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 최고의 영양 간식이었던 붕어빵.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 최고의 영양 간식이었던 붕어빵.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예나 지금이나 붕어빵에는 이야기 거리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는 이야기에서부터 많이 닮은 형제를 빗대 '붕어빵형제'라고 하고, 획일적인 정책을 비판할 때 '붕어빵식'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초등학생이 붕어빵을 굽는 아버지의 직업에 대해 '수산업'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누구나 붕어빵에 얽힌 추억 하나쯤은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먹을 게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 붕어빵은 최고의 영양 간식이었습니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봐야 동전 한 푼 없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게 붕어빵입니다.

바람이 차가운 겨울이 되면서 슬비와 예슬이한테 입에 붙은 말이 하나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겨울만 되면 입버릇처럼 내뱉는 말입니다.

"도대체, 붕어빵 만들러 언제 가는 거예요?"
"띠기(뽑기)는요?"

 슬비와 예슬이가 24일 오후 송학민속체험박물관에서 띠기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슬비와 예슬이가 24일 오후 송학민속체험박물관에서 띠기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붕어빵 만들기와 띠기(뽑기) 체험을 할 수 있는 송학민속체험박물관(전남 담양 소재)에 가자는 것입니다. 붕어빵과 띠기에 얽힌 향수도 없는 아이들이 겨울만 되면 성화입니다. 아이들의 성화는 날씨가 추워도, 바람이 매서워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송학박물관에 데려다만 달라는 것입니다.

송학민속체험박물관의 붕어빵 만들기와 띠기 체험은 겨울철 체험꺼리입니다. 올해도 12월에 접어들면서 해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달 들어 매 주말과 휴일만 되면 이런저런 일이 생겨 가보질 못했습니다. 최근엔 아이들의 기말시험 때문에 미뤄졌습니다. 이번 휴일에도 집안의 행사가 있어 송학박물관으로의 나들이가 어려운 형편입니다. 해를 넘겨야 할 처지입니다.

 국자에 담긴 설탕이 연탄불 위에서 녹고 있습니다. 오른쪽은 소다를 넣어 부풀어 오른 모습입니다.
 국자에 담긴 설탕이 연탄불 위에서 녹고 있습니다. 오른쪽은 소다를 넣어 부풀어 오른 모습입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예수님 덕분에 하루 쉬는 성탄절. 눈 뜨자마자 식사를 했는데, 해가 벌써 중천에 떠 있습니다. 밥 숟가락을 놓고 집안정리를 하자마자 큰 아이 슬비가 말을 걸어옵니다.

"아빠! 오늘 뭐하실 거예요?"
"응, 할 일이 많아서 집에서 일 좀 해야겠는데…. 너희들끼리 놀면 안 될까?"

"오늘 성탄절인데, 우리 잠깐 드라이브 하고 오면 안 될까요?"
"어디로?"

"어디로 가시든 아빠 맘대로 하세요. 저는 밖에 나가는 것만으로 좋아요."
"그래? 그럼 우리 멀리 가지 말고 가까운데 가서 바람이나 쐬고 오자."

머릿속에 짜놓은 하루일정을 잠시 접어놓고 외출 준비를 합니다. 시간은 벌써 오후 3시. 중천에 떠있던 해의 무게중심이 서쪽으로 눈에 띄게 기울어 있습니다. 어디로 갈까?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데, 무등산이나 한 바퀴 돌다 올까. 아니면 크리스마스축제를 한다는 이슬촌에 한번 다녀올까. 잠시 고민이 되더니 마음이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이왕 나온 거, 아이들이 평소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슬비야! 송학에 붕어빵 만들러 갈래?"
"그럼 저야 좋죠."

"예슬이는?"
"나도 좋아. 빨리 가! 나는 띠기를 많이 할거야."

 몸을 움츠린 채 띠기 체험을 하고 있는 예슬이와 슬비. 날씨가 추워 중무장을 했지만 추위는 피할 수 없습니다.
 몸을 움츠린 채 띠기 체험을 하고 있는 예슬이와 슬비. 날씨가 추워 중무장을 했지만 추위는 피할 수 없습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담양으로 갑니다. 차창으로 스치는 겨울 풍경이 고요하기만 합니다. 거리에서 성탄절 분위기도 전혀 느낄 수가 없습니다. 들녘의 보리밭만 푸릇푸릇 생기를 띠고 있습니다. 보리밭은 올 겨울도 그렇게 맨몸으로 버티는가 봅니다.

집을 나선지 40여분 만에 송학민속체험박물관에 도착합니다. 이 순간 아이들의 관심은 붕어빵과 띠기 체험이 전부입니다. 슬비와 예슬이 둘이서 사이좋게 띠기 체험을 두세 차례 합니다. 지난 겨울에 해보고 1년 만에 다시 해보는 띠기 체험이지만 손놀림이 능수능란합니다. 전용 국자에 설탕을 한 숟가락 넣고 연탄불에 올려 국자를 달굽니다.

설탕이 녹으면서 국자에 눌어붙지 않도록 한손으로는 나무젓가락을 잡고 쉼 없이 저어줘야 합니다. 슬비의 손놀림에서는 여유가, 예슬이의 손에서는 부지런함이 묻어납니다. 그 사이 설탕이 다 녹고, 거기에 약간의 소다를 찍어 넣어 부풀리게 한 다음 설탕이 깔려있는 판에 붓습니다. 그 다음엔 여러 가지 틀을 가지고 원하는 모양을 찍어냅니다.

