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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한 KBS 사극 <천추태후>. 채시라가 주인공 천추태후역을 맡았다.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한 KBS 사극 <천추태후>. 채시라가 주인공 천추태후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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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야심차게 준비한 대하사극 <천추태후>가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외적의 침입에 맞서 누란의 위기에 처한 고려를 구해내는 여걸로 그려진 천추태후의 일대기를 그린 사극 <천추태후>는 방영 전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2006년부터 불어닥친 고구려 사극의 열풍이 잠잠해짐과 동시에 오랜만에 선보인 고려시대 사극이라는 점, 여느 사극과는 다르게 여성, 그것도 왕의 어머니인 천추태후를 주인공으로 전면에 세웠다는 점, 채시라·김석훈·최재성·이덕화 등 쟁쟁한 배우들의 캐스팅 등 <천추태후>는 제작단계에서부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시작 전부터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한 덕분일까, 본편이 방영되기 전 지난 1일 먼저 전파를 탄 <천추태후 스페셜>은 12.4%(TNS미디어코리아)의 적지 않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드라마 성공의 청신호를 알렸다. 그리고 지난 3일, 첫회에서 무려 20.0%(이하 동일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해 첫 방에 20%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는가 하면 이튿날에는 24.3%의 시청률로 방송 2회 만에 동시간대 최강자로 자리매김했다.

덕분에 <천추태후>는 전작 <대왕세종>의 부진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던 사극왕국 KBS의 명예회복에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방송 2회째 24.3% 시청률 기록... 동시간대 최강자

<천추태후>는 요즘 사극들의 이른 바 '대박 공식'을 그대로 차용했다. 먼저 1회에서 대규모 전투신을 배치하여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했다. 요나라가 송나라와의 전쟁에서 맹수를 전장에 풀었다는 역사기록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은 제작진이 국내 최초로 시도한 곰전투 장면을 비롯해서, 전 세계에서 10대 밖에 없다는 HD초고속 카메라를 국내 최초로 사용하여 요나라 장수 소손녕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에 쳐들어온 거란 1차 침입 전쟁의 초반부를 빼어난 영상과 스펙터클한 장면으로 재현해냈다.

아역배우들의 눈도장도 확실했다. <태왕사신기>의 박은빈과 심은경, <왕과 나>의 유승호와 박보영, <이산>의 박지빈과 이한나 등 성공한 사극의 뒤에는 극의 초반을 힘있게 끌어간 아역들의 열연이 있었다.

<천추태후>도 이와 마찬가지로 첫 회에서 대규모 전투신으로 이목을 집중시킨 이후 2회부터는 아역배우들의 열연이 펼쳐졌다. 특히 천추태후 채시라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김소은에게 관심이 집중되었는데, 극중에서 어리지만 의협심이 넘치고 남자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는 천추태후의 유년시절을 무리없이 소화해내 시청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신인배우와 중견 연기자의 신구 조합은 시청자에게 신선함과 편안함을 동시에 주는 효과를 냈다. 극중 김치양(김석훈 분)의 수하 사일라 역을 맡은 이채영은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 연기와 애절한 표정 연기를 훌륭하게 선보이며 <다모>의 하지원, <해신>의 김아중으로 이어지는 여전사 계보를 잇는 캐릭터로 방송 2회 만에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와 더불어 김석훈(김치양 역), 최재성(강조 역), 김호진(왕욱 역) 등의 연기력이 뒷받침되는 주연급 배우들과 이덕화(강감찬 역), 김명수(성종 역), 최철호(경종 역), 최동준(대도수 역), 임혁(서희 역), 전무송(이지백 역) 등 사극에서 활약했던 중견 연기자들의 열연은 극에 힘을 더하고 있다.

그러나 <천추태후>에게는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있다. 역사왜곡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역사적으로 천추태후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박하다.

경종의 황후인 천추태후는 경종이 죽고 나자 처소인 천추궁에 김치양을 자주 출입시켰고, 이에 추문이 퍼지자 성종이 김치양을 유배보내기까지 했다. 997년(성종 16년) 성종이 죽고 그녀의 아들 목종이 즉위하자 천추궁에서 섭정을 했는데, 김치양을 유배지에서 불러들여 높은 관직을 주고 정사를 손에 쥐고 흔들었다.

