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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금은 다문화 시대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가 국민 전체 인구의 2%인 110만 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마찰과 함께 부적응 사례도 점점 늘어가고 있다. 남편의 폭행으로 숨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도 최근 1년 사이 3명에 이르는 등 비정상적인 결혼이민자들의 문제는 사회문제로 대두되어 국가간의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될 정도로 사태가 심각해졌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우리 국민이 이제 좀 살 만해졌다고 이렇게까지 만행을 저지르는가 싶어 부끄럽고 속상하고 안타까움이 많았다.

 

이제 우리는 그들을 안아야 한다. 사회가, 국가가 함께 안고 가면서 해결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여러가지 문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것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심각한 분열과 갈등에 휩싸일 우려가 크다. 그런데도 다문화 사회’ 정착을 위해 정부가 추진해 온 각종 이주민 지원 사업이 잇따라 폐지·축소되고 있다고 한다. 결혼이민자센터를 통해 만난 그들의 일상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우리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을 더이상 방치하거나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난 결혼 이민자는 베트남에서 시집온 지 1년 반 된 스물 두 살의 NT, 캄보디아에서 시집온 지 겨우 두 달 된 열아홉 살의 TR, 키르키르스탄에서 와서 1년 반 된 26살의 N(그녀는 임신 중으로 만삭이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온 지 12년 된 YT 등 4명이었다. 그녀들과의 첫 만남은 설레고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한 번 만나고 나니 행복해졌다. 어렵게 시간표를 짜고 면담을 하고 공부를 시작하면서 많은 생각들이 오고갔다.

 

공통어가 없는 나라는 말이 통하지 않아 애를 많이 먹었다. 그러나 그것도 시간이 갈수록 귀가 트이자 가르치는 재미가 쏠쏠했다. 나와 익숙하지 않은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나를, 아니 내 일상까지 새롭게 해주었다. 일상에서 익숙함과의 결별이 이루어지는 멋진 시간이었다. 그건 축복이었다. 이렇게 멋진 일이 있다니 세상은 얼마나 살맛나는가.

 

1.NT-사랑 있고 행복 있고

 

그녀는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왔다. 한글을 잘 쓰고 읽고 말할 줄 알았다. 그런 그녀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어서 오늘은 편지쓰기를 했다. 학교에서 날마다 일기쓰기를 해서 일기는 잘 쓰나 편지는 한 번도 써보지 않았다고 어려워하며 안 쓰려고 했다. 말로 하는 것을 글로 쓰면 편지가 된다고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나도 아이가 있는데 아이들이 써준 편지가 가장 행복한 선물이라고 하면서 써보라고 했다.

 

베트남에 있는 엄마에게 편지를 써보라고 했다. 몇 줄 썼는데 참 잘 써서 별을 다섯 개 그려주고 100점을 주었다. 그녀의 편지를 읽다가 나는 그만 울고 말았다. 건강 있고 행복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조금만 기다리면 만날 수 있다는 마음을 그녀는 편지에 담았다. 내가 눈물을 흘리니 "죄송해요" 했다.

 

그래서 그건 행복해하는 모습에 기뻐서 흘린 눈물이니 좋은 눈물이라고 해주었다. 그랬더니 그녀도 눈물을 닦았다. 담엔 시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라고 했다. 이번엔 좀 더 길게 썼다. 남편에게도 쓰라고 했더니 쑥스러워 안 쓰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 쓴 편지를 남편에게 보여주겠다고 했다. 

 

시부모님, 시동생과 함께 사는 그녀의 목소리와 얼굴에서는  행복이 묻어났다. 감사했다. 이국땅, 모두가 낯선 속에서 그녀는 한 송이 꽃처럼 곱게 피어나고 있었다. 오늘은 그녀를 처음 만난 날, 그녀에게 꽃처럼 예쁘게 살라고 꽃분을 사들고 갔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공부하는 책상에 꽃분을 놓아주었다. 공부를 끝내고 나오면서 꽃처럼 예쁘게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소망으로 두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꼬옥 안아주었다.

 

2.TR - 괜찮아요

 

그녀는 캄보디아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왔다. 결혼 이민자 센터에 다니면서 한글공부를 하고 있어 글씨는 잘 쓰지만 그 글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의사전달이 무척 어렵지만 못 알아들을 땐 늘 미소로 답한다. 천진하게 웃는 모습이 무척 사랑스럽다. 그녀가 가장 잘 쓰는 말은 "알아요"와 "몰라요"이다.그런 그녀에게 오늘은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사랑합니다. 사랑해요. 수고하셨어요. 수고했어요. 잘 했어요. 진지 드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등을 가르쳐주었다. 가장 기본적인, 그러나 사랑의 마음이 담긴 언어 표현으로 가족들과 하나 되기를 소망해서다.

