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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벌써 횟수로 3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2006년 6월 20일 맹장수술을 한 남편의 사연을 오마이뉴스에 넋두리 하듯 썼었지요. 화장실 가는 것보다 쉽고 간단한 수술이라며 누구 하나 병문안을 오지 않았지만 그 보다 더 마음이 아팠던 건, 간단하고 쉬운 수술이라는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같은 병실에 맹장수술을 한 모두가 팔목에 차고 있던 무통주사였습니다.

 

남편은 무통주사를 맞지 않았습니다.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만 놔 준다는 주사였는데, 전 끝내 동의서에 사인을 하지 못했었지요. 의료보험처리도 되지 않는 십수만원의 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몸뚱이를 놀려서 벌어오지 않으면 누구 하나 천원 한 장 보태주지 않는 퍽퍽한 현실에서 십수만원은 가진 사람의 백억보다 더 귀하고 큰 돈이었습니다. 얼마나 아플지 알면서도 고통으로 일그러진 남편의 얼굴에 전 "난 애도 낳았어. 근데 남자가 그깟것도 못참아"라며 아금받게 쏘아 주었습니다.

 

하지만 대답도 못하는 남편의 웅크린 어깨를 보며 제 가슴도 참 많이 아팠었습니다. 엄마는 뭘 먹고 나처럼 독한 딸을 낳았을까? 난 사람도 아닌가보다 싶었습니다.

 

서운함이 깊었던지 퇴원을 하고도 한참을 남편은 일할 의욕을 찾지 못했습니다. "넌 내가 큰 병 걸리면 버리고 도망가겠지?" 아무런 표정도 없이 던지던 남편의 이 말이 지금도 귀에 쟁쟁합니다. 많이도 서운했을 겁니다. 오만정이 다 떨어졌을 겁니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하는 일이기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친정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가난해도 행복 할 수 있다는 자신감 하나로 시작한 남편과의 결혼생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땐 갖지 못 한게 참 서러웠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누군가가 건네주는 진정으로 따뜻한 위로와 희망의 말 한마디가 제겐 필요했었습니다. 그래서 올린 글인데, 그 글이 올라가고 얼마뒤 전 제가 올린글에 달린 댓글에 한번 그리고 십시일반으로 보내주신 감사의 원고료에 또 한번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비록 그 돈으로 맞지 못했던 무통주사를 다시 맞힐 수는 없었지만 남편과 저는 쌓였던 오해와 서운함을 털어버렸음은 물론이고 돈보다 더 큰 감동과 행복을 느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각박하다해도 인정만은 마르지 않았다는걸 알게 됐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많은 감동이 있어도 사람이 주는 감동만큼 큰 감동도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저 역시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작년부터 아이 이름으로 외국 아동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큰 금액은 아니지만, 오마이 뉴스 독자들이 제게 보내 준 크고 큰 감동이 지구 반대편까지 뻗치게 되었습니다. 매달 보내주는 지원금으로 그 아이도 저처럼 아픔보다는 감동을, 좌절보다는 희망을 더 많이 줏어 올리기를 바랍니다. 누군가를 돕는 일은 내가 쓰고 남은 것으로 하는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함께 나눠쓰는 것이란걸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힘들 때 "어머니"를 부르듯 오마이뉴스는 제게 또 다른 한분의 "어머니" 바로 "오마이"가 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때문에 생긴 일"- 고맙다 오마이뉴스


태그:#맹장수술,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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