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저주받은 학번'

1990년대 초반 학번을 두고 하는 말이다. 군대에 다녀온 뒤 졸업하고 막 사회에 나서는 그들 앞에 'IMF 외환위기'라는 폭탄이 터지면서 취업시장이 초토화됐다. 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이들도 환율이 폭등하면서 학업을 중단하고 조기 귀국해야 했다. 이들은 외환위기 파동이 수습되기 시작한 2000년경에야 비로소 사회에 첫발을 디딜 수 있었다.

11년 전 IMF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취업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와 불황, 경기 침체가 심화되면서 대학 졸업예정자 등 구직자들에게는 혹독한 취업대란이 예고되고 있다. 이른바 '2008 금융위기 학번', 대학을 졸업했거나 졸업을 앞둔 2000년대 초반 학번이 여기에 해당된다.

'저주받은 학번'들은 현재 혹독한 취업난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금융위기 학번' 후배들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을까?

 IMF 이후 인원 구조조정 등으로 노동자들의 노동강도가 강화됐다.
IMF 이후 인원 구조조정 등으로 노동자들의 노동강도가 강화됐다. ⓒ 이국언

"스펙보다는 무슨 일 하고 싶은지 결정하고 준비해야"

현대건설의 한 하청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민영승(37)씨는 요즘 인천 서구 매립지 안에 위치한 굴포천 경인운하 공사현장 관리 업무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김씨는 미국발 금융위기를 비롯한 불황과 경기침체를 별로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회사에서 월급이 제때 나오고, 맞벌이를 하는 아내가 학원강사여서 자녀 교육비도 크게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변 동료들이 반쪽 난 펀드를 들고 울상이 됐을 때도, 그에게는 그저 남의 일이었다. "일에 집중할 수 없다"는 이유로 펀드나 주식 등엔 일체 눈길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이처럼 안정적인 직장과 가정을 이루게 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1996년에 대학을 졸업한 그에게 '월급쟁이'는 큰 매력이 없었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취업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통닭집을 차렸다. 그러나 곧 외환위기가 터졌고, 식용유나 닭 등 재료값이 폭등하면서 결국 6개월 만에 장사를 접어야 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취업 전선에 나섰지만, 이미 외환위기가 휩쓸고 간 취업시장은 꽁꽁 얼어있었다.

간신히 음악교육신문사에 들어가 초봉 70만원을 받으며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월급쟁이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옷을 팔았다. 그러나 경험이 없던 그는 다시 손해를 보고 장사를 접었다. 다시 구직에 나선 그는 몇 차례 이직을 거듭하다가 현 직장에 자리를 잡았다.

"먼 미래를 생각하기보다는 당장 내일 먹고사는 게 문제였다. '나한테 맞는 게 뭐지?'라고 반문하면서 작은 회사 몇 곳에 이력서를 넣었는데, 전부 일주일 안에 취업이 되더라. 아무데나 취직할 수밖에 없는 절박함도 있었지만, 지금 현재 있는 회사에서 내 장래를 계획할 수 있기 때문에 만족한다."

민씨는 새벽 5시에 일어나 현장으로 나가고, 밤 10시경에 퇴근한다. 건설 현장을 관리해야 하니, 주말에도 쉬는 경우가 거의 없다.

"건설업계에 20대가 없다. 우리는 관리자 역할을 하는데, 이마저도 배우려고 왔던 20대가 3개월을 못 버티더라. 더 편하고 큰 회사로만 가려고 하면 당연히 취업이 안 된다. 도전정신을 갖고…. 힘들어 봤자 얼마나 힘들겠나? 눈높이를 조금만 낮춰서 회사에 들어오면 그 안에서 또 다른 미래가 보인다."

92학번인 이아무개(36)씨에게도 외환위기는 남다른 기억으로 남아있다.

"졸업을 했는데, 신규사원을 뽑는 회사가 없었다. 원서를 낼 기회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겨우 뽑는 곳이 보험영업이었다. 지금도 가끔 동기들을 만나는데, 아직까지 보험영업을 하는 친구들이 절반은 넘더라."

