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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극도로 의기소침해 있던

 

.. 이때 조선을 방문한 야나이하라는 시골 국민학교에서 조선인 스승과 조선인 아동들이 조선말 아닌 일본어를 주고받는 것을 보고 저들의 가슴 속은 얼마나 슬픔에 잠겨 있을까 싶어 눈물을 흘렸다는 일본의 대표적 양심 있는 지식인이다. 중일전쟁을 반대하다 동경대학을 쫓겨난 석학으로 마지막 고별 강연회 자리에서 일본이 전쟁에 져야만 평화가 오고 아시아 민족이 구원을 얻는다고 대담한 내용의 강연을 한 것은 누구에게나 다 알려진 이야기다. 야나이하라는 약 150명의 청중 앞에서 "한국은 장차 일본이 갖지 못한 기독교로 독립할 수 있을 것이고, 이로써 세계사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당시 극도로 의기소침해 있던 조선 청년들을 고무했다. 이 무렵 〈성서조선〉은 폐간 일보 전에 있었다. 우선 원고가 검열을 받아 '치안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곳은 삭제되었으며 ..  《송건호-한국현대인물사론》(한길사,1984) 272쪽

 

 손볼 대목이 곳곳에 있지만, 일부러 보기글을 길게 옮겨 적었습니다. 한국땅에서 한국사람이라는 이름으로 살지만 조금도 한국사람 아니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한편, 이웃 일본땅에서 일본사람이라는 이름으로 살지만, 더구나 제국주의를 앞세운 일본땅 사람이면서도 한국사람과 함께하며 한국땅을 걱정한 사람이 있습니다. 야나이하라라는 사람은 한국사람이 아니면서도 한국사람을 깊이 헤아렸던 이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제국주의자들과 일제에 빌붙은 사람한테는 귀찮거나 몹쓸 사람으로 여겨졌을 야나이하라라는 사람이겠지요. 그러나 일본에서도 제국주의로 치닫는 모습을 걱정하는 사람, 그리고 한국땅에서 괴롭고 고달픈 사람들은 야나이하라 같은 사람들 말과 움직임과 생각에 자그마한 힘을 얻을 수 있었으리라 봅니다.

 

 ┌ 의기소침(意氣銷沈) : 기운이 없어지고 풀이 죽음

 │   - 시험에 떨어진 그는 몹시 의기소침했다 / 적잖이 의기소침하던 차에

 │

 ├ 극도로 의기소침해 있던 조선 청년들

 │→ 몹시 풀죽어 있던 조선 젊은이들

 │→ 아주 기가 꺾여 있던 조선 젊은이들

 │→ 그지없이 힘이 없던 조선 젊은이들

 │→ 그예 어깨가 처져 있던 조선 젊은이들

 │→ 하릴없이 가라앉아 있던 조선 젊은이들

 └ …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온갖 풀과 꽃과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리며 잎을 틔웁니다. 눈보라가 몰아쳐도 견디어 내고 이듬해 봄에 새싹을 틔우는 풀이요 꽃이요 나무입니다. 우리들 사람도, 고단하고 괴롭고 슬프고 아프다 해도, 이 고단함과 괴로움과 슬픔과 아픔을 꺼리기보다는, 자기를 더욱 단단하게 추스르는 징검다리라고 여기면, 오래지 않아 새빛을 보고 새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몹시 의기소침했다 → 몹시 풀이 죽었다 / 몹시 기운이 없다

 └ 의기소침하던 차에 → 풀이 죽었던 터에 / 기운이 꺾였던 터에

 

 어쩌면, 죽는 날까지 빛이고 힘이고 못 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나 하나는 빛이나 힘을 못 보았을지라도, 내 둘레에서 빛을 보거나 힘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리라 봅니다. 꿋꿋하게 견디거나 받아들이면서 삶을 꾸리노라면, 뒷사람인 아이들이 우리를 보면서 더 깊고 너른 슬기를 빚어내면서 한결 넉넉하고 아름답게 꽃피울 수도 있으리라 봅니다.

