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금은 새벽 4시 5분.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각이지만 어제 마음이 많이 설레었던 탓인지 오늘은 조금 일찍 눈이 떠졌구나.

그런데 오늘 새벽 4시 5분에 눈이 떠진 것이 아무래도 우연한 일은 아닐 성싶다. 네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였지 싶구나. 난 매일 같이 새벽 4시에 일어나 너의 방에 들어가곤 했었지. 그리고는 곤히 자고 있는 너를 품에 안고 이렇게 첫마디를 건네곤 했었어.

"사을아, 5분 뜸들이는 시간이네."

그러면 넌 내 품에서 5분 동안 뜸을 들인 뒤, 너 스스로 부스스 일어나 공부를 시작하곤 했었지. 그 덕분에 너는 매일 아침 "공부하라!"라는 말이 아닌 따뜻한 아빠의 품으로 오라는 사랑의 언어를 들을 수가 있었지. 학원 문턱에 가본 적 없어도 네 스스로 하는 그 아침 공부만으로도 좋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고 말이야.

난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 대신 '사랑하라'는 말을 자주 하는 편이란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아이들이 자기 꿈을 가꾸기는 어려울 테니까. 또한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 사랑의 크기에 합당한 실력과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될 테니까 말이지.

중요한 것은 '사랑하라'는 말보다 사랑의 실천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일 거야. 누군가에게 지극한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이 참 좋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인식해야 사랑을 꿈 꿀 수 있을 테니까. 바로 너처럼!

오늘은 네가 음악교사로서 첫 교단을 밟는 날! 여는 해 같았어도 긴 방학을 끝내고 새로 만날 아이들에 대한 설렘으로 일찍 눈이 떠지곤 했겠지만, 오늘은 첫 교단에 서게 될 너의 설렘까지 합해지다보니 조금 더 이른 시각에 잠에서 깨어난 것 같구나.

며칠 전에 네가 내게 들려준 음악이 생각난다. 아이들을 만나면 먼저 이 음악을 들려주고 음악 이야기를 서로 나누면서 아이들과의 첫 만남을 시작할 거라고 했었지. 그 말을 듣고 드디어 네가 교단에 서게 된다는 사실을 실감하기도 했단다.

네가 음악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들려줄 음악을 생각했듯이, 영어 교사인 나는 최근에 읽은 영문판 <교사의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에서 따온 몇 구절을 마음에 새겨놓고 있었단다.

I touch the future, I teach.
(나는 미래를 만진다. 나는 가르친다.)

One mark of a great educator is the ability to lead students out to new places where even the educator has never been.
(위대한 교육자의 한 가지 증표는 교육자 그 자신조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새로운 곳으로 아이들을 이끄는 능력이다.)

One of the most important things a teacher can do is to send the pupil home in the afternoon liking himself just a little better than when he came in the morning.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학생이 아침에 학교에 왔을 때보다 다만 조금이라도 더 자기 자신을 좋아하게 하여 오후에 집으로 보내는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꿈 이야기를 하면서 새 학기를 시작하곤 한단다. 그런데 꿈 이야기는 거창할수록 하나마나한 이야기가 되기 십상이지. 특히 세계에서 최고가 되라는 식의 비현실적이고 허황된 꿈 이야기는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아이들을 도와주는 일이라고 난 생각해.

학교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최고가 될 수 없는 보통 아이들이 더 많으니까 말이지. 그리고 굳이 최고가 되어야만 행복한 것은 아닐 테니까. 바로 나처럼.

그럼 이런 꿈 이야기는 어떨까?

"제 꿈은 저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 자신이 싫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별 것 아닌 것을 과장하여 말하거나, 나를 과시하기 위한 말을 많이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거울 속에 비치는 제 모습이 참 싫습니다. 그래서 제 꿈은 저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런 꿈 때문인지 요즘은 제가 좋을 때도 많습니다.

내가 나를 좋아하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나를 좋아하기 위해서는 나를 가꾸어야 합니다. 게으르고 불성실한 내가 좋아질 리는 없으니까요. 저는 여러분이 아침에 학교에 왔을 때보다 다만 조금이라도 더 여러분 자신을 좋아하면서 오후에 집으로 갔으면 합니다. 그런 기분 좋은 경험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나도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만날 준비를 해야겠구나. 너에게 편지를 쓰느라 아침 공부를 빼먹고 말았지만 함께 사랑과 꿈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그것이면 족하다 싶구나. 그래. 교단에 서 있는 동안 결코 잊지 말거라. '사랑과 꿈', 가파른 현실을 핑계 삼아 그 아름다운 이상을 쉽게 포기하지 말거라.

사랑한다. 그리고 네가 꿈꾸던 음악 선생님이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제 나의 동료가 된 나의 아들아!


#사랑의 교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