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ㄱ. 그분들의 변함없는 사랑

 

.. 그분들의 변함없는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  《김현수-똥교회 목사의 들꽃피는마을 이야기》(청어람미디어,2004) 13쪽

 

 ‘변(變)함없는’는 ‘늘 같은’이나 ‘한결같은’으로 다듬어 줍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 사랑”으로 고쳐씁니다.

 

 ┌ 그분들의 변함없는 사랑

 │

 │→ 그분들이 베푼 아낌없는 사랑

 │→ 그분들이 보여준 가없는 사랑

 │→ 그분들이 나눠 준 한결같은 사랑

 └ …

 

 처음과 끝이 같도록, 이제와 그제가 같도록, 이때나 저때나 마찬가지이도록 할 수 있는 사랑이라면, 우리가 나누거나 펼치는 사랑 가운데 가장 크다고 할 만한 사랑이지 싶습니다. 더없이 넉넉하면서 가없이 따뜻하면서 그지없이 너르다고 할 사랑이지 싶습니다. 사랑뿐 아니라 믿음도, 믿음뿐 아니라 나눔도, 늘 고르게 이어나가도록 붙잡을 수 있을 때가 참으로 반갑다고 느낍니다.

 

 ┌ 너른 사랑

 ├ 따뜻한 사랑

 ├ 넉넉한 사랑

 ├ 크고 깊은 사랑

 └ …

 

 한결같이 보여줄 수 있으니 따뜻하거나 따사롭습니다. 꾸준히 베풀어 주고 있으니 언제나 넉넉하거나 너르다고 느낍니다. 가없거나 그지없이 펼쳐 주고 있으니 크거나 깊다고 느낍니다.

 

 우리들 하는 어떤 일이든 한결같음과 꾸준함과 가없음을 실어낼 수 있다면, 담아낼 수 있다면, 우리 세상에서 다툼이나 미움은 시나브로 사라지지 않으랴 싶습니다. 치우침이나 비뚤어짐도 조용히 자취를 감추지 않으랴 싶습니다. 모든 얄궂고 아쉬운 모습을 털어내게 되지 않으랴 싶습니다.

 

 

ㄴ. 5월 하순의 어느 날

 

.. 5월 하순의 어느 날 아침이었다 ..  《야마오 산세이/이반 옮김-여기에 사는 즐거움》(도솔,2002) 30쪽

 

 ‘하순(下旬)’은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으나, ‘끝무렵’으로 다듬어 주면 한결 낫습니다.

 

 ┌ 5월 하순의 어느 날 아침이었다

 │

 │→ 5월 하순 어느 날 아침이었다

 │→ 5월 끝무렵 어느 날 아침이었다

 │→ 5월도 끝무렵, 어느 날 아침이었다

 │→ 5월도 다 지난, 어느 날 아침이었다

 └ …

 

 일본사람이 일본말을 할 때 쓰는 ‘の’가 우리 말에 엉뚱하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일본사람은 수도 없이 ‘の’를 넣어서 자기네 말 문화를 만들어요. 그렇지만 한국사람은 ‘-의’를 안 쓰면서 우리다운 말 문화를 이룹니다. 일본사람이 일본말로 글을 썼다면 “5월의 하순의 어느 날의 아침이었다”처럼 됩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사람은 “5월 하순 어느 날 아침이었다”처럼 씁니다.

 

 글을 시처럼 쓰는 분이라면 “5월도 끝무렵”이나 “5월도 다 지난”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저도 이렇게 쓰는 말을 좋아합니다. 이 대목은 글을 여는 대목, 첫머리이기에 토씨를 남달리 붙여 보고픈 마음이 든다면, “5월이 저물어 가는 어느 날”처럼 적거나 “5월이 거의 떠나가던 어느 날”처럼 적어 볼 수 있습니다.

 

 

ㄷ. 여성의 출입을 통제

 

.. 세계 곳곳의 많은 사원들이 여전히 월경 중인 여성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고, 우리 나라에서도 ‘혐오감을 준다’는 이유로 방송에서 생리대 광고가 금지됐다가 1995년에야 부활했다 ..  《꿈꾸는 지렁이들》(환경과생명,2003) 35쪽

 

 “월경 중(中)인”은 “월경하고 있는”이나 “달거리하는”으로 풀어 줍니다. ‘혐오(嫌惡)’란 “미워하고 싫어한다”는 말이니 “혐오감을 준다는 이유(理由)로”는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까닭으로”나 “사람들이 안 좋아한다고”쯤으로 풀어냅니다. ‘금지(禁止)됐다가’는 ‘못하게 했다가’로 다듬습니다.

 

 ┌ 여성의 출입을 통제했다

 │

 │→ 여성이 못 들어오게 막았다

 │→ 여성은 드나들지 못하게 했다

 │→ 여성은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 …

 

 토씨 ‘-의’를 넣어서 한자말로 탁탁 잇는 보기입니다. 이런 말투는 일본 말투입니다. 일본사람들이 아주 즐겨쓰는 말투예요.

 

 이 자리에서는, 먼저 ‘출입(出入)’을 ‘드나들다’나 ‘들어오다’ 같은 우리 말로 풀어 봅니다. 일본말은 ‘出入口’이고, 우리 말은 ‘나들문’입니다. “나가고 들어오는 문”이라고 하여 ‘나들문’입니다. ‘통제(統制)’는 ‘막다’로 풀어 봅니다. 그러면 토씨 ‘-의’는 슬그머니 사라집니다. 어디에도 끼어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풀어내면서도 “여성의 드나듦을 막았다”처럼 쓰는 분을 더러 봅니다. 다른 낱말은 애써 잘 풀어내면서도 토씨 ‘-의’는 내버려 둔다고 할까요. 다른 대목은 찬찬히 돌아볼 줄 알면서도 토씨 ‘-의’를 얄궂게 붙인 대목은 못 느낀다고 할까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토씨 ‘-의’#-의#우리말#우리 말#국어순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