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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셔요.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았습니다. 잠깐 들른 헌책방에서 얼결에 마주쳤고, 그김에 어머님 딸아이가 조용히 책 즐기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서 보내드리게 되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아이가 어머님하고, 또 아버님하고, 또 오빠하고 함께 헌책방 나들이를 즐긴다는 대목이 참으로 훌륭하며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이한테 아버님과 어머님이 ‘어떤 책을 읽으라’고 억지로 쥐어 주는 모습 또한 보여주지 않아서, ‘참 생각이 깊은 분이구나’ 하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딸아이와 아들아이는 어머님과 아버님이 보여주는 매무새대로, 또 어머님과 아버님이 살아가는 대로, 그리고 어머님과 아버님이 일러주는 길대로 즐겁고 씩씩하게 잘 걸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머님께서는 한쪽 어깨에 사진기를 메고 있는 저한테 스스럼없이 말문을 여셨습니다. 그만큼 딸아이 앞날을 깊이깊이 헤아리고 있다는 뜻이고, 누구보다 어머님이 먼저 세상을 부대끼면서 딸아이한테 도움될 여러 가지를 잘 알아보고 살펴서 건네주려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제 어린 날을 돌아보면, 우리 어머니나 아버지가 그처럼 제 앞날을 걱정하면서 둘레사람들한테 좋은 이야기를 얻어듣게 해 준 일이 없음이 새삼스럽습니다. 옛날 어버이란 모두 그러하셨을는지 모르는데, 그렇게 하신 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있는 한편, 저로서는 도움이 된 대목도 틀림없이 있습니다.

헌책방 나들이를 온 어머니와 딸아이.
▲ 딸아이와 어머니 헌책방 나들이를 온 어머니와 딸아이.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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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가 제 앞길을 헤아리면서 그처럼 알음알이를 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저로서는 모든 일을 제가 스스로 해야 했습니다. 모두 제가 스스로 겪고 부딪혀야 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한테 뜻이 있어서 그리하셨는지 모를 노릇이지만, 이제 와 돌아보면 그러하시지는 않은 듯하고, 당신들 삶을 꾸리는 가운데 벅차서 좀 내버려 두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잘하든 못하든 믿지 않았으랴 싶기도 합니다. 정 힘들거나 엇나가면 넌지시 손길을 내밀면서 도와주되, 제가 스스로 ‘더는 못하겠습니다!’ 하고 외칠 때까지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셨다고 할까요.

이리하여 저는 고등학교를 마친 뒤 곧바로 부모님 집에서 나와 혼자 살림을 꾸리며 살았고, 두 번 다시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고향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낯선 새침데기와 깍쟁이하고 부대끼면서, 강원도 양구 산골짜기 군대에 스스로 나서서 들어가 몇 해 썩으면서, 또 맨주먹으로 책마을 밑바닥 일꾼이 되어서 여러 해 구르면서, 그러다가 충주 산골짜기에서 ‘돌아가신 어르신’ 원고더미에 파묻혀 먼지를 먹어 가면서, 그런 다음 다시 고향 인천으로 3.5톤 짐차 석 대에 가득 쟁여 실은 책짐을 손수 싸고 나르고 하여 다시 갈무리하고는 동네 도서관을 열었습니다. 뒤돌아보면 금방이지만, 그래도 열 몇 해가 지난 나날인데, 앞으로 걸어갈 길은 한참 멀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저는 지금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책을 만들면서 살고 있는데, 지금과 같은 일을 하리라고는 예전에는 하나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조금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저 한 가지, “어른다운 어른으로 사는 일”이 꿈이었고, 어른다운 어른으로 살자면 돈벌이에 매여서는 안 되지만 돈을 안 벌고 탱자탱자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더욱이 집살림이 넉넉해서 돈 걱정 않고 살 수 있는 집안이 아니었습니다.

