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기온이 겨울을 실감나게 하는 날입니다. 아침마다 내려간 기온 때문에 어떤 옷을 입고 출근과 등교를 해야 할지 아침마다 딸아이와 고민에 빠집니다. 그렇다고 입을 옷들이 넉넉해서 골라 입어야 할 정도의 여벌이 준비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지고 있는 옷들 중에 그나마 이 추위를 따뜻하게 해 줄 수 있는 옷을 선택해서 입기란 아침마다 겪는 걱정거리가 돼 버렸습니다.
옷뿐만이 아니라 요즘 딸아이는 신발을 구겨 신고 다니는 습관이 생긴 것 같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을 하면서 지적을 하곤 하지만 제대로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신는 부츠를 사 달라고도 하고 교실에서 신는 실내화도 사야 한다고 부쩍 말 하는 횟수가 늘었지만 신고 있는 운동화도 아직 멀쩡하고 실내화도 사 준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아 딸아이의 말을 그냥 외면하고 지냈습니다.
요즘 같아선 정말 먹는 것까지 줄여야 하나 아니면 뭘 생활에서 줄이며 살아야 하나 걱정이 많이 됩니다. 부쩍 몇 달 사이 물가가 많이 올랐습니다. 그렇다고 하루 세 끼의 밥을 줄일 수는 없고, 당장 급한 것이 아닌 것,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한두 번 더 생각을 한 후 결정을 해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주위의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로 적은 생활비를 아껴 쓰며, 씀씀이를 줄이고, 나름 어려운 경제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차가운 체감 온도에 맞설 수 있는 따뜻한 겨울옷 하나 사 주지 못하고, 부츠 하나 사 주지 못해 늘 마음에 걸렸지만 조금씩 커가는 딸아이가 이제는 저의 이런 마음을 이해해 주리라 여기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좀 여유가 되면 하나씩 사 주겠노라 약속하며 말입니다. 또 딸아이는 뉴스나 학교 선생님을 통해 요즘 경제가 어렵다는 말을 듣는다고 제가 하는 말에 공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며칠이 더 지났습니다. 딸아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실내화 한 켤레를 현관에다 내려놓았습니다. 옆이 터지고 갈라져 구멍이 난 실내화를 쳐다보면서 차마 말을 못하고 뭐냐고 묻는 제게 딸아이는 신발이 터져서 더 이상 못 신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태껏 버티고 지내오긴 했지만 친구들의 놀림과 창피함에 못 신겠다며 울먹이는 모습에 할 말을 잊고 있었습니다. 처음 실내화를 사 달라고 했을 때, 터져서 못 신는다는 말만 했어도 상황은 괜찮았을 텐데 그동안 말 못한 속사정이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제가 사 준 기억이 오래지 않아 아직은 괜찮을 거라 여겼지만 그것이 그렇게 무참히 찢겨지고 갈라질 줄은 몰랐습니다. 삼천 원짜리 실내화, 싸다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요즘 나오는 실내화 치곤 좀 싸게 준 것이 화근이었나 봅니다. 하루 종일 교실에서 복도에서 거의 신고 다니는데 얼마나 오래갈까를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은 저의 불찰과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해도 참고 견뎌야 했던 딸아이의 마음이 읽어져 제 마음은 더 아팠습니다.
아직도 저의 집 현관문 앞엔 딸아이의 낡은 실내화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버리지 않고 모시듯 하는 저의 태도에 가족들은 의아해 하고 있지만 버릴 수가 없습니다. 새로운 메이커의 새 제품이 나올 때마다 멀쩡한 것을 버리고 새 것으로 구입하는 요즘 아이들 생각, 낡은 신발을 신고도 형편이 어렵다는 엄마의 말 한마디에 몇 달을 그렇게 신고 있었을 딸아이의 마음이, 생활이 어려워지더라도 딸아이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저 스스로의 다짐, 뭐 그런 이유들로 인해 버리지 못하고 있는 낡은 실내화 한 켤레가 오늘도 저의 현관문을 지키며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올 겨울이 다 가지 전에, 털이 달린 실내화를 하나 사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이왕이면 울 부츠도 사 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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