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겉표지
▲ <모로 박사의 섬> 겉표지
ⓒ 문예출판사

관련사진보기

인간이 다른 생명을 창조한다. 이것은 무척 오래된 소재다. <프랑켄슈타인>부터 <쥬라기 공원>까지 모두 이런 소재를 바탕으로 한다.

이런 창조가 실제로 가능한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인간과 같은 생명체건 아니건 그런 물질적인 육체를 만들어내더라도, 거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생명의 창조가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의 형태를 변형시키는 것은 어떨까. <타임머신>과 <투명인간>, <우주전쟁>으로 유명한 허버트 조지 웰스의 작품 <모로 박사의 섬>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

이 작품의 무대는 남태평양의 외딴 섬이다. 1887년 2월, 주인공 에드워드 프렌딕은 여객선 레이디베인호에 승선하지만 곧 배가 침몰하면서 혼자 구명보트를 타고 바다를 떠도는 신세가 된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술주정뱅이 몽고메리, 약간 정신이 나간듯한 과학자 모로 박사를 따라서 한 섬에 도착한다. 화산섬으로 초목이 무성한 야트막한 섬이다. 그 섬에 도착했을때 에드워드 프렌딕을 맞이해준 것은 기이하게 생긴 동물이었다.

인간과 비슷하지만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생김새가 너무 다른 종이다. 중키에 흑인같은 검은 얼굴, 입술이 거의 없는 커다란 입에 괴상하게 길고 유연한 팔, 길고 가느다란 발에 바깥으로 휜 다리를 가지고 있다. 이런 이상한 외모의 '인간'들이 섬 여기저기에서 나타난다. 이들은 모두 모로 박사에게 복종하고 그를 따른다.

섬에서 생체실험을 행하는 모로 박사

모로 박사는 영국의 생리학 대가로서 비범한 상상력과 비정한 직설화법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는 여러 분야에서 업적을 쌓았지만, 그가 행했던 끔찍한 생체실험이 비난을 받으면서 어쩔 수없이 영국을 떠나야 했다.

이 섬은 그 모로 박사가 영국을 떠난 10년 전부터 몽고메리와 함께 모종의 실험을 하면서 살아오던 곳이다. 그리고 그 실험의 결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이 섬의 괴상한 인간들이다. 에드워드 프렌딕은 섬에 도착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모로 박사의 정체를 파악한다. 그리고 밤마다 들려오는 동물의 비명소리 속에서 자신도 어쩌면 그렇게 고문당하고 죽어갈지 모른다고 공포에 떤다.

그런 과정 속에서 프렌딕은 마침내 모로 박사와 맞서게 되지만, 오히려 모로 박사의 언변에 설득당한다. 모로 박사는 이 섬에서 벌이는 이상한 실험들을 낱낱이 프렌딕에게 알려주고 이해를 구한다. 프렌딕이 본 이상한 종족은 인간도 아니고 인간이었던 적도 없다. 그들은 동물, 인간화된 동물이었다. 모로 박사가 이루어낸 생체해부술의 경이로운 개가였다.

모로 박사는 주장한다. 생체실험의 실현성은 단지 신체 변형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돼지도 교육될 수 있다. 정신 구조는 신체구조보다 한결 유연한다. 기존 선천적 본능을 새로운 암시로 대체할 수 있다는 가망성을 나날이 발전하는 최면학이 보여준다. 유전된 고착관념을 이식하거나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윤리 교육이라고 부르는 것도 따지고 보면 본능의 인위적 개조이자 왜곡에 다름 아니다. 호전성이 교육을 통해서 용감한 자기희생으로 바뀌고, 성욕이 종교 감정으로 억제된다는 것이다. 인간과 원숭이의 중대한 차이는 후두부에 있다. 그렇다면 원숭이의 후두부를 생체해부술을 통해서 변형시킨다면, 원숭이도 인간으로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모로 박사의 주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생체실험에 시달리는 동물들의 고통도 사소한 것이라고 일축한다. 과학의 가르침에 올곧게 마음을 연 사람이라면 그 고통이 사소한 것임을 알게 된다고 한다.

그런 고통은 모두 무시한 채 연구에만 몰두하면서 10년을 보내온 것이다. 야생동물들을 변형시켜서 인간과 같은 이성적 개체로 만들겠다는 집념을 가지고. 완벽한 성공을 거두기까지 몇십 년이 남았을지 모르지만, 그까짓 시간이 대수일까. 인류가 만들어지는데는 10만 년이 걸렸는데.

시대를 앞서갔던 작가 조지 웰스

모로 박사는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미치광이 과학자의 전형이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 윤리나 상식을 모두 무시한채 앞으로만 나아간다. 죽은 사람의 뼈를 가지고 살아있는 괴물을 만들어낸 제네바의 물리학자 프랑켄슈타인도 자신의 창조물을 놓고 고뇌한다. <쥬라기 공원>의 수학자는 혼돈이론을 바탕으로 공원의 미래는 부정적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모로 박사는 한번도 흔들리지 않는다. 10여년 동안 많은 실패를 해왔지만 그만큼 진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모로 박사는 외딴 섬의 창조주이자 지배자이면서 80여년 후에 태어난 또 다른 프랑켄슈타인이다.

동물을 변형시켜서 이성을 주입시키고 직립보행을 가능하게 만든다 하더라도, 동물의 내면 깊숙한 곳에 남아있을 야생의 본능은 어떻게 통제할까. 이 질문에 대한 완벽한 해법이 없는 이상 모로 박사의 섬도 쥬라기 공원처럼 변해갈 것이다. 그때쯤에는 모로 박사도 자신의 시도가 근본부터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지 모른다.

유전자조작과 인간복제 같은 소재를 다룬 작품들이 현대에 많이 발표되고 있다. 전문적인 지식과 정교한 논리로 무장한 작품들이 적지 않다보니 <모로 박사의 섬>에서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다소 식상하게 느껴질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를 앞서간 많은 작품들 속에서 인류의 미래를 걱정했던 조지 웰스의 목소리는 <모로 박사의 섬>에서도 여전하다. 그 이야기가 공염불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작품 속 주인공의 마지막 말처럼, 우리도 그런 희망 없이는 살지 못한다.

덧붙이는 글 | <모로 박사의 섬> 허버트 조지 웰스 지음 / 한동훈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



모로 박사의 섬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김붕구 옮김, 문예출판사(2010)


태그:#모로 박사의 섬, #조지 웰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