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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미소가 예쁘다.
아이미소가 예쁘다. ⓒ 문종성

 

멕시코 남부의 중심도시 오악사까에서 조금 더 들어간 길. 한 눈에 보기에도 허름한 집들로 더덕더덕 붙어있는 작은 마을에서 예배가 열린단다. 하지만 골목을 돌고, 씀벅거리며 고개를 돌려도 교회가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서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선교사님의 안내를 받고 어느 작은 집 대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아주 초라한 예배당을 발견할 수 있었다. 미자립 교회로 가정을 빌려 드리는 예배였다.

 

은폐엄폐하던 개구쟁이 녀석들, '과자' 한마디에 돌변 

 

미소 장난감 차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낀다.
미소장난감 차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행복함을 느낀다. ⓒ 문종성

시간이 조금 남았다. 아이들은 낯선 이에게 호기심을 보이면서도 쉽게 다가오질 못했다. 멀리서만 수줍은 듯 웃어 보이다 도망가기를 수차례.

 

친해지고 싶어도 제 먼저 달아나는 통에 선뜻 살갑게 대할 수도 없다. 내가 가는 길마다 뒤쫓아오면서도 막상 뒤돌아보면 숨어 버리는 녀석들.

 

"과자 먹으러 안 갈래?"

 

이 한 마디는 마법과 같은 것이었다. 여기저기 은폐엄폐하던 개구쟁이 녀석들이 일제히 몰려 나왔다. 손을 내밀었다. 덥썩 잡는다. 꽈악. 폴짝폴짝, 가게까지 가는 길에 아이들 걸음에 생기가 돈다. 그런데 막상 슈퍼에 들어가서는 머뭇거린다.

 

"괜찮아, 아무거나 골라."

 

웃으며 얘기하자 철없는 막둥이 녀석이 잽싸게 과자 하나를 집어들더니 하나 더 집어도 되느냐는 무언의 표정으로 내 눈치를 본다. 바닐라 맛과 초콜릿 맛 어느 것 하나 놓치기 싫은 폼이다. 누나가 얼른 어깨를 잡고 말리는 시늉을 하자 아이는 어깨를 털며 내게서 나오는 보다 정확하고 현명한 답을 기다린다.

 

개구쟁이 형제 포즈가 여간 재밌지 않다.
개구쟁이 형제포즈가 여간 재밌지 않다. ⓒ 문종성

 

"괜찮다니깐. 하나 더 골라도 돼.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다 골라 봐."

 

아이는 신이 났다. 초라한 가게라 먼지 수북 쌓인 몇 개의 과자뿐이지만 브레이크 없는 스포츠카 마냥 진열대의 과자를 재빨리 모두 눈으로 훑는다. 그러고는 제법 묵직한 과자를 조막만한 손에 쥐고는 누가 뺏을까 다 들어가지도 않는 주머니 속에 억지로 담는다. 요리조리 요령을 피워보지만 주머니 밖으로 과자가 반은 나와 있다. 그럼 다시 낡은 티셔츠를 과자 위로 덮어 제 딴엔 표시가 안 나도록 노력한다.

 

다른 아이들도 순례행렬(?)을 마치고 이제 나를 친구로 맞아들이기로 작정했다는 듯 깔깔거린다. 조금이라도 나이가 든 녀석들은 괜찮다며 눈치껏 하나만 집는다. 막내들은 이성보다 본능이 우선이다. 예닐곱 살 먹은 녀석들은 욕심을 차릴 때가 가장 아이답다. 그 때가 귀엽다.

 

나이가 든 녀석들은 눈치껏 하나만!

 

예배 10여명 남짓 드린 가정교회 예배.
예배10여명 남짓 드린 가정교회 예배. ⓒ 문종성

예배가 시작될 즈음, 자리를 채운 사람은 고작 열 명 남짓 정도다. 그나마 아이들까지 합해서다. 하지만 여느 예배 못지않게 이들은 신에 대한 절절한 믿음을 고백한다. 달랑 기타 한 대로 드리는 작은 모임이지만 무엇보다 교회의 크기나 예배 시스템 등 본질을 벗어난 형식적 프로그램이 아닌 자발적 모임으로 이뤄진 순수함이 좋았다. 같이 기도하고, 같이 노래 부르면서 간만에 사람 본위가 아닌 자연스런 예배를 드리며 물밀듯 밀려오는 평안에 감사했다.

