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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유유자적하지 못하고

.. 때로는 시원하게 일거리를 놓아 버리고 유유자적하지 못하고, 늘 거기에만 매달려 있는 이 아버지의 성격 탓에 너희들이 아버지에게 마음대로 안겨들지 못했던 듯 싶다 ..  《이광규-대학에 들어간 아들에게》(집현전,1990) 머리말

“아버지의 성격 탓에”는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으나, “아버지 성격 탓에”나 “아버지 탓에”처럼 적으면서 토씨 ‘-의’를 털어내면 한결 낫습니다.

 ┌ 유유자적(悠悠自適) :  속세를 떠나 아무 속박 없이 조용하고 편안하게 삶
 │   - 그는 은퇴 후 낙향하여 유유자적의 생애를 보냈다 /
 │     그런 일을 당하고도 유유자적 행사 구경만 하고 돌아다니는
 │
 ├ 유유자적하지 못하고
 │→ 느긋하지 못하고
 │→ 홀가분하지 못하고
 └ …

아무리 바빠도 부모 노릇은 해야 하고, 아무리 바빠도 밥은 먹고 잠도 자야 합니다. 아무리 할 일이 쌓여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일에서 벗어나도 안 되고요. 그렇지만 우리는 너무 일이고 사람이고 무엇에 치이고 매달리고 쫓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 유유자적의 생애를 보냈다 → 느긋하게 삶을 꾸렸다 / 느긋하게 살아갔다
 └ 유유자적 돌아다니는 → 느긋하게 돌아다니는 / 걱정없이 돌아다니는

일을 할 때에나 말을 할 때에나 좀더 느긋하고 홀가분할 수 있으면 더없이 좋을 텐데, 우리 스스로 고삐를 지나치게 죄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자기가 쓰는 말을 가만히 돌아보면서 ‘지금 내가 쓰는 이 말이 얼마나 알맞고 좋은가’를 살펴보면 한결 나아요. 이렇게 하면, 말도 더 알뜰하게 다듬을 수 있고, 듣는 이와 말하는 이 모두 즐거운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말씀씀이나 글씀씀이는 퍽 엉성하거나 얄궂습니다.

왜 이럴까, 왜 이렇게 우리는 우리 말과 글을 살뜰히 추스르지 못할까를 헤아려 보곤 합니다. 아무래도 모두들 너무 바쁘기 때문일까요. 무엇엔가 쫓기고 있기 때문일까요. 돈벌이를 하는 데에 몹시 바쁘고, 옆사람하고 치고박고 겨루느라 쫓기고 있기 때문일까요.

ㄴ. 심신의 안정과 유유자적

.. 젊은 시절의 행복과 보람은 오히려 고난의 극복에 있지만, 노후의 행복은 심신의 안정과 유유자적에 있다 ..  《박완서-혼자 부르는 합창》(진문출판사,1977) 118쪽

“젊은 시절(時節)의 행복(幸福)”은 “젊은 날 누리는 행복”이나 “젊은 날 맛보는 즐거움”으로 손질합니다. “고난(苦難)의 극복(克服)에”는 “괴로움을 이겨내는 데에”나 “힘겨움을 딛고 서는 데에”로 다듬고, “노후(老後)의 행복(幸福)”은 “늘그막에 누리는 행복”이나 “늙어서 맛보는 즐거움”으로 다듬으며, “심신(心身)의 안정(安定)과”는 “몸과 마음이 느긋해짐과”나 “몸과 마음을 걱정없이 다스리는 데와”로 다듬어 봅니다.

 ┌ 심신의 안정과 유유자적에
 │
 │→ 몸과 마음이 차분해지고 느긋해짐에
 │→ 몸이며 마음이 차분하고 넉넉할 때에
 │→ 몸하고 마음이 차분하고 너그러울 때에
 └ …

보기글을 읽으며 참말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젊은 날에는 온갖 어려움과 힘겨움을 뚫으면서 제 갈 길을 제힘으로 꿋꿋하게 걸어가는 보람과 즐거움으로 살게 됩니다. 젊다고 할 만한 나이가 조금씩 꺾이게 되면 저절로 이 가시밭길보다 느긋해질 수 있는 삶을 바라게 됩니다. 저 또한 때때로, 이렇게 고달프게 살아야 하는가 하고 돌아보곤 하는데, 몸은 고달프더라도 마음은 느긋하기에 앞으로도 이 삶 그대로 이어가야 하지 않느냐 하고 마음을 다지게 됩니다.

 ┌ 차분한 몸과 느긋한 마음에
 ├ 튼튼한 몸과 걱정없는 마음에
 ├ 홀가분한 몸과 넉넉한 마음에
 └ …

고달프다고 해 보아야 얼마나 고달프고, 팍팍하다고 해 보아야 얼마나 팍팍하며, 쓸쓸하다고 해 보아야 얼마나 쓸쓸하느냐고 스스로 묻습니다. 걸을 만하니 걷는 길이고, 할 만하니 하는 일이요, 헤쳐나갈 뜻이 있으니 헤쳐나가게 됩니다. 남들이 걷던 길이든 아니든 크게 마음쓸 대목이 아닙니다. 돈이든 이름값이든 무엇이든 거두어들일 수 있든 없든 거의 마음둘 대목이 아닙니다. 한 사람으로 목숨을 받고 태어나서 조용히 숨을 거두는 날까지, 제 몸과 마음을 고이 바칠 수 있느냐 없느냐, 이 한 가지를 바라보고 살피고 쓰다듬어야지 싶습니다.

느긋함이란 이런 데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느낍니다. 넉넉함이란 이런 데에서 가지를 친다고 느낍니다. 너그러움이란 이런 데에서 꽃을 피운다고 느낍니다. 아름다움이란 이런 가운데 열매를 맺고 씨를 땅으로 돌려준다고 느낍니다.

ㄷ. 유유자적하게 노래하고

.. 오렌지색 볼록한 배를 지닌 피리새였습니다. 이렇게 추운데도 유유자적하게 노래하고 있었네요 ..  《이마이즈미 미네코,안네테 마이자/은미경 옮김-숲에서 크는 아이들》(파란자전거,2007) 94쪽

‘오렌지색(orange色)’은 ‘귤빛’으로 손봅니다. “볼록한 배를 지닌 피리새”는 “배가 볼록한 피리새”로 고쳐 줍니다.

 ┌ 유유자적하게 노래하고
 │
 │→ 한갓지게 노래하고
 │→ 걱정없이 노래하고
 │→ 신나게 노래하도
 │→ 잘도 노래하고
 └ …

추운 날씨에도 느긋하게 노래를 하고 있는 새라면, 참으로 한갓지게 노래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느 한편으로는 참 ‘잘도’ 노래하네 생각할 수 있고요. 추운 날에 잘도 노래하는 새라면, ‘신나게’ 노래하고 있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구나 싶기도 해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태그:#고사성어, #상말, #우리말, #우리 말,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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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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