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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 문화란

 

 청소년한테 문화가 있으려면 어른한테 먼저 문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은 하루이틀 무럭무럭 자라서 머지않아 어른이 될 텐데, 자기가 보고 배울 ‘어른들 슬기롭고 사랑스럽고 즐거운 문화’가 없다면, ‘지금 청소년이 어른이 될 앞날에도 아무런 어른 문화도 청소년 문화도 없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자기가 따르거나 받아들일 어른들 삶이 형편없다면, 청소년이 앞으로 나아가거나 걸어갈 길은 끔찍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가엾습니다. 우리한테 제대로 된 청소년책이 없고 어린이책이 없는 까닭을 돌아보면, 무엇보다도 우리한테 제대로 된 어른책이 없기 때문이 아니랴 싶어요. 어른들 스스로 참다이 즐길 책이 없으니, 청소년과 어린이가 참다이 즐길 책이 없고 맙니다. 어른들 스스로 기쁘고 보람차게 누릴 책 문화가 있다면, 청소년이고 어린이고 따로 걱정할 까닭이 없이 넉넉하고 아름답게 책 문화를 맛볼 수 있습니다. 마땅할 테지요.

 

 청소년 범죄란 하나같이 어른들 범죄를 ‘나이가 청소년인 사람이 저질렀을’ 뿐입니다. 청소년이 어른들을 보면서 얄궂은 모습만 따르거나 배우는데, 우리 어른들은 청소년들이 우리 모습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는 줄 제대로 못 느끼고 있습니다.

 

 아이들한테 책을 읽으라고 숙제나 독후감쓰기를 시키는 일은 부질없다고 느낍니다. 스스로 반갑고 훌륭한 책을 만나서 읽었으면 누구나 저절로 느낌글을 쓰게 됩니다. 어른들부터 반갑고 훌륭한 책을 언제 어디에서나 알차게 즐기고 있다면, 아이들은 두말 않고 어른들 매무새를 배워서 제힘으로 신나게 책을 즐기게 됩니다.

 

 우리 어른들 스스로 책방 나들이를 안 하고 도서관 나들이를 안 하니, 어린이책도서관도 없고 청소년책도서관도 없지만, 참답고 훌륭한 어른책도서관 또한 없어요. 대한민국 어느 곳에 ‘문학 전문 도서관’이 있습니까. ‘그림 전문 도서관’이나 ‘사진 전문 도서관’이 있는가요. ‘연극 전문 도서관’이란, ‘만화 전문 도서관’이란, ‘역사 전문 도서관’이란, ‘한국철학 전문 도서관’이란 아직까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어린이책도서관을 새로 연다고 온나라 곳곳에서 수십 수백 억 원을 들여서 새 건물을 짓기도 하는데, 어린이는 곧 자라서 청소년이 되는데, 청소년책도서관이 없는 이 나라를 어찌합니까. 청소년에서 또다시 자라서 어른이 된 뒤, 마땅한 어른책도서관이 없는 이 삶터를 어찌합니까. 시설도 시설일 테지만, 시설보다 훨씬 먼저 눈길을 두고 더욱 크게 마음을 쏟을 대목은 ‘책을 갖추는 일’입니다. 책을 갖추되 ‘책다운 책을 알차게 갖추는 일’입니다.

 

 우리 어른들은 돈 한 푼을 쓰더라도 책 갖추는 일에 온힘을 쏟아야 하며, 어떤 책을 갖추려고 하는지를 더욱 꼼꼼히 살피면서 힘을 들여야 합니다. 이러지 않고서야 우리 나라에서 아름답고 슬기로운 책 문화 뿌리내리는 일이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청소년들이 책을 못 읽고 입시교육에만 빠지도록 내몰고 있는 삶을 통째로 갈아엎으려는 마음이 아니고서는, 우리한테 사랑스러운 책 문화가 뿌리내릴 수 없습니다.