 

예배 작은 인원이지만 진솔하게 드린다.
예배작은 인원이지만 진솔하게 드린다. ⓒ 문종성

예배 후에는 다른 가정집을 방문했다. 사고로 다리를 다쳐 위로가 필요한 곳이었다. 언덕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자 듬성듬성 판자촌 다름아닌 마을이 나왔다. 집의 구조는 처참했다. 일단 지붕이 없다. 다행히 추위가 엄습하지 않는 지역이긴 하지만 비라도 오는 날엔 어떻게 하는 건지.

 

게다가 집은 3평이나 될 만한 방 하나에 모든 세간들이 다 놓여 있었다. 방 한 켠엔 다 낡아 떨어진 침대, 그리고 부엌도 없이 모든 주방용품이 침대 맞은편에 나뒹굴고 있었고, 옷이라고 해봐야 폐품 수준의 몇 벌만이 구석에 쳐박아져 있었다. 최악의 위생상태에 노출된 것이다.

 

오랫동안 씻지 않아 보이는 아이들은 집에 손님이 방문했다고 좋아한다. 아이 엄마는 누워있는 남편을 뒤로하고 손님에게 뭐라도 대접하려고 한다. 교회에서 지원을 해주기는 하지만 교회사정도 열악하기는 매한가지라 서로가 위로하며 험한 삶을 버텨 나간다. 이들은 동이 트면 길가로 나가 재활용품 수거 등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간다. 어쩌다 우유라도 마시는 날엔 아이들 표정이 행복하기만 하다.

 

어쩌다 우유라도 마시는 날, 행복하다

 

무허가 주택 휑하니 지붕이 뚫려 있다.
무허가 주택휑하니 지붕이 뚫려 있다. ⓒ 문종성

오늘은 좋은 날 손님이 방문하자 아이들이 좋아한다. 한 잔의 우유를 언니 대신 동생이 마셨다.
오늘은 좋은 날손님이 방문하자 아이들이 좋아한다. 한 잔의 우유를 언니 대신 동생이 마셨다. ⓒ 문종성

몇 백만 원이 없어 집 한 채를 온전히 짓지 못하며 돼지우리와 다를 바 없는 판잣집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가난은 누구의 책임일까. 무조건 이들의 무능력만을 탓해야 할까. 그나마 '지지직'거리지만 드라마라도 볼 수 있는 TV가 있는 것이 이들의 유일한 위안이다. 물론 전기는 조잡한 전선을 엮어다 불법으로 끌어다 쓰고 있지만 전기, 수도 시설도 갖추지 못한 곳에 이것까지 통제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처사 같다.

 

예배 후 소박한 전체 사진.
예배 후소박한 전체 사진. ⓒ 문종성

밤늦은 시각, 벌레 우는 소리와 휘영청 밝은 달이 마치 내 어릴 적 시골 같아 낯설지 않은 마을을 빠져 나오면서 나는 무엇보다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 본다.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일터로 내몰리는 아이들에게 만이라도 작은 희망이 있다면….

 

교육을 받지 못하니 사회 약자로 남아 어느 외진 곳에 그들만의 무리를 이뤄 모든 것으로부터 도태되고 다시 교육을 못 받는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 정녕 부모의 억센 운명을 온 몸으로 다 받아내야 하는 이 조그만 아이들을 구원할 제도는 전무한 건지 안타까운 일이다.

 

어쩐지 나는 이런 가혹한 운명에 처하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혼자만 빠져 나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마음에 걸린다. 바쁜 일상 속에 며칠만 지나면 기억 속에 희미해질지 모를 이곳에 따뜻한 봄날이 찾아오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숙소로 돌아가는 길, 차창 밖으로 쇼윈도에 비친 블라우스와 컴퓨터들이 전혀 딴 세상을 말해주고 있다. 나도 다시 그 세상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생일파티 아이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곳은 패스트 푸드점. 이곳에서 생일파티 하는 장면을 종종 목격했다.
생일파티아이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곳은 패스트 푸드점. 이곳에서 생일파티 하는 장면을 종종 목격했다. ⓒ 문종성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현재 '광야'를 모토로 6년 간의 자전거 세계일주 중입니다. 
저서 <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 출판)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 


#멕시코#세계일주#자전거여행#라이딩인아메리카#오악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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