 

 

ㄴ. 의기소침하지 않고

 

.. 그러나 자택연금, 24시간 미행 등의 조치로 미카 탄 부인의 평화운동 복귀를 계속 방해했던 것이다. 이런 탄압 아래서도 탄 부인은 의기소침하지 않고 변함없이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  《마쯔이 야요이/김혜영 옮김-무엇이 여성해방인가》(백산서당,1981) 38쪽

 

 '자택연금(自宅軟禁)'은 '집 밖에 나가지 못하고'로 손보고, "미행(尾行) 등(等)의 조치(措置)"는 "뒤를 밟고 하면서"로 손봅니다. "미카 탄 부인의 평화운동 복귀(復歸)를"은 "미카 탄 씨가 평화운동을 다시 못하게"나 "미카 탄 씨가 평화운동에 다시 발을 디디지 못하게"로 손질하고, "계속(繼續) 방해(妨害)했던 것이다"는 "자꾸만 헤살을 놓았다"나 "자꾸자꾸 막고 있었다"로 손질합니다. "이런 탄압(彈壓) 아래서도"는 "이렇게 짓눌리면서도"나 "이렇게 괴로우면서도"나 "이렇게 옴쭉달싹 못하면서도"로 고치고, '변(變)함없이'는 '한결같이'로 고치며, "투지(鬪志)를 불태우고 있었다"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었다"나 "굳센 뜻을 불태우고 있었다"로 고쳐 줍니다.

 

 ┌ 의기소침(意氣銷沈) : 기운이 없어지고 풀이 죽음

 ├ 기죽다 : 기운이 꺾이며 움츠러들다

 ├ 풀죽다 : 기운이 꺾이며 애쓰던 움직임이나 뜻을 잃다

 │

 ├ 의기소침하지 않고

 │→ 기운이 꺾이지 않고

 │→ 풀이 죽지 않고

 │→ 기죽지 않고

 │→ 풀죽지 않고

 │→ 움츠러들지 않고

 │→ 뜻을 잃지 않고

 └ …

 

 힘이 들면 들수록 더욱 더 힘을 내는 사람이 있으나 힘이 들면 들수록 힘이 떨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려우리라 생각을 했어도 어려움을 막상 닥치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있으나 어려우리라 생각하지 못했어도 자기 앞에 놓인 어려움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어요.

 

 다른 사람은 모두 두 손을 들고 나가떨어졌어도 꿋꿋하게 제 갈 길을 가는 사람이 있는 한편,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니 그만 휩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말과 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 잘못과 어긋남을 못 느끼면서 대충대충 말하고 글쓰는데, 굳이 뭣하러 힘들게 땀을 빼면서 올바르고 알맞고 살갑게 말하거나 글쓰도록 마음을 쏟아야 하느냐고 생각하는 분이 꽤 많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지금 우리 나라에는 이런 분이 훨씬 많기 때문에 우리 말과 글은 하루가 다르게 뒤틀리고 엉망이 되고 무너집니다. 우리 삶 또한 나날이 뒤엉키거나 흔들리고, 우리 세상 또한 자꾸자꾸 비뚤어지고 엇나가고 맙니다.

 

 

ㄷ. 쉽게 의기소침했다

 

.. 지금 그 무렵을 돌이켜보면 나는 작은 일에도 쉽게 의기소침했다. 별것도 아닌 놀이에서 진다거나 밥 먹는 시간이 조금만 늦어져도 곧 토라져서 구석에 빈 항아리처럼 뻣뻣이 서 있곤 했다 ..  《벤슨 뎅,알폰시온 뎅,벤자민 아작/조유진 옮김-잃어버린 소년들》(현암사,2008) 35쪽

 

 '별(別)것'은 '아무것'이나 '아무 일'이나 '큰 일'로 손봅니다. "밥 먹는 시간(時間)"은 "밥 먹는 때"나 '밥때'로 손질합니다.

 

 ┌ 쉽게 의기소침했다

 │

 │→ 쉽게 풀이 죽었다

 │→ 쉽게 주눅이 들었다

 │→ 쉽게 어깨가 처졌다

 │→ 쉽게 시무룩해졌다

 └ …

 

 보기글을 보면, "곧 토라져서"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글쓴이는 아직 어린 아이이고, 작은 일에도 쉽게 '어찌어찌한다'고 하는 양으로 보아서, 이 아이는 작은 일에도 '토라지는'구나 싶습니다. '삐칩'니다. '삐죽거립'니다. 기운이 꺾이거나 없어지거나 사라집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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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한자#우리말#우리 말#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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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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