 민종덕

초등학교 3학년때 '섬마을 선생님' 영화에 출연했었다는 58년생 김유숙씨를 만났습니다. 김유숙씨는 그때 영화촬영 이야기를 하면서 마냥 즐거운 표정입니다. 늙은 모습으로 남은 섬에 그래도 김유숙씨의 웃음이 있어 파릇파릇 새봄이 가까워지는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떠나고 난 섬에는 이제 조금 있으면 온갖 꽃들이 피어나겠지요. 그 가운데 해당화도 활짝피겠지요.

김유숙씨 섬마을 선생님 영화촬영 시절을 얘기하면 마냥 즐겁다.
김유숙씨섬마을 선생님 영화촬영 시절을 얘기하면 마냥 즐겁다. ⓒ 민종덕


#이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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