 

 

 (2) 예전 책을 더듬으면서

 

 옆지기와 아기와 일산 나들이를 합니다. 옆지기가 자기 어머니를 보고 싶다고 하여 여러 날 머뭅니다. 함께 일산에 머물면서 옆지기 식구들하고 어울리다가, 저는 서울에 볼일이 생겨서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서울로 나옵니다. 여러 시간에 걸쳐 볼일을 마치고, 이제 일산으로 갈까 아니면 인천으로 가서 집치우기를 좀 할까 생각하면서 숙대입구역 앞에 자리한 헌책방 〈우리서점〉으로 갑니다. 두 주 만인가 헌책방 나들이를 해 보게 되어서인지, 들여다보는 책마다 장만해서 찬찬히 읽고픈 마음이 몽실몽실 듭니다. 이렇게 반가운 책하고 담을 쌓듯 지낼 수밖에 없다니 쓸쓸하구나 싶으면서, 어쩌면 앞으로도 이처럼 담을 쌓을밖에 없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해 봅니다. 그러나 아이가 한 살 두 살 자라고 세 살 네 살 먹어 가는 동안, 옆지기와 아이 손을 잡고 함께 나들이를 다닐 날을 맞이할 테지, 하고 다시 생각하면서 마음을 달랩니다. 그날을 맞이할 때까지는 갖은 집안일을 도맡으면서 참고 견디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없는 틈을 더 쪼개고, 모자란 겨를 더 나누면서, 반갑게 맞아들이는 책을 좀더 속깊이 헤아리면서 기다려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이광규-레비스트로스》(대한기독교서회,1973)를 봅니다. 요즈음은 예전 같지 못하지만, 대한기독교서회나 성바오로출판사 같은 곳에서는 ‘종교는 종교대로 속깊이 다루면서 종교 아닌 테두리까지 너르게 다루던’ 손바닥책을 부지런히 내놓았습니다. 돌이켜보면, 1960∼70년대에는 종교 출판사뿐 아니라 종교 아닌 출판사에서도 손바닥책을 힘껏 펴내었습니다. 우리들도 이와 같은 작고 값싼 책을 기꺼이 사 읽었습니다.

 

 요사이도 손바닥책이 안 나오지는 않습니다. 제법 나옵니다. 다만, 요사이 손바닥책은 예전 손바닥책과 견주어 값이 비싸고 엮음새가 성기어, 그야말로 한줌밖에 안 되는 줄거리를 부피를 키워서 억지로 손바닥책 하나로 짜 놓았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습니다. 여느 신국판 책 하나를 자그맣게 엮어서 널리 사 읽도록 하던 지난날 손바닥책에서 배우지 못하고, 처음부터 조그마한 이야기를 어떤 틀에 짜넣고 마는 오늘날 손바닥책이라고 할까요. 지난날 우리들 살가운 넋을 오늘날 우리들이 제대로 받아먹거나 물려받거나 이어가지 못합니다.

 

 《미셸 카루우쥬/박갑성 옮김-샤를르 드 후꼬오전(사하라의 성자)》(성바오로출판사,1966)이라는 낡은 책이 눈에 들어옵니다. 샤를르 드 푸코라는 분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을 얼마 앞서 보았기에, 이분 삶을 다룬 제법 긴 평전도 들춰보고픈 생각이 듭니다.

 

.. 샤를르 드 후꼬오의 유년시대에는 미리부터 한 사람의 작은 성인을 만들어 낼 만한 경건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다만 그의 모친이 대단히 신앙심이 깊고 생후 2일 만에 샤를르에게 세례를 받도록 하였으며, 그의 마음속에서 종교심이 발전하도록 전심전력을 기울였다는 것뿐이다 ..  (13쪽)

 

 거룩한 어른이라고 여겨지는 샤를르 드 푸코며, 아씨시 프란치스코인데, 이분들 삶을 보면, 태어나기는 돈 많고 잘 사는 집에서 태어나서 그지없이 돈놀이와 술잔치와 여자놀음에 빠져 있었습니다. 헤프게 놀고 나대던 어느 날 비로소 자기가 걸어온 길이 참으로 부질없고 못났음을 깨닫습니다. 그러고는 식구며 돈이며 이름이며 집이며 모두 내놓고 홀몸으로 ‘가난뱅이’가 되어 낮은자리 이웃과 마지막날까지 함께합니다.