이씨는 외환위기 당시 대학원으로 피신(?)했다가 졸업 후 원하는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지금은 연 3000억 매출에 600억 순이익을 올리는 IT 계열 상장기업에서 인력팀장을 맡고 있다. 이씨의 회사는 올해 신입사원을 30명 뽑았고, 내년에는 더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외환위기 때와 지금은 다르다. 당시에는 아예 사람을 뽑지 않았지만, 지금은 중소기업 쪽에 기회가 있는데 (구직자들이) 안 가려고 한다.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그럼, 구멍가게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 동료들도 많게는 6~7개 회사를 거쳐서, 우리 회사까지 왔다. 금융위기나 경기침체를 핑계댈 게 아니다. 분위기만 위기지, 실제 일반 기업은 이제 얼마나 많이 튼실해졌나. 재무적으로 안정돼 있고, 돈 잘 버는 기업도 많다."

이씨는 "스펙은 공기업 취업용이고, 요즘 기업들은 직무 위주로 사람을 뽑는다. 신입보다 경력직을 선호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라며 "취업 준비생들은 어떤 회사를 갈 것이냐가 아니라 자신이 정확하게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지난해 광주의 한 대학에서 열린 취업 설명회.
지난해 광주의 한 대학에서 열린 취업 설명회. ⓒ 연합뉴스 형민우

"전공 살리자니 자리가 없고, 눈 돌리자니 전공이 발목 잡고"

그런 점에서 보면 올해 2월 성균관대 스포츠과학부를 졸업한 박광민(28)씨는 모범적인 취업준비생이다. 영어 공부 때문에 카투사에서 군복무를 한 박씨의 토익 점수는 895점, 토익 스피킹 레벨은 8에서 7이다. 컴퓨터 자격증도 하나 가지고 있다. 대학 3학년 여름방학 때 <조선일보> 인턴을 했고, 대학 1학년 때부터 <중앙일보>와 <스포츠서울>에서 사이버리포트 학생기자로 활동한 이력도 있다.

무엇보다 그가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스펙'은 야구심판 수료증과 국제테니스심판 4급 자격증이다. 스포츠마케팅 쪽에도 관심이 있는 그는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 취업을 원하고 있다. 그러나 워낙 채용 규모가 적을 뿐 아니라 대부분 경력자를 요구하고 있어서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결국 전공을 무시한 채 일반기업 홍보실이나 해외영업부서를 지원해봤지만, 이번엔 면접이 문제였다. 빵빵한 스펙 덕에 서류는 대부분 통과되는데, 면접을 보러 가면 '스포츠과학부 졸업자가 왜 해외영업을 지원하냐'는 핀잔 섞인 질문을 받아야 했다. 전공을 살릴 수 없어서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렸더니, 다시 전공이 발목을 잡은 셈이다.

"힘든 일을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다. 제 전공에 맞거나 제가 열정을 갖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곳이라면, 힘들더라도 돈을 적게 받더라도 열심히 할 마음은 있는데, 그런 곳조차 많지 않다. 저뿐만 아니라 같이 준비했던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최근 박씨는 답답한 마음에 아디다스·퓨마 등 국내 스포츠관련 업체 10곳에 직접 전화를 걸어서 채용 계획을 물었다. 하지만 10개 업체 모두 "계획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나마 한 업체는 "계획이 없지만 이력서는 보내봐라"고 해서 위안이 됐다고 한다.

"경제 상황이 안 좋아서 내년 하반기까지 채용 계획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을 때는 허탈하고 답답하더라. 지금 상황은 내가 어떻게 한다고 해서 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 내년부터 후년까지 경기 회복이 쉽지 않을 거라는 얘기를 들으니까, 자꾸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게 된다."

박씨는 내년 2월 대한체육회 채용 공고를 기다리고 있다. 그에겐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그때도 취업이 되지 않으면 내년 하반기에는 대학원 진학을 준비할 생각이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은 비단 박씨만의 고민은 아니다. '금융위기 학번'들은 'IMF 학번'들이 앓았던 취업 우울증을 겪고 있다. 긴 어둠의 터널 입구에 선 그들의 불안은 시대의 불안이기도 하다.

[최근 주요기사]
☞ [현장] 서울시교육청 앞 1천여 촛불... 징계교사, '출근투쟁' 선언
☞ ['널 기다릴께 무한도전x2' 9일째] 256명 미션도 성공
☞ '낙동강 살리기' 설문조사 여론조작 의혹
☞ '벌금 300만원 구형' 강기갑 "모범선거 하려 했지만"
☞ [엄지뉴스] 명동 한복판에 웬 경찰이 쫙 깔렸네
☞ [E노트] 대박 동영상... "미쳤어, MB가 미쳤어!"


#취업대란#금융위기 학번#저주받은 학번#고용#스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