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모의고사 보는 날, / 점심시간이 평소와 조금 달라졌다고

정해진 반 순서대로 / '질서 있게' 줄을 안서고

미친놈들처럼 학생식당 앞으로 마구 달려와

개떼처럼 이리몰리고 저리몰리고 하길래

나도 아이들 따라 미친놈처럼 이성을 잃고

몽둥이를 막 휘두르면서 / 점심식사 지도를 마치고

교무실 내 자리에 와 앉았는데

엉덩이가 축축한 게 이상해 / 벌떡 일어나 의자를 내려다봤더니

글쎄 그새 어떤 놈이 내 의자 방석에

물을 부어 놓고 도망갔던 것이다.  -어떤 저항-

 

수업도 싫고 공부도 싫은 어느 봄날

어떤 놈이 잘 걷지도 못하는 참새새끼를 주어오자

교실이 난리가 났다 / 어떤 놈은 / 농약 냄새를 맡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떠들고

어떤 놈은 / 힘센 놈이 밀어내서 둥지에서 떨어져 / 그렇게 되었다고 알은 체를 한다

나는 참새새끼를 보자마자 / '야 빨라 갖다버려' 했는데 아이들이 눈물까지 글썽이며

어쩜 그럴 수 있냐? 선생님 시인 맞냐? / 소리를 빽빽 지르더니

결국 자기들이 키우겠다고 해서(생략)  -잊고 산 것. 2-

 

 시인 신현수(도서출판 이즘)
시인 신현수(도서출판 이즘) ⓒ 한만송

입시경쟁의 굴레에서도 천진난만한 학교 안 고등학생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시인 신현수다운' 시라는 느낌이다.

 

교사 시인 신현수씨가 다섯 번째로 출간한 <시간은 사랑이 지나가게 만든다더니>는 현직 교사로, 시민단체 대표로 맺은 인연, 아름다운 만남과 헤어짐, 추억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시인 조재도씨는 발문에서 "그의 시는 정직하고, 진솔의 차원을 넘어 무섭도록 솔직하다"면서, "고상하고 싶은데, 점잖고 부드럽고 우아하고 싶은데, 그런 허망한 허위의식에 똥 침을 놓는다"고 평했다. 또한 시가 쉽고 정직해 시 한 편 한 편이 재미있는 상황극(시트콤)을 보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시인은 시 '아들을 기다렸다'에서는 고3 아들을 둔 아버지로서의 고뇌를 드러냈다.

 

아들을 기다렸다/ 명색이 선생이면서/ 밤늦게 학원 앞에서/ 아들을 기다렸다

명색이 국어선생이면서/ 밤늦게 논술학원 앞에서/ 고3인 아들을 기다렸다.

<중략>

명색이 선생이면서/ 밤늦게 학원 앞에서/ 아들을 기다리며/ 나에게 묻고 물었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게 무엇인가/ 아이의 행복인가/ 나의 자존심인가<생략>

 

신현수 시인에 대해 어느 누구는 이 세상을 바른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서 어제도 오늘도 무공해 시인으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근현대사를 기록하듯이 시로 노래로 표현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랑은 시간이 지나가게 만들고,/ 시간은 사랑이 지나가게 만든다더니

너 가고 난 후/ 너 없는 세상이 고통스러워/ 죽고 못 살 거 같았는데

이제 너를 생각하지 않고도 하루가 가고,/ 너를 생각하지도 않고도 일주일이 간다

<중략>

시간은 사랑이 지나가게 만든다더니/ 그건 헛말인가.

이제 이 세상엔/ 더 이상 내말을 끝까지 들어줄 사람도

더 이상 나를 혼낼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철철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곤 하는 것이다.

-시간은 사랑이 지나가게 만든다더니-

 

이번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시 '시간은 사랑이 지나가게 만든다더니'는 삶의 나침반으로 여겨왔던 애틋한 후배의 죽음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것이다. 시간이 사랑을 지나가게 만들지만 시인에게는 여전히 그 사랑이 남아 그를 외롭게 만들고 있음을 그리고 있다.

 

부평과 인천에서 시인보다 시민단체 대표로 더 알려진 신씨는 89년 전교조 활동을 하다 해직됐다가 94년 대천여고로 복직 후 부개여고, 부평여고를 거쳐 지금은 모교인 부평고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1985년 <서산가는 길>로 등단한 후 <처음처럼>, <이미혜>, <군자산의 약속> 등의 시집을 내 놓았다. 이밖에 <선생님과 함께 읽는 한용운>, <시로 읽는 한국현대사>를 저술했다.

 

하지만, 시인보다는 한국작가회의 인천지회장, 평화와참여로가는 인천연대 상임대표, 사단법인 지역복지센터 나눔과함께 이사장, 우리땅부평미군기지 되찾기 및 시민공원조성을 위한 인천시민회의 공동대표, (주)부평신문사 이사 등으로 우리에게 더 친숙하다.

 

한편, 다섯 번째 시집 출판기념회가 20일 오후 7시 인하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다. 시인은 이번 시집 판매수익금을 북녘어린이빵공장의 밀가루를 마련하는 데 기부할 예정이다.

 

 신현수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시간은 사랑이 지나가게 만든다더니>(도서출판 이즘)
신현수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시간은 사랑이 지나가게 만든다더니>(도서출판 이즘) ⓒ 한만송


시간은 사랑이 지나가게 만든다더니 - 이즘시선 1

신현수 지음, 이즘(2009)

이 책의 다른 기사

시인이 디딘 땅도 현실이다

#신현수#인천연대#시간은 사랑이 지나가게 만든다더니#어떤 저항#부평고 국어교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