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늦여름 부모님은 친목회 분들과 오랜만에 부부동반으로 울릉도에 다녀오셨습니다. 그때 친목회 회장님이란 분이 함께 한 사람들에게 울릉도 호박 조청을 선물했다 하더군요.
조청은 엿 따위를 고는 과정에서 묽게 고아서 굳지 않은 엿인데, 이를 굳히면 그 유명한 울릉도 호박엿이 되는 겁니다. 그 조청을 어머니는 찬장 어딘가에 넣어두셨는데 한동안 꺼내보지 않아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것을 지난 겨울 어렵사리 찾아냈습니다. 구정 연휴를 보낸 뒤 좀 한가해지자 어머니는 아버지의 성화에 못이겨 재수씨와 어린 조카의 주전부리를 만들기 위해, 조청을 꺼내고 오래돼 누진 쌀튀밥과 갓 튀겨온 쌀튀밥을 준비했습니다.
어렸을 적 할머니가 설날을 전후해 짙은 호박빛이 도는 강엿(검은엿)을 휴대용 가스렌지로 솥단지에 넣고 달이다, 쌀튀밥을 넣고 휙휙 휘둘러 둥근 쟁반에 재빨리 옮겨 틀을 잡아 식칼로 듬성듬성 썰어낸 그 달달한 쌀강정을 만들기 위해서 말입니다. 주전부리가 별로 없던 시절이라 동생과 저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건너방에서 그렇게 쌀강정을 만드는 것을 내내 지켜보다가, 엿물이 채 식지 않은 강정을 양손 가득 집어들고는 뛰어나가 놀곤 했습니다.
그 어린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쌀강정을 어머니는 조카를 위해 만드셨습니다. 쌀강정을 만드는 날 그러니까 지난 7일에는 용산참사 3차범국민추모대회 때문에 서울에 올라가야 해서 그 과정을 지켜보지는 못했습니다. 밤늦게 돌아오니 달콤한 엿냄새가 풍기는 쌀강정이 비닐에 한가득 담겨있는 것이 눈에 띄었을 뿐입니다.
그 쌀강정을 틈나는대로 야금야금 빼먹다보니 어느새 봄이 찾아왔습니다. 입안 가득한 단내를 맡고 꿀벌이 날아들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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