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ㄱ. 입만 봉하고 있으면

.. 둘이 끔찍해 야단이니 우리는 살기 더 좋다. 입만 봉하고 있으면 되니깐 ..  《림덕실-녀 불법체류자의 일기》(연변인민출판사,2000) 13쪽

“저놈 주둥아리(입)를 꿰매야지” 하는 말을 장난 삼거나 욕 삼아서 말하곤 하는 우리들입니다. 입을 꿰맨다는 소리는, 입이 트여 있어서 아무 말이나 되는 대로 쏟아내기에, 바느질을 해서 꿰매어야 시끄러운 소리를 더 듣지 않을 수 있다고 하면서 쓰는 말입니다. 그러니, 입이 ‘닫히게’ 하면 조용해서 좋겠다는 뜻일 테지요.

 ┌ 봉(封)하다
 │  (1) 문, 봉투, 그릇 따위를 열지 못하게 꼭 붙이거나 싸서 막다
 │   - 편지를 봉하다 / 창문을 봉하다 / 항아리를 봉하여 약술을 담그다
 │  (2) (주로 ‘입’을 목적어로 하여) 말을 하지 않다
 │   - 입을 딱 봉하고 서로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다 /
 │     자기의 할 말만 한 뒤에는 입을 봉하고 머리를 수그리고 가만히 있었다
 │  (3) 무덤 위에 흙을 쌓다
 │
 ├ 입만 봉하고 있으면
 │→ 입만 다물고 있으면
 │→ 입만 닫고 있으면
 │→ 입만 막고 있으면
 │→ 입만 닥치고 있으면
 │→ 입만 놀리지 않으면
 └ …

막말로 할 때라면 “입만 닥치고 있으면”으로 적어 줍습니다. 여느 말로 할 때라면 ‘다물다’나 ‘닫다’나 ‘막다’로 적어 줍니다. “입을 놀리지 않다”로 풀어내어도 괜찮습니다. “말 안 하고 있으면”으로 적어도 됩니다. “입을 꿰매고 있으면”이나 “가만히 있으면”이나 “아뭇소리 안 하고 있으면”으로 적어 보아도 잘 어울립니다.

 ┌ 편지를 봉하다 → 편지를 붙이다
 ├ 창문을 봉하다 → 창문을 막다
 └ 항아리를 봉하여 → 항아리 (뚜껑을) 막아

그런데, ‘封하다’는 ‘입을 닫다’라는 쓰임새 말고도, ‘붙이다’와 ‘막다’ 같은 말이 쓰이던 자리까지 끼어듭니다. 편지는 풀로 붙여서 부치는데 이런 자리에까지 ‘封하다’를 써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창문을 꼭꼭 닫아걸거나 막는다고 하는 자리에도 굳이 ‘封하다’라 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항아리 입(구멍/뚜껑)을 막는 일도 꼭 ‘封하다’를 빌어서 나타내야 할까요.

때와 곳이 다르니, 다 다른 때와 곳에 걸맞게 한 마디 두 마디 적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다른 때를 살피고 다른 곳을 헤아리면서 그때 그곳에 알맞춤하게 이 말 저 말 넣어 주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 입을 딱 봉하다 → 입을 딱 닫고 / 입을 딱 다물고
 └ 입을 봉하고 → 입을 닫고 / 입을 다물고

그래도 구태여 ‘봉하다’를 써야겠다면, 이 낱말이 아니고서는 내 뜻과 마음을 드러낼 수 없다고 한다면, 이러한 외마디 한자말이건 아니건 써야 합니다. 다만 한 가지, 이런 외마디 한자말을 쓰고 싶어서 쓰더라도, 이와 같은 낱말이 우리 삶터로 비집고 들어오기 앞서부터 오래오래 우리 삶과 마음과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던 말이 있음을 잊지 않으면 고맙겠습니다.

ㄴ. 입을 봉해 버린다 해도

.. 청소년기에 이르자 갑자기 입을 봉해 버린다 해도 의아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  《익냐스 렙/제석봉 역편-현대인의 정신 위생》(성바오로출판사,1970) 82쪽

“의아(疑訝)하게 생각할 필요(必要)가 없다”는 “궁금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나 “왜 저러지 하고 생각할 까닭이 없다”나 “걱정스레 생각하자 않아도 된다”로 다듬어 봅니다.

 ┌ 입을 봉해 버린다 해도
 │
 │→ 입을 닫아 버린다 해도
 │→ 입을 닫아걸어 버린다 해도
 │→ 입을 꾹 다물어 버린다 해도
 │→ 입을 벙긋도 하지 않는다 해도
 └ …

이 자리에서는 “입을 꿰매어”나 “입을 기워”나 “입에 지퍼를 채워”나 “입에 자물쇠를 달아”로 넣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렇게 넣어 보아도 썩 어울리지 않으랴 싶습니다.

 ┌ 말수가 줄어든다 해도
 ├ 말이 없어진다 해도
 ├ 아무 말도 안 한다 해도
 └ …

또는, 우리가 보거나 느끼는 모습 그대로 “말이 없어진다”라 적어 봅니다. “말수가 줄어든다”라 적어 보기도 합니다. “아무 말도 안 한다”라고도 적어 봅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갑자기 말을 안 하게 되는 사람’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나 느낌은 다 다를 터이니, 그 다 다른 생각과 느낌을 살리면서 새로운 말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갑자기 벙어리가 되어 버린다 해도”라든지 “갑자기 말하기를 잊어 버린다 해도”라든지 “갑자기 조용해져 버린다 해도”라든지, 이런 모습 저런 모습을 떠올리면서 이런 말투 저런 말투를 북돋워 줍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외마디 한자말#한자#우리말#우리 말#국어순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