 

 왜 저렇게 ‘무엇이든 다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참삶을 깨닫지 못하고 헤프고 얼빠지게 살고 마는지 안타까운데, 재미있는 대목은 뒤늦게 깨달은 다음에는 모두들 자기 이름으로 된 물질은 남김없이 내어놓습니다. 물질을 신나게 누리고 나서야 덧없음을 느끼기도 했을 텐데, 덧없음을 넘어서 물질로 아름다움을 나누기란 어려우며 물질로 이웃과 나누는 삶보다 물질 아닌 마음으로 이웃과 나누는 삶이 참된 아름다움이라고 느끼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고 곱씹어 봅니다. 문득문득, 예나 이제나 물질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치고 툭 터놓고 나누는 사람은 드물고, 지나치게 많이 껴안고 있는 물질 때문에 탈이 나는 사람이 많음을 새삼스레 느낍니다. 적게 가지거나 아예 없는 사람이라고 탈이 안 나는 사람이 없지는 않은데, 있을 때는 있어서 탈이고 없을 때는 없어서 탈입니다. 어쩌면, 물질이 있고 없음을 넘어서,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을 느끼거나 배우거나 얻지 못해서 그러하지 않느냐 싶기도 합니다.

 

 

 《노래하는 코끼리(동화와 우화)》(분도출판사,1982)라는 작은 책을 봅니다. 어린이들한테 읽히려고 엮은 책입니다. 엮은이는 머리말에서 ‘아이들한테 이와 같은 이야기책을 읽혀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를 오래도록 헤아렸다면서 몇 마디 적습니다.

 

.. 여기서 그러나 곧잘 문제가 제기된다. 도대체 이것이 가능한가? 그저 우리 자신의 경험을 전달해 주는 것만으로 우리 자녀들의 삶을 잘 준비시켜 주는 것이 되는가? 사실인즉 흔히는 몇 가지 싹싹한 예모의 법식이나 몇 마디 편리한 적응의 격언을 전달해 주는 것이 고작이 아닌가? 이만큼으로 넉넉한가? 옛 어른들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고. 그것만으로는 모자란다고. 그래서 동화들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그저 어린이만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이 이야기들에서 갖가지 역경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이 나옴을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동화는 인간 내면의 운명을 말해 준다. 내면적 성장의 어려운 길을 걸으며 역경에 빠질 때 해결책들을 가리켜 준다. 어째서 그런가? ..  (5쪽 / 임인덕)

 

 곰곰이 생각하면, 아이들한테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들은 아이들이 받아먹을 이야기밥을 베푸는 한편, 어른 스스로도 ‘아이한테 들려주는 이야기가 어른인 자기한테도 이야기밥으로 돌아갔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아이들한테 불러 주는 노래는 어른인 자기한테도 불러 주게 되는 노래이고, 아이들한테 보여주는 그림 한 장은 어른인 자기한테도 보여주면서 가슴을 북돋우거나 가꾸어 주지 않느냐 싶어요.

 

 다섯 권으로 이루어진 《이무영대표작전집》(신구문화사,1974) 가운데 1권과 2권을 봅니다. ‘성심수도원도서실’에 있던 책이로군요. 아쉽게 3권부터 5권까지는 없습니다. 도서실에 있을 때에도 뒤엣책은 없었을까요. 그래도 1권과 2권 두 권이라도 만나니 고맙습니다.

 

 《에밀 졸라/최봉렬 옮김-제르미날》(친구,1989) 1권과 2권을 만납니다. 예전에 짝 잃은 1권 하나만 ‘이론과실천’ 판으로 사 놓은 적이 있는데, 비로소 1권과 2권으로 짝을 모두 맞춥니다.