그리 많은 일자리를 겪어 보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와 생각하면 어찌어찌 잘 살아온 셈이구나 싶은데, 그동안 여러 일을 거쳐 오면서, 세상을 알자면 꼭 많은 일자리를 겪어 보아야 한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어떤 일거리이든 이 일을 맡은 동안 무엇을 보고 느끼고 곰삭이려고 하는지가 크게 돌아볼 대목이고, 어느 일을 하든 제 몸을 모두 내맡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깨달았습니다. 신문배달로 먹고살 때에는 신문배달만을 생각했고, 책방에서 점원을 맡았을 때에는 책방 점원만을 생각했으며, 출판사에서 일할 때에는 출판사 노릇만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동네 도서관만을 생각하는 가운데, 제 글쓰기와 사진찍기와 자전거타기만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올여름에 태어난 딸아이를 집에서 우리 두 사람이 고이 기르는 길만을 생각합니다. 날마다 하루 1/3을 천기저귀 빨고 널고 개는 데에 쓰고, 나머지 2/3는 밥하고 설거지하고 치우고 애 어르는 데에 쓰고, 나머지 1/3은 잠자고 밥먹고 책읽고 글쓰는 데에 보내는데, 어느 하루도 고단하지 않은 날이 없음에도 그예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손이 시려 이맛살이 찌푸려지고 끙끙 소리를 내지만, 한창 글을 쓰다가 아기를 안고 달래야 해서, 아이구 아이구 아기야 하고 하소연을 하지만, 이 모든 일에는 뜻이 있을 테니 기다리자고, 견디자고, 살아내자고 다짐하게 됩니다.

어머님 딸아이를 살짝 스치면서 여러모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어머님 딸아이는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어할까 하고.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하든, 지금 이곳에서 무엇을 보고 듣고 겪으면서 살고 있을까 하고. 앞날도 앞날이지만 바로 이 자리에서 무슨 놀이를 즐기고 어떤 동무를 사귀고 어떤 이웃 어른을 부대끼면서 배우고 익히고 곰삭이고 받아들이고 나누고 펼치고 있을까 하고.

스스로 읽을 책을 스스로 찾아서 읽듯, 스스로 걸어갈 길을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도록 어머님이 도와준다면, 아이는 스스로 힘차고 꿋꿋하게 어떤 일이든 슬기롭게 해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 책읽는 마음을 스스로 읽을 책을 스스로 찾아서 읽듯, 스스로 걸어갈 길을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도록 어머님이 도와준다면, 아이는 스스로 힘차고 꿋꿋하게 어떤 일이든 슬기롭게 해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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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가 예술을 하거나 문화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둘레사람들은 제가 예술을 하거나 문화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예술이나 문화는 무엇인지, 또 제가 느끼는 예술이나 문화는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사람들은 으레 악기를 타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사진이나 그림을 하거나 글을 쓰면 문화이거나 예술인 듯 여깁니다. 영화를 찍거나 몸짓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연극이나 마임을 해도 문화나 예술인 듯 여깁니다. 그러나 악기를 타거나 연극을 하거나 사진을 찍는다고 하여 모두 문화나 예술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 대단히 많은 사람들은 ‘장사꾼’이나 ‘직업인’이지, ‘문화인’이나 ‘예술인’이 아닙니다. 오로지 돈을 버는 길 가운데 하나로 사진기를 들고 붓을 들고 악기를 들고 있을 뿐입니다.

문화인이나 예술인이면서도 돈을 벌 수 있습니다. 틀림없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돈을 버는 자기 일거리를 놓고 이 일거리는 문화이거나 예술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저 돈벌이일 뿐이에요. 상업미술, 상업사진, 상업영화라는 이름도 있지만, 이런 상업문화가 장사꾼이기만 하지 않습니다. ‘상업’이 붙지 않았음에도 장사꾼 사진이 있고, ‘상업’을 내걸지 않으면서도 장사꾼 연주가가 있습니다.

문화이든 예술이든 가난하지 않은 살림에서는 샘솟을 수 없고, 가난하지 않은 마음에서 우러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난하게 꾸려가는 넋이요 얼이라 하더라도 문화나 예술로 꽃피우지 못하고 시드는 수도 잦아요. 고꾸라지거나 꺾이거나 엇갈리는 때도 있습니다.