 

그녀는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자태가 고운 시어머니는 그녀를 복덩이라 부른다. 언젠가 어두운 방에서 불도 켜지 않고 공부하고 있는 며느리에게 시아버지가 불을 켜주었더니 "괜찮아요" 했던 모양이다. 그러자 "우리 TR가 괜찮아요"를 할 줄 안다면서 집에 온 사람마다 붙잡고 시아버지의 며느리 자랑이 터졌다 한다.시부모님과 남편의 사랑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열아홉 살의 꽃봉오리 같은 그녀는 우리말과 글을 걸음마하는 어린아이처럼 배우고 있다. 내성적인 그녀도 한국말을 자유롭게 쓰게 되면 말수가 많아지리라.

 

3.N - 엄마가 되어요

 

그녀는 친구의 소개로 키르키르스탄에서 머나먼 한국으로 시집을 왔다. 만삭이라 일 주일 후면 출산을 하게 된다. 아들이라고 했다. 본인은 아들 딸 중 어느 쪽을 원하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상관없는데 시어머니와 남편은 아들을 원한다고 했다. 남편이 장남이라 아들을 선호하는 것도 이해했다.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그녀의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이 배어있었다.

 

춥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곳 날씨는 한국과 비슷하다고 했다. 그녀는 한글을 읽고 쓰고 말하는데 큰 지장은 없었다. 그래서 고국에 있는 엄마에게 편지를 써보라고 했다. 한 번도 써보지 않았다고 했으나 길게 자기의 마음을 담아 잘 썼다. 맞춤법은 엉망이었으나 자기의 마음을  한국어로 잘 표현했다. 그 편지를 가지고 이런저런 사례를 설명해주었다.

 

한국말은 존댓말이 있어 많이 힘들다고 했다. 몇 개의 관용어를 존댓말과 보통 쓸 수 있는 말 두 가지로 가르쳐주었다. 또 ㄱ과 ㅋ, ㄷ과 ㅌ, ㅂ과 ㅍ,  ㅈ과 ㅊ의 발음이 구별하기 어렵다고 했다. 발음연습을 함께 하니까 구분이 된다며 사람들은 모르는데 시어머니와 남편은 자기 말을 알아듣는다고 했다.

 

그래도 그녀는 자기의 의사표시를 잘 하는 편이었다. 가족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 일상적인 언어들을 이야기하며 들려주었다. 수고하셨어요., 힘드셨지요. 등 서로의 사랑과 관심을 표현할 수 있는 말들을 가족에게 자주 사용할 수 있도록 반복해주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모두에게 해주어 좋은 말, 특히 사랑하는 가족에게 그런 말들은 얼마나 힘이 되는 말인지 새삼 확인했다. 오늘도 가르치면서 배운다.

 

4.YT-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한국에 온지 12년째로 두 딸을 둔 일본인인 그녀는 항상 차분하고 예의 바르다.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아이 발음이 좋지 않아 언어치료를 받고 있는데 마음고생이 많아 보인다. 자유롭게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그녀와는 사이사이에 많은 대화를 나눈다.

 

오늘은 수업을 마치고 나자 지난주에 친정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했다. 바로 가고 싶었는데 비행기가 없어 가지 못한 채 이미 화장해버렸고 절에서 하는 장례식이 남아있다고 한다. 아이들 데리고 장례식이라도 참석하려고 다음 주쯤 친정 다녀오려고 한다고 했다.

 

남편이랑 같이 가고 싶은데 이장 때문에 함께 갈 수가 없다며 서운해 했다. 형님도 두 분이나 계시고 장남도 아닌데 장인의 장례식이 우선 아닌가 물었다. 이런 경우 다른 남편들은 어떻게 할까? 어렵게 잡은 이장 날짜, 옮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집안에 다른 가족들도 있고, 형님들도 계시니 남편이 아버지 장례식에 함께 가주었으면 싶은 마음이 못내 섭섭하게 하는 모양이다.

 

안타까웠다. 날짜가 이렇게 겹치지 않았으면 아마 함께 가주었을 거라고 한다. 그러니 이해는 하면서도 섭섭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고 한다. 이장도 중요한 일이라고 설명은 해주었다. 그러나 내 마음 한켠도 서운했다. 멀리 시집와서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아버지를 보내는 마지막 자리에 남편과 함께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설득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니.

 

그녀의 마음이 아프지 않기를 소망하며 안타까워 하니까 선생님이 자기 이야기 들어주는 것으로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그녀도 한국여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국땅에서 깊은 외로움을 맛보고 있는 그녀가 안쓰러웠다. 한국남편처럼 여인들의 마음을 몰라주는 남자들이 또 있을까. 이번 일이 그녀에게 상처로 남지 않기를 소망하며 잘 다녀오라고 하고 일어섰다.


#결혼이민자#다문화#미래사회#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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