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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 사건'을 두고 말들이 많다.

 

전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의 최측근이었다가 지난 대선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을 도왔다. 전 의원에게 약이 오른 박근혜 팬클럽이 총선 때 낙선운동을 할 정도로 그의 배신은 박근혜 지지층을 격분케 했다.

 

전 의원의 블로그에는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리라는 것도 인터넷논객 미네르바가 아마추어라는 것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는 자랑이 올라온다. 그러나 그의 '예언'은 사건의 무게 중심이 어느 정도 기울어진 후에야 발표되곤 했다.

 

5년 전 야당 대변인 시절에는 "수와 힘만으로 밀어붙이라고 협박하는 일은 조직폭력배의 사회에서도 흔한 일이 아니다"고 여당을 몰아세웠다가 여당 의원이 된 후에는 "김형오 국회의장이 국민의 뜻에 따라 결단해야 한다"고 직권상정을 압박하는 사람이 전 의원이다.

 

'고졸 대통령', 'DJ 치매' 발언 등 물의를 일으킨 발언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입이 화를 자초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포털에 의한 공작과 허위사실 왜곡으로 수많은 원폭투하를 받았다"고 엉뚱한 핑계를 대는 게 전 의원이다.

 

1989년 동의대 사건 등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 결정의 재심을 가능케 하는 법안을 이번에 마련한 것도 그렇다. 동의대 사건은 권위주의가 팽배했던 노태우 정권 시절에 공권력과 언론이 일심동체가 돼 법원 판결과 국민 여론을 일방적으로 몰아간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화염병을 던진 대학생들이 민주화 유공자라면 이들을 진압하다가 죽은 경찰관들은 뭐냐"고 핏대를 세우기에는 사건의 성격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느낌이다.

 

물리력을 내세울 권리는 없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누구도 물리력으로 전 의원을 해칠 권리는 없다.

 

우리는 비난을 쏟을 상대를 찾게 되면 '매 맞아 마땅한…', '광화문 네거리에서 XX을 시켜도 시원치 않은…'이라는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쓴다. 가상현실에서 쏟아지는 육두문자들이 현실세계의 긴장을 완충시키는 기능을 한다면 다행이지만, 갈등을 격화시키고 더 큰 싸움으로 이끈다면 법이 존재할 필요도 없는 게 아닐까?

 

민가협 회원들이 국회에서 전 의원과 마주친 상황에서 그를 밀치는 대신 몇 마디 쏘아붙이고 보내주는 게 맞지 않았을까?

 

전여옥 사건을 '해프닝'으로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유는 지난주 유사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보수논객 조갑제씨의 강연장에서 '안티이명박' 카페 회원이 연단을 향해 쓰레기통을 집어던지는 일이 있었다. 다행히 조씨는 쓰레기통에 맞지 않았고, 보수와 진보 양측단체 사람들이 '가벼운' 몸싸움과 욕설을 주고받는 선에서 사건이 일단락됐다.

 

그러나 조씨나 보수단체 회원들이 크게 다쳤다면 진보진영 전체가 '폭력의 방아쇠를 당겼다'는 비난을 뒤집어썼을지 모른다.

 

조씨를 '응징'하려고 한 사람은 "시민들이 분노를 감추지 말고 더러운 무리를 징벌해야 한다"고 자신의 행동을 변호했다. 그는 "지난해 청계광장에서 뉴라이트가 맞불집회 하는데 시민들이 시위용품과 전단지를 빼앗고 그들을 두들겨 내쫓았다"는 얘기를 자랑스럽게 하기도 했다. 그는 조씨의 강연장 바로 밑층에서 열린 진보단체 행사에 참석했는데, 그의 경솔함을 공개적으로 나무라는 이가 없었다.

 

대화와 설득이라는 민주주의의 본령

 

하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이 같은 행동의 옳고 그름은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야당의원이 보수단체 회원에게 멱살을 잡히고 진보논객의 강연장에서 보수단체 회원이 오물을 뿌렸을 때, 우리 사회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넘어간다면 결코 '균형 잡힌 사회'로 평가될 수 없을 것이다.

 

혹시 진보진영이 소중히 여겨온 '사상과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를 스스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깎아 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보수진영의 주장은 하나같이 터무니없다"는 편견에 사로잡힌 나머지 대화와 설득이라는 민주주의의 본령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닐까?

 

전 의원이 아무리 밉든 곱든 "나는 당신이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 말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라는 볼테르의 말은 그에게도 어김없이 적용될 것이다.


태그:#전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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