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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양반!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이 동네가 재개발된다고 들썩이는데, 어이구 저걸 불쌍해서 어쩐대요.”

안양7동 덕천시장에서 만난 아주머니는 한 발발이 개를 쳐다보며 혀를 찼다.

집 앞 골목을 지키는  다루
▲ 집 앞 골목을 지키는 다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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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이 개의 사연을 접한 것은 지난 해 여름이었다. 삼복더위를 피해 평상에 모인 대엿 명의 노인들이 부채질을 하며 다루의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5년 동안 주인 없는 빈집을 지키며 살아가는 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자, “그 개 이야기라면 저 앞집에 물어보슈”라며 식당을 가리켰다. 노인들이 가리키는 순대집 앞에는 유난히 눈빛이 초롱초롱한 누렁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 담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다.
▲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 담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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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집 주인은 “지금은 동네 개가 되었지만, 다루는 정확히는 몰라도 한 8살 정도 되었을 걸요”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다루는 이 골목집에서 어머니, 누나와 함께 살았지요. 지병이 있던 어머니가 화장실에 갔다가 뇌출혈로 사망했어. 장례식을 치른 후, 혼자 남은 누나(아가씨)는 어머니를 떠나보낸 아픔을 잊기 위해 다루만을 남겨둔 체 훌쩍 외국으로 떠나갔지요.

외삼촌이 다루가 드나들기 좋게 대문에 구멍을 내줬다.
▲ 외삼촌이 다루가 드나들기 좋게 대문에 구멍을 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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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에 사는 외삼촌은 이 녀석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대문에 구멍을 뚫어 주고, 가끔 외숙모가 사료하고 물만 주고 가요.  그렇게 이 녀석은 혼자 먹고 자고 들락거리며 살아온 거야.

그런데 이 녀석이 한 닷새 안 보이더니, 새벽에 돌아와서는 문을 사정없이 긁는 거야. 아마도 노숙자들이 눈독을 들인 것 같아. 그리고는 시커먼 옷을 입은 사람이 지나가면 발작하듯 짖는 거야. 우체부는 ‘난 네게 해코지 안 했는데 왜 그러니’ 하기도 했어.

그 후부터 다루는 아무리 맛있는 고기도 낮선 사람이 주면 먹지 않고, 경계하며 접근조차 못하게 사납게 짖기 시작했지요.

다루는 빈집에서 이렇게 살고 있었다.
▲ 다루는 빈집에서 이렇게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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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방 하나를 세 주었는데, 주인이 떠나며 4년째 집 전체가 비어 있지. 나만 졸졸 따라 다니며 내가 우유라도 마시면 달라고 낑낑거려, 동네 사람들은 내가 얘 엄마인 줄 알아. 맨 날 밤마다 빈집 지키고 낮에는 수시로 들락거리고, 엄청 영리해. 아마 개 나이로 할아버지지.”

그때 낡은 철 대문 구멍으로 다루가 쑥 들어오며 낮선 기자를 향해 짖기 시작했다. 다루가 사는 빈집은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서 여기저기 거미줄이 처져 있고, 담벼락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허술했다.

지난 해 1월, 외국으로 떠났던 누나가 돌아왔지만 다루는 알아보질 못했다고. 그러자 누나는 “다루야 네가 나를 몰라보다니...”라며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고 외국으로 떠나갔다고 한다.

다루가 골목집에서 나오고 있다.
▲ 다루가 골목집에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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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길에 다루가 사는 집이 있다.
▲ 골목 길에 다루가 사는 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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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다루는 무엇을 지키는 것일까? 근방에서는 다루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아파트에 사는 한 아주머니는 간식을 도맡아 챙겨주지만, 다루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육포다. 다루 소식이 궁금해서 며칠 전 순대집을 찾았을 때 다루는 따뜻한 연탄난로 아래에서 아주머니와 함께 있었다.

아주머니는 곧 덕천마을이 재개발이 될 텐데 외갓집 역시 강아지가 2마리나 있어 다루를 맡을 형편이 못 되고, 다루가 눈에서 멀어지면 찾아 나서지만 아주머니 역시 다루를 맡을 형편은 아니라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온통 재개발 이야기로 덕천마을이 술렁거리는데 과연 다루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지? 동네 사람들의 걱정 또한 깊어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후덕한 인심의 아주머니는 순대 간을 썰어 주기도 하고, 삼복더위에 털갈이하는 다루에게 빗질을 해 주면 다소곳이 앉아 있다.



#다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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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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