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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어느날, 울산 동구 한 초등학교 1학년 2반 교실에 덩치 큰 다른 반 아이가 나타났다.

싸움 잘하는 아이로 소문난 김대장(가명)이다. 대장이는 남의 반에 들어와 반 아이들을 툭툭 치는가 하면 큰 소리로 윽박질렀다.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된 막내 아들 박창수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된 막내 아들 박창수 ⓒ 박석철

대장이의 이런 행동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2반 아이들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대들지 못했다. 하지만 몇 몇 아이들은 책상에 앉아서 응징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

며칠 뒤 쉬는 시간, 김대장이 다시 2반에 들어와 예의 같은 행동으로 2반 아이들을 주눅들게 만들었다. 교실에 앉아 있던 한 아이가 대장이에게 "운동장으로 나가자"고 말했다. 한판 붙자는 얘기다.

덩치도 작은 아이가 대장이와 사라지자 걱정스럽던 2반 다른 한 아이도 이 둘을 따라 운동장으로 나갔다. 철봉과 그네가 있는 운동장 한 켠에서 세 아이가 서로를 노려 봤다. 대장이에게 먼저 도전한 아이는 걱정이 돼서 뒤따라 나온 아이,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대장이의 싸움 실력에 아이는 얻어터질 수밖에 없었다.

이때 처음 결투를 신청한 덩치 작은 아이가 대장이에게 "나랑 붙자"고 말했다. 동시에 이 아이는 대장이의 배를 주먹으로 가격하고 발로 찼다. 싸움 잘하는 대장이도 속수무책이었다. 철봉과 그네에서는 다른 아이들이 이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쉬는 시간이 끝났다는 종이 울리자 대장이가 "내가 졌다"고 말하면서 싸움은 끝났다.

1학년 2반 두 아이는 교실로 돌아오면서 "반 아이들에게는 말하지 말자"고 약속했다. 그 뒤 김대장이의 2반 출입이 줄어들더니 간혹 찾아오더라도 전과 같은 행동은 하지 못하고 말없이 있다 돌아가곤 했다.

칭찬은 했지만 걱정이...

2009년 3월 7일 저녁. 아내가 일터로 나간 터라 두 아들에게 저녁을 차려주던 나는 올해 초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간 막내 박창수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식사 전 컴퓨터를 하던 창수가 "아빠의 이메일 아이디가 왜 '정의'냐"고 물었고, 내가 "정의롭진 못하지만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기 위해 '정의'로 정했다"고 말하자 이같은 6~7개월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술술 털어놓기 시작했다.

다소 키가 작고 약해 보이는 창수인지라 사실 초등학교 입학을 하면서 걱정을 많이 했다. 혹시 왕따라도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많은 부모들이 이런 걱정을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6개월 전에 있었던 이 이야기를 듣고 아이를 안아주지 않을 수 없었다. 창수의 이어지는 이야기는 "대장이를 응징하기 위해 혼자 연습을 많이 했다. 하지만 반 친구들에게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창수는 "같은 반 친구 상민이가 걱정이 돼서 같이 나가 주었고, 먼저 대장이에게 도전한 것에 고마웠다"고 말했다.

내가 "겁은 나지 않았냐, 왜 이런 이야기를 지금 하냐"고 묻자 "겁나지 않았다. 아빠가 칭찬 할 것도 같고 또 혼낼 것도 같아서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솔직히 기뻤다. 다른 아이와의 싸움에서 이겨서가 아니라, 이제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들이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흐뭇했다. 몇 번을 안아주고 칭찬했는지 모른다.

두어 시간 뒤 아내가 돌아왔다. 흥분 돼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내게 아내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창수에게 "다음부터 싸우면 안돼"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내게는 "그런 일로 자꾸 칭찬하면 아이가 이상하게 되지 않겠느냐"며 핀잔을 줬다.

아내의 말에 내가 너무 흥분한 것 아닌가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조금 더 이성을 갖고 이번 일을 생각해보고 싶었다. 혹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 아이에게 그 때 상황을 몇 번이고 더 물었다. 하지만 일관된 이야기로 보아 창수의 행동은 사실인 것 같았다.

일단, 이 이야기는 우리 가족끼리만 알고 덮어두기로 했다.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한 큰 아들 창진이가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오는 권상우와 똑같다"고 말했다. 2004년 상영한 영화로 15세 이상 관람가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혹시 창수가 이번 일을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고 흉내낸 것은 아닐까? 하지만 우리 가족이 인터넷 TV로 이 영화를 본 것은 2008년 12월, 가족이 함께 이 영화를 보다 나 혼자 잠들어버렸던 기억이 났다.

다음날인 8일 점심을 먹던 우리는 함께 모여 권상우가 나오는 말죽거리 잔혹사를 인터넷 TV로 감상했다. 하지만 영화 중반에 야한 장면이 나와 창수의 눈을 손으로 가렸다. 창수도 겸연쩍었던지 이 부분에서는 스스로 이불을 뒤집어 썼다.

격한 폭력 장면이 수시로 등장해 초등학교 2학년에게 보여줄만한 영화는 아니었다. "그래 아이들의 일은 아이들의 일, 너무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말자"고 영화를 보면서 나는 되뇌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한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용기가 부러워 자꾸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의를 위한다'며 내가 쓴 기사에 달리는 비난댓글 하나에도 두려워했던, 소신 없었던 내 용기가 자책스럽기도 하고...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시사울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박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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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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