또한 목종에게 후사가 없음을 이용해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목종의 후계자로 삼기 위하여 왕실의 후계자이자 왕의 당숙인 대량원군 왕순을 죽이려 하는 등 10여 년 간 전횡을 일삼다 '강조의 정변'으로 몰락한 인물이 바로 천추태후이다.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한 KBS 사극 <천추태후>. 중견배우들의 열연이 기대된다. 사진은 강감찬역을 맡은 이덕화.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한 KBS 사극 <천추태후>. 중견배우들의 열연이 기대된다. 사진은 강감찬역을 맡은 이덕화.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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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상 천추태후 역할 미미...역사왜곡 논란 일 듯

이런 천추태후를 제작진은 '한국의 잔다르크'로 소개하며 재조명에 나섰다.

물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며, 유교보다 불교를 더 숭상하고 왕의 모후이면서도 사사로이 신하와 통정해 자식까지 둔 그녀에게 후대 유학자들의 평이 박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녀에 대한 재평가는 일면 수긍가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녀가 거란의 1~3차 침입 전쟁을 모두 주도하며 맞서 싸웠다는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근거를 찾기가 쉽지 않다. <천추태후> 홈페이지 기획의도란에는 "대륙의 패자 거란에 대항하여 무려 세 차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위대한 선조들을 반추하며…, 고구려의 고토를 회복하고자 했던 천추태후에게 주목한다"고 되어 있다.

드라마의 주인공이 천추태후인만큼 그녀가 거란의 세 차례의 침략 전쟁에 주도적으로 맞서 싸우는 인물로 그려질 것이란 건 충분히 예상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천추태후는 거란의 2·3차 침입 전쟁과는 관련성이 크다고 보기 힘들다.

그녀가 실정하고 몰락한 건 강조의 정변이 있었던 1009년(목종 12년)의 일이다. 실정 이후 그녀는 섬으로 유배되었다 훗날 황주로 내려가 여생을 보냈다고 되어있다. 그런데 거란의 2차 침입 전쟁은 강조의 정변과 목종 폐립을 구실로 1010년(현종 1년)에 일어났고, 3차 침입 전쟁은 그보다 8년 뒤인 1018년(현종 9년) 고려가 강동 6주 반환과 현종의 요양 입조를 거부하자 일어났다. 시기상으로 그녀가 거란의 2·3차 침입 전쟁에서 주도적 위치에 있었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거란의 1차 침입 전쟁도 마찬가지다. 드라마 첫 회에서는 천추태후가 거란 진영에 잠입해 화공을 펼치고 안융진으로 가 수하들과 함께 민병대를 조직해 거란의 침입에 맞서 싸우는 장면을 중점적으로 보여줬다. 이 과정에서 거란에게 서경 이북의 영토를 내어 주자는 '할지론'에 동조하는 유약한 임금 성종과 그에 반하여 주전론을 펼친 천추태후의 강인한 모습이 대비됐다.

그런데 <우리역사의 수수께끼1(이덕일·이희근 공저)>에 따르면 실제 안융진 전투에서 거란군을 대패시킨 건 천추태후가 아닌 중랑장 대도수와 낭장 유방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드라마 상에서는 천추태후가 대도수와 유방을 휘하에 두고 부리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이처럼 역사왜곡 논란의 소지가 다분한 까닭에 '대하사극'을 표방하고 있는 <천추태후>에 대한 우려와 의혹의 시선은 당분간 끊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천추태후>가 이를 잘 넘기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로 앞으로의 성공 여부를 점칠 수 있다.

비슷한 예로 SBS의 대하사극 <연개소문> 역시 대규모 전쟁신의 화려함과 볼거리로 초반 20%가 넘는 시청률을 올리며 큰 주목을 받았으나 이후 끊임없는 역사왜곡 논란과 이야기 전개 구조의 허술함 등의 문제점으로 초반의 인기를 넘어서는 데 실패했다. 모쪼록 여러 난관을 슬기롭게 풀어내 한 편의 웰메이드 사극이 탄생하길 바라본다.


태그:#천추태후, #KBS, #채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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