 

 

 (3) 책에 담기는 발자취를

 

 글로 엮인 이야기인 책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그림으로도 엮고 사진으로도 엮습니다. 지난날에는 글로만 책을 엮었고, 차츰 그림으로도 책을 엮었으며, 이제는 사진으로도 책을 엮습니다. 글책은 글책대로 남다른 이야기를 베풀고, 그림책은 그림책대로 또다른 이야기를 건네며, 사진책은 사진책대로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사진책을 사진책 그대로 받아들이는 분은 아직까지 이 나라에 얼마 되지 않지만(제가 ‘사진책’이라고 말하면, 뭘 하는 책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분이 꽤 많습니다. 시를 엮어 시집(시책)이고, 소설을 엮어 소설책이듯, 사진을 엮으니 사진책인데, 사진을 문화나 예술이나 삶이라고 여기지 못한 탓이라고 느낍니다), 사진책 하나는 우리 눈길과 마음길을 넓히는 또다른 선물이곤 합니다. 글책은 우리 스스로 어떤 모습을 떠올려 내도록 하면서 이야기를 돌아보도록 하고, 사진책은 어느 한 가지로 찍혀진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 모습 앞뒤로 얽힌 이야기를 우리 스스로 곱씹게 합니다. 세상과 흐름을 적바림하는 연모인 사진이면서, 세상과 흐름에 어떤 이야기가 스며 있는가를 오래도록 되씹게 하는 디딤돌인 사진입니다.

 

 1800년대 끝무렵과 1900년대 첫무렵 이탈리아 밀라노 모습을 담은 사진책 《Milano》(Alinari,1993)를 넘기면서, 사진책에 담긴 힘을 우리들이 좀더 또렷하게 느끼거나 받아들일 수 있다면, 지금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사진기를 갖고 있고 또 사진을 즐기고 있는 삶을 한껏 북돋울 수 있지 않느냐 하고 생각합니다. 말이 없어도 가슴으로 헤아리는 그림과 마찬가지로, 붙임말이 없어도 마음으로 헤아리는 사진입니다. 낱말 하나하나 엮어 글월 하나하나 잇는 가운데 이야기를 모두어 내는 글책이 나오기까지도 그지없이 땀을 흘려야 하는데, 사진 하나하나 엮어 오래도록 숱한 모습을 잇는 가운데 이야기를 모두는 사진책이 나오기까지도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려야 하는가 거듭 느낍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에 걸쳐서 흘린 땀이 모이는 이런 사진책 하나는 ‘도시 한 곳 역사’를 보여주는 일을 넘어서, 우리들 삶이란 무엇이고 우리들 이웃이란 누구이며 우리들 문화나 문명이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돌아보도록 이끕니다.

 

 어느 한 식구 모습을 사진이야기로 엮은 《Sally Mann-Immediate family》(Aperture,1992)를 집어들고, ‘철도사진집’ 《김종학-기차가 달리는 풍경》(명진기획,2001)을 집어듭니다. 《Immediate family》를 찬찬히 넘기면서, 제가 담아내고 있는 우리 세 식구 삶이, 뒷날 새 아이가 또 태어나게 되면 그때부터 또다른 모습으로 담아내게 될 우리 식구들 삶이 사진으로 어떻게 보여질 수 있고 남겨질 수 있으며 이어질 수 있는가 생각해 봅니다. 어떤 모습이 스스럼없이 보여주는 삶인지, 뒷날 우리 아이한테는 어떤 모습이 지난날 자기 자취를 되새기는 모습이 될는지, 사진으로 제 식구들 삶을 보여준다고 할 때에는 구경꾼이 될 사람들은 이 사진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게 될는지 궁금합니다.

 

 《기차가 달리는 풍경》에 담긴 숱한 ‘기차’와 ‘전철’은 이 사진책에만 남아 있습니다. 이 사진책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둘기호도 사라지고 수인선도 사라지며 또다른 기차와 기차길까지도 사라졌는데, 기차를 꾸밈없는 바라보는 눈길과 있는 그대로 느긋하게 살펴보는 마음결마저 이 땅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작은 모습을 즐기고, 도드라지지 않는 모습이라도 반기며, 말없이 뒤에서 애쓰는 모습 하나 꼼꼼히 챙기던 매무새는 차츰 흐려지지 않느냐 싶습니다.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전철길은 이 사진책에서만큼은 꽃이 흐드러지며 바람에 날리는 철길이었으나, 이제는 온통 아파트와 상가로 바뀐 메마른 철길이 되었습니다. 오로지 빠르게만 달려야 하는 길로 바뀌어요. 철길을 달리는 사람도, 철길이 놓여서 마을이 두 동강이 나고 만 데에 사는 사람도, 철길까지도 그예 따돌려집니다.