슬비는 말 모양을, 예슬이는 자동차 모양을 찍습니다. 그리곤 입으로 '쏘옥'. 띠기 체험을 두세 번 하더니 슬비는 붕어빵을 만들러 갑니다. 예슬이는 아예 자세를 다잡고 다시 앉습니다. 체험을 할 때마다 직접 만든 설탕과자(띠기) 한 조각씩을 입에 넣어줍니다. 너무 달아서 먹는 게 곤혹입니다.

"내가 만든 게 맛 없어?"
"아니! 맛은 있는데, 아빠는 원래 이 과자 안 좋아해."

 슬비가 붕어빵 틀에 밀가루 반죽을 붓고 있습니다. 오른 쪽은 다 구워진 붕어빵을 보고 흐뭇해 하는 슬비의 모습입니다.
 슬비가 붕어빵 틀에 밀가루 반죽을 붓고 있습니다. 오른 쪽은 다 구워진 붕어빵을 보고 흐뭇해 하는 슬비의 모습입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준비된 설탕이 다 없어질 때까지 연탄불 옆에서 띠기를 계속할 태세인 예슬이를 놔두고 슬비한테 가봅니다. 슬비는 벌써 붕어 모양이 새겨진 금형에 밀가루 반죽을 붓고 있습니다. 거기에 팥소(앙꼬)를 넣고 다시 밀가루 반죽으로 덮습니다. 밀가루 반죽과 팥소는 다 준비돼 있던 것입니다.

붕어빵틀 하나하나에 밀가루 반죽과 팥소가 다 채워졌습니다. 빵틀을 시계방향으로 돌리는 슬비의 손놀림도 빨라집니다.

"아빠는 팥이 많이 들어간 걸 좋아하시잖아요. 그래서 팥을 많이 넣고 있어요."
"그래 고맙다. 역시 우리 슬비가 최고야."

실제 슬비는 붕어빵의 머리에서부터 꼬리에까지 팥소를 듬뿍 넣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차가워 춥다고 하면서도 얼굴만은 흐뭇해 보입니다. 그 사이 붕어빵 틀이 한바퀴 돌고 다 익은 것이 하나씩 낚여져 나옵니다.

"이거 아빠가 먹어도 돼?"
"예. 드세요. 아빠 드시라고 팥을 많이 넣었어요."

"와! 정말 맛있는데, 색깔도 예쁘고."
"진짜요?"

손이 시리고 온몸이 떨린다고 하면서도 슬비의 붕어빵 만들기는 멈추질 않습니다. 추우면 옆의 매점에 들어가서 장작난로에 몸을 녹이고 다시 하라고 해도 "괜찮다"고만 합니다.

 풀빵에서 진화한 붕어빵은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붕어빵 만들기 체험은 담양에 있는 송학민속체험박물관에서 해볼 수 있습니다.
 풀빵에서 진화한 붕어빵은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붕어빵 만들기 체험은 담양에 있는 송학민속체험박물관에서 해볼 수 있습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벌써 서편으로 기운 해의 흔적까지 사라지고 없습니다. 산 밑에 자리한 박물관이어서 그런지 바람도 더 차가워졌습니다. 아이들의 체험은 전등불 아래에서도 계속됩니다. 온몸이 떨려서 더 이상 옆에서 체험을 지켜볼 수 없을 지경입니다. 어릴 적 풍경 그대로의 매점에 들어가 장작난로를 보듬습니다.

몸이 나른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는데도 피로가 몰려옵니다. 밖에서 오들오들 떤 탓인가 봅니다. 그때 예슬이가 안으로 들어옵니다. 띠기의 재료인 설탕이 다 떨어지고 없다는 것입니다. 슬비도 붕어빵을 가득 담은 큰 봉지 하나를 들고 들어옵니다. 더 이상은 추워서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틈에 예슬이가 한 마디 합니다.

"예슬이는 띠기의 달인이야. 언니는 붕어빵의 달인이고."
"……."

두 시간 정도 붕어빵과 띠기 체험만 한 것 같습니다. 떡메치기, 굴렁쇠 굴리기, 윷놀이, 널뛰기, 투호 던지기, 지게 져보기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민속놀이와 체험거리가 널려 있지만 쳐다볼 겨를도 없이 밤이 돼버렸습니다. 겨울 반나절이 그렇게 짧을 수가 없습니다.

 추운 날씨 탓에 연탄불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습니다. 이 연탄불은 학창시절 추억을 떠올려 줍니다.
 추운 날씨 탓에 연탄불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습니다. 이 연탄불은 학창시절 추억을 떠올려 줍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붕어빵 만들기와 띠기(뽑기) 체험은 '대나무고을' 담양에 있는 송학민속체험박물관에서 해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붕어빵과 띠기 외에도 수십 가지의 민속놀이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옛 추억을 떠올려주는 전시관도 있습니다. 황토로 지어진 초가집에서 민박도 할 수 있습니다. 이 박물관은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 담양리조트와 담양호 사이에 있습니다.



#붕어빵체험#띠기체험#송학민속체험박물관#담양#슬비와 예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