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드디어 그가 시위를 당겼다.

 

우리 가족들이 가끔 모이는 날이면 논의하는 가장 중요한 안건 중 하나가 '아빠(남편)의 노후를 즐겁게 해서 보다나은 가정의 행복을 찾자'였다.

 

그렇다고 그가 즐겁게 생활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마을 아저씨들과 모여서 고스톱을 친다든지, 가끔 주막집이나 맛좋은 음식을 찾아다닌다든지, 또 마을 노인정에서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때우는 것도 좋지만 발전적인 쪽으로도 시간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랐다.

 

활. 궁도장에 가입하고 친구에게 선물 받은 활
활.궁도장에 가입하고 친구에게 선물 받은 활 ⓒ 이연옥

 

활동적으로 움직인다든가, 생각의 세계를 넓히 취미를 가지고 생활하면 좀 더 뜻있게 즐겁게 노후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평생 농사를 천직으로 알았던 그. 하지만 농사도 줄어들고 모든 일이 기계화 되면서 왠지 모르게 그의 출입도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밖으로 나가는 시간보다 집안에 안주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언제부터인가 만나는 사람도 한 사람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것은 우리 가족인 나와 딸들과 아들이 똑같이 느끼며 걱정하는 일이었다.

 

여자들은 나이가 들면 밖으로 나가는 일이 많아지고, 남자들은 나이가 들면 밖으로 나가는 일이 줄어든다는 말이 새삼 남의 일 같이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집안에 있는 사람을 자꾸 밖으로 내몰 수도 없는 일이어서 때때로 남편에게 주문을 하기도 한다.

 

"우리 뭐 재미있는 거 하나 합시다. 공동으로 할 수 있는 거, 등산을 다닐까? 아님 수영장엘 다닐까?"

 

될 수 있으면 함께 하는 게 좋겠다 싶어서 이야기를 꺼내면 등산은 어째서 못하고 수영은 어째서 못한다며 핑계를 대기 일쑤였다. 하긴 등산은 작년에 다친 발이 아파서 하기 어렵다지만…. 도대체 몸을 움직여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는 그를 움직이게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활 선이 멋진 남편의 활
선이 멋진 남편의 활 ⓒ 이연옥

 

젊은날 마을에서 새마을지도자와 이장, 통장, 영농회장 등등 봉사활동을 20년 넘게 해온 그다. '아직은 이렇게 집에만 은둔해 있을 때가 아닌데'란 생각에 움직이는 것을 귀찮아하는 남편에게 여러 가지 제의를 했다.

 

"여보, 문화센터에서 하는 붓글씨 쓰러갑시다. 아니면 탁구를 배우든지. 아님 이제 라도 늦지 않았으니 사진 찍는 거 배워서 여행도 하고 인터넷에 올리는 것도 좋으니 함께 합시다."

 

다른 말엔 시큰둥하더니 사진 찍자는 말에 잠시 솔깃하다가 또 그냥 넘어가고 만다. 당신의 즐거운 취미생활을 위해서라면 비용이 좀 드는 골프를 한다고 해도 충분히 밀어주겠다고 제의를 해도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작년 이맘 때 같은 마을에 사는 육촌 시동생이 마을 건너 양지편마을에 있는 활터에 다닌다며 함께 다니자고 주선을 해도 영 귀 밖으로만 들으며 "이 사람아. 한량들이나 하는 활놀이를 내가 왜 해"라며 근처도 가지 않았다. 가끔  시집 간 딸들이 "아빠가 활 쏘러 다니면 그 비용은 우리들이 댈게요"라고 말하면 나는 딸들을 부축여 나도 거들지만, 남편은 마치 못할 소리를 하기라도 한 듯 핀잔을 주곤하였다. 

 

그렇게 남편의 요지부동은 식구들을 걱정스럽게 했다. 아직은 집안에 운둔해 있을 때가 아닌데 벌써 그러는 것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 일이다. 밖에 나갔다 들어오는 그가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띠며 웬 기다란 헝겁 주머니를 들고 와 거실에 내려놓았다.

 

활 힘차게 활줄을 당기다.
힘차게 활줄을 당기다. ⓒ 이연옥

 

"그게 뭐예요?"

 

생전 처음 보는 길다란 주머니를 보며 남편을 올려다보니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을 한다.

 

"이 사람아, 뭐긴 뭐야. 활이지."

"아니, 웬 활을."

 

"응 이제부터 활터에 다니기로 했어. 활 쏘는 것도 전신운동이 된다는데?"

"팔의 근육이 단단해지고 다리, 허리, 모든 부분에 힘이 가고 아마 배도 들어가서  아주 좋다고 그래."

 

"와아. 그래요. 잘 했어요. 축하해요. 애들한테도 이 소식을 알려야겠네."

 

건너 마을에 있는 활터를 양지정이라고 하는데 그 곳에 가입을 하니 가까운 친구 분이 기념으로 사주셨다고 하는 활은 그리 크진 않았다. 처음 만져보는 활의 느낌이 팽팽하다. 활도 배워서 쏘는 정도에 따라 활의 크기를 늘여 간다고 한다.

 

거실에 내놓은 활에게 매우 고마워졌다. 딸들에게 전화해 아빠가 활터에 나가시기로 했다고 전하니, 저녁엔 딸들이 다 집으로 와서 잘되었다고 축하를 해준다. 마치 집안에 경사라도 생긴 듯이 딸들과 아들이 손뼉을 치며 좋아라, 하는 모습을 보며 남편도 미소를 짓는다.

 

 넓디넓은 허공을 멋지게 장악할 사두.
넓디넓은 허공을 멋지게 장악할 사두. ⓒ 이연옥

 

이렇게 남편은 요지부동 움직일 줄 모르던 몸을 움직여 시위를 당기기 시작했다. 남편은 아직 화살을 재우는 단계는 아니어서 활 줄을 당기는 연습을 하며 궁도에 빠져들고 있다.

나이 들어 한 가지 취미를 갖는 다는 일, 그것은 앞으로 남은 시간을 좀 더 건강하고 활기차게 보낼 수 있는 약이 된다. 그래서 늘 걱정하던 일이 한 가지 줄어들었다. 아무쪼록 남편이 새로 갖게 된 취미생활로 넓기만 한 허공을 힘차게 날아오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시흥시민뉴스에도 게재합니다.


#노후의 취미#활#사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흥시민뉴스에 기사를 20 건 올리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오마이 뉴스에도 올리고 싶습니다. 그동안 올렸던 기사는 사진과 함께 했던 아이들의 체험학습이야기와 사는 이야기. 문학란에 올리는 시 등입니다. 이런 것 외에도 올해는 농촌의 사계절 변화하는 이야기를 사진을 통해서 써보려고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