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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올 것이 왔다.'

 

며칠 전 집에 도착한 큰아이의 취학통지서를 본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그리고 마침내,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비장한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 여덟살이 되는 큰아이는 당연히 초등학교에 입학을 해야 한다. 당연한 일임에도 왜 이렇게 마음이 무거운 것일까.

 

"몇 살이니? 일곱 살? 그럼 내년에 학교 가겠네? 아이구... 고생문이 훤하게 열렸다."

"쯧쯧... 너도 이제 좋은 시절 다 살았구나."

"고생 좀 하겠네. 지금 많이많이 놀아둬라."

"편한 밥 다 먹었다."

 

요즘 딸아이와 내가 오며가며 가장 많이 듣는 말중의 하나다. 올 초, 여름까지만 해도 이런말들을 들으면 그냥 웃어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압력(?)이 느껴졌다. 한두 사람도 아니고, 보는 사람들마다 이렇게 염려어린 이야기들을 하곤 한다. 어느 분은 딸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때마다 딸아이는 이렇게 묻는다.

 

"학교를 가는데 왜 고생문이 열린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학교를 가면 일찍 일어나야 하고, 숙제도 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니까 유치원 때와는 좀 많이 다르거든. 그러니까 좀 힘들다는 거야."

"난 신나기만 한데 뭘."

 

밤마다 문구점을 두드려야했던 직장맘의 경험

 

유치원은 엄마인 내가 먼저 아이의 등을 떠밀어 보냈지만 학교는 정말 가능하면 늦추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 다 가는 학교, 뭐 그리 유난을 떠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요즘 초등학교의 현실을 보면 우울함이 먼저 앞선다.

 

또래 엄마들은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로 나를 한층 더 주눅들게 한다. 초등학교 1, 2학년을 둔 친구들이나 언니들 이야기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학교를 들어가는 게 아니라 무슨 지옥문앞에 서 있는 기분이다.

 

"숙제, 준비물 때문에 초등학교 1학년은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어. 애들 숙제가 아니라 완전히 엄마 숙제야. 아침에 갈 때 데려다 줘야지 오후에 또 데리고 와야지. 난 우리애 초등학교 1학년 때 준비물 때문에 퇴근하고 밤에 문구점 문을 두드리면서 온 문구점이란 문구점은 다 쓸고다녔던 것 같아." - 같은 직장 선배의 말.

 

"요즘 세상이 좀 무섭니? 여자애들은 특히 더 조심스럽거든. 아무리 교육(?)을 시켜도 애들은 애들이거든. 정말 조심해야 돼. 그냥 아예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게 편해. 학원도 바로 데려다줘야 하고. 엄마가 기사노릇까지 해야 된다니까."

 

"영어는 1학년 때부터 확실히 해 둬야 돼. 나중에 가면 늦는다. 대학 당락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결정된다는 말도 있잖아. 그게 과장이 아니더라구."

 

그리고는 영어교재는 뭐가 좋다는 둥 논술을 어떻게 준비해야한다는 둥 예능교육은 무엇부터 시키는 것이 좋은지, 독서는 어떤 책을 주로 읽혀야하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있으면 눈이 핑핑 돌아간다.

 

집에 엄마가 있느냐, 없느냐... 천지차이?

 

평소 펄럭귀를 자랑하지만 나이지만 그래도 이러한 일희일비, 교육풍토에 휩쓸리지는 않으리라, 속으로 재차 다짐을 한다. 그러면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다는 듯 한 엄마가 내게 얘기한다. 우아한 웃음을 지으며.

 

"의진 엄마는 안그럴 것 같지? 그런데 나중에 학부모 돼 봐. 정말 귀막고 눈막지 않는 이상 안 그럴 수가 없어. 나도 처음엔 의진 엄마 같았지. 그런데 나중에 밤 12시까지 애 붙잡고 숙제검사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니까."

 

그리고 기어코 내 마음에 100톤짜리 쇠덩어리를 얹어놓으며 마무리. 

 

"그러게. 엄마가 집에 없는 애들이랑 엄마가 있는 애들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니까. 뭘해도 차이가 나."

 

그 한마디에 이르러, 나는 더 이상 '의연한 척'을 할 수가 없게 된다. 내 안의 무엇인가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 왜냐하면 우리 딸아이는 분명 '엄마가 집에 없는 애'가 될 경우가 더 많을 테니까.

 

"초등학교 1학년 엄마한테 자기 생활이 어딨어? 아이들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 기다렸다가 간식 챙겨 먹여야지, 숙제 봐줘야지, 시간 맞춰 학원 보내야지. 취미생활? 어이구... 꿈도 야무져. 취미생활은 고사하고 친구 만나기도 힘들고 좋아하는 드라마도 못 봐."

 

초보 학부모에게 격려를 해주세요

 

취미생활은 고사하고 좋아하는 드라마도 못 보고, 친구도 못 만나는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라. 절대 행복할 것 같지 않다. 생지옥도 그런 생지옥이 없을 것 같다.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이에게도 스트레스가 될 것임은 뻔한 일. 내 아이를 위해서라도 나부터 조금 더 스트레스에 무뎌져야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초보 학부모의 심정은 설렘보다는 걱정과 우려가 더 많을 것이다. 그래도 마음에 있는 돌덩이를 조금 덜어내기로 했다.

 

주위에 초등학교 1학년 입학생이 있다면 '고생길이 열렸다'는 말 대신 '학교생활 신나겠다'라는 말로 용기를 북돋아주었으면 좋겠다. 왕초보 학부모에게는 특히 직장엄마들에게는 '엄마 없는 아이들은 표가 나더라'는 말 대신 '직장 다니랴, 학부모 노릇하랴 애쓰겠다'는 말로 바꿔서 해주면 어떨까.

 

딸 아이는 요즘 학교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요즘은 가슴에 하얀 손수건을 달지 않지만 하얀 손수건 같은 그런 순수하고 꾸밈없는 마음으로 입학할 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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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취학통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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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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