곰곰이 살피면, 가난하기 때문에 손수 해야 합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몸으로 뜁니다. 영화 〈플래쉬댄스〉에 나오는 춤꾼 아가씨는 ‘춤 교육’을 한 번도 받은 적 없이 스스로 길에서 부대끼는 동안 스스로 춤을 익히고 갈고닦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한테 눈물이 찔끔 나오도록 하는, 또는 저절로 웃음짓게 하는 멋진 춤, 아니 훌륭한 춤을 선사합니다. ‘거장’ 소리를 듣는 사진작가이든 영화작가이든, 스스로 새 길을 열었습니다. 이들한테도 어김없이 스승이 있기는 있지만, 늘 곁에서 따라다니며 챙겨 주는 심부름꾼이 아닌 따끔하고 매서운, 그러면서 너그럽고 따뜻한 어깨동무 같은 스승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스승한테서 일찌감치 물러나와 스스로 가시밭길을 걸어가면서 제 길을 뚫고 열었어요. 혼자서 외로움과 싸우면서 일으키는 문화이고, 혼자 힘으로 가슴벅참을 견디고 벗어던지면서 뿌리내리는 예술입니다.

어머님 딸아이가 먼 앞날 예술가 길을 걷게 되기를 바라신다면, 또는 꿈꾸신다면, 또는 벌써부터 그 길을 한 발 두 발 걷고 있다면, 지금 이 아이가 만나고 느끼고 받아들일 가슴에는 ‘자연’이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든 쇼팽이든 슈베르트든, 페스탈로찌든 야누쉬 코르착이든 이오덕이든, 샤를르 드 푸꼬든 조정래든 박완서든, 레이첼 카슨이든 알도 레오폴드이든 어니스트 톰슨 시이튼이든, 이분들을 키운 밑거름은 ‘자연’이고, ‘자연과 함께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뻘흙을 밟고 놀면서, 또는 뻘흙에서 뻘몸이 되어 조개를 캐며 일하면서, 들꽃과 들나무하고 벗삼고 놀면서, 또는 들판에서 구부정하고 논 매고 밭 매고 일하면서, 말을 타고 멀리멀리 나들이를 다니면서, 또는 전등불빛만 대롱대롱 달린 공장에서 숨죽여 기름밥 먹고 일하면서, 기생을 옆자리에 끼고 술잔을 부딪히고 하느작대며 시를 읊으면서, 또는 부엌데기로 한삶을 보내느라 젊음을 잃어버리면서, 한 사람이 크고 한 넋이 이루어집니다.

부모님들이 책을 좋아할 뿐더러 즐겨읽고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할 때, 아이들 또한 책을 좋아할 뿐더러 즐겨읽고 사랑하는 마음을 찬찬히 받아들이게 됩니다. 아이는 어른을 따라가고, 어른은 아이한테 길잡이이자 길동무 노릇을 합니다.
▲ 책읽는 부모님들 부모님들이 책을 좋아할 뿐더러 즐겨읽고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할 때, 아이들 또한 책을 좋아할 뿐더러 즐겨읽고 사랑하는 마음을 찬찬히 받아들이게 됩니다. 아이는 어른을 따라가고, 어른은 아이한테 길잡이이자 길동무 노릇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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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동안 우리 집 딸아이가 오줌을 세 번이나 싸서 기저귀 갈고 안고 어르느라 힘이 다 빠집니다. 삶이란 다 이러한가 하고 한숨을 쉬다가, 우리 딸아이가 하루하루 크면서 스스로 걷고 움직일 수 있게 되면, 무엇보다 빨래를 배우고 걸레질을 배우고 설거지를 배우고 밥하기를 배우고 바느질을 배우게 될 테지, 하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이러한 글이 어머님한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글과 사진과 자전거로 살아가는 넋 하나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림을 꾸리고 있는가 하는 이야기로 받아들여 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하느님도 말하고 부처님도 말하지만, 하느님을 믿는 사람과 부처님을 믿는 사람 모두 제대로 받아안지 못하는 “가난처럼 큰 고마움이 없다”는 말씀을 다시금 새겨 봅니다. 나중에 또 헌책방이나 골목길에서 얼굴 뵐 일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제가 엮는 잡지 7호는 출판사가 요즈음 형편이 좋지 않아 자꾸 늦춰지고 있습니다. 이달 12월에는 세상에 나올 수 있을까 없을까 모르겠네요. 긴 이야기 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태그:#책읽기, #예술, #육아, #어린이,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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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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