 

 

 《Stephen Dalton-Borne on the wind》(Reader's digest press,1975)를 봅니다. 요즈음에도 이만한 사진책을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로지 필름으로만 사진을 찍던 지난날, 조그마한 목숨붙이들 날개짓과 움직임을 사진으로 착착착 잡아내려면, 얼마나 많은 돈과 품과 시간이 들었을까요. 피눈물이 배이면서 아름다움으로 새로워지는 사진책이라고 또 한 번 느낍니다.

 

 《Robert Caputo-National Geographic プロの撮り方 人物寫眞》(日經ナショナルジオグラフィック社,2005)은 사람사진 찍는 데에 길잡이 노릇을 해 주는 책입니다. 여기까지 구경한 다음 책값을 셈합니다. 꽤 많은 돈이 나가게 됩니다. 책방 사진 몇 장 더 찍으면서 길을 나서려고 하는데, 잡지 《기획회의》(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32호(2008.9.20.)가 보여서 한 권 더 얹습니다. 책값 치른 책을 가방에 넣는 동안, 헌책방 〈우리서점〉 아저씨가 넌지시 묻습니다.

 

 “다른 헌책방에서는 뭐라고 해요? 다들 어렵다고만 하지. 잘된다고 하는 데는 없지요? 안 봐도 알아요. 갈수록 (책을) 다양하게 보는 사람이 줄고 있어요.”

 

 옛날에는 책 만드는 일을 하시다가, 이제는 헌책방 일을 하는 〈우리서점〉 남 사장님입니다. 아직도 출판사 등록은 그대로 있고, 책 하나 흐뭇하게 엮어내는 꿈을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책을 얼마나 멀리하고 있는지 뼛속 깊이 느끼고 있음에도, 앞으로는 조금씩 달라지리라 믿으면서 책을 손에서 떼지 않습니다.

 

 갈수록 늘어나는(책손이 줄고 책 사는 손길이 함께 줄어드는 탓에) 책들 때문에 사무실로 쓰던 자리까지 책꽂이를 들여서, ‘책 만드는 일을 하는 책상’은 한쪽 구석에 조그맣게 옮겨 놓고 있습니다. 그 작은 자리에서 교정도 보고 커피도 끓이고 라면도 끓이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십니다. 추워지는 날씨에도 작은 전기난로 하나를 놓고 두꺼운 잠바 껴입으면서 일합니다. 커피 한 잔 얻어마시고 나서, “오늘도 좋은 책 구경 즐겁게 하고 갑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하는 인사말을 남기고 돌아섭니다.

 

 

 전철을 타고 일산으로 갑니다. 오늘 고른 책을 전철길에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책마을도, 나라살림도, 언제나 ‘단군 이래 최대 위기’라는 말을 예나 이제나 안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요즈음뿐 아니라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텐데, 이렇게 ‘먹고살기 어렵다’고 하는 때에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는지 궁금합니다. 먹고살겠다면서 돈버는 일에만 마음을 기울이는 우리들이건만, 그토록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이 돈버는 일에 몸과 마음과 품과 돈까지 바쳐도 돈벌이가 제대로 되는 일은 얼마 없다고 느껴집니다. 참말 우리가 할 일이란 돈버는 일 한 가지뿐일지, 그리고 돈은 얼마나 많이 벌어야 할는지, 돈버는 일 말고는 우리가 몸과 마음 흐뭇하게 여기게 될 일이란 없는지 궁금합니다. 틀림없이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먹고살게 된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먹고살 만한 높낮이가 어느 만큼인지, 먹고사는 일은 누구와 어떻게 해야 할지는, 찬찬히 돌아보는 일이 없고 곰곰이 헤아리도록 배우거나 부대끼거나 이야기 나누어 본 적이 없지 않은가 궁금합니다. 그저 돈만 보고 달리는 우리들이 아니랴 싶습니다. 우리 곁에 사람을 두지 않고, 자연을 두지 않으면서, 여기에다가 책조차 두지 않는 가운데 두 눈이 멀고 머리와 가슴 모두 어리석어지고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 서울 숙대입구역 앞 〈우리서점〉 / 02) 798-5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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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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