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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형식적인 민주주의

 

.. 어느 것이나 지금까지 다녔던 학교에서 형식적인 민주주의밖에는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  《호리 신이치로/김은산 옮김-키노쿠니 어린이 마을》(민들레,2001) 41쪽

 

 “어느 것이나”는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어느 한 가지”나 “어느 하나도”나 “어느 하나라도”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 형식적(形式的) : 사물이 외부로 나타나 보이는 모양을 위주로 하는

 │   - 형식적 절차 / 형식적 구호에 그치다 / 형식적인 대화만 오갔다 /

 │     검문은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 형식적인 인사치레일 뿐이다

 ├ 형식(形式)

 │  (1) 사물이 외부로 나타나 보이는 모양

 │   - 형식을 갖추다 / 이번 행사는 형식에 신경을 많이 쓴 듯했지만

 │  (2) 일을 할 때의 일정한 절차나 양식 또는 한 무리의 사물을 특징짓는

 │      데에 공통적으로 갖춘 모양

 │   - 비문 형식 / 자유로운 형식으로 표현된 글

 │

 ├ 형식적인 민주주의

 │→ 틀에 박힌

 │→ 속이 빈(속없는) 민주주의

 │→ 텅 빈(빈 깡통) 민주주의

 │→ 알맹이 없는 민주주의

 └ …

 

 제대로 된 민주주의, 속까지 꽉 찬 민주주의, 우리 삶을 밝히고 자기 자신을 가꿀 수 있는 민주주의를 배우기 어렵거나 배울 수 없는 제도권 교육 틀거리에 매인 우리들입니다. 민주주의가 아닌 제 한몸 잘 되면 그만인 경쟁과 시험만 가르칠 뿐입니다. 시험에 나오는 지식은 우리 이웃과 넉넉하게 나누고 어깨동무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회나 문화 틀에서 민주주의를 배우지 못하고 헤아리지 못하고 있으니, 우리가 쓰는 말과 글도 민주주의다운 빛깔을 담아내지 못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 겉치레 민주주의

 ├ 겉발린 민주주의

 ├ 껍데기 민주주의

 ├ 겉핥기 민주주의

 └ …

 

 사람들은 으레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말을 살짝 바꾸어 다시 이야기합니다. “겉보다 속이 중요하다”, 또는 “겉보다 속이 알차야 한다”, 또는 “겉이 아닌 속을 차려야 한다”, 또는 “겉이 아니라 속을 보아야 한다”라고.

 

 ┌ 형식적 절차 → 뻔한 차례 / 틀에 박힌 차례

 ├ 형식적 구호에 그치다 → 겉발린 외침에 그치다

 ├ 형식적인 대화만 오갔다 → 빈 말만 오갔다 / 알맹이 없는 이야기만 오갔다

 ├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 대충 이루어지고 있었다

 └ 형식적인 인사치레일 뿐 → 입발린 인사치레일 뿐

 

 그렇지만, 우리 스스로 틀에 박히고 있으니 틀에 박힌 제도권 교육이 안 바뀌지 않느냐 싶기도 합니다. 우리 스스로 틀에 매이면서 어떤 잇속을 얻거나 챙기려고 하니까 틀에 매인 정치꾼만 되풀이 나오지 않느냐 싶습니다. 얕은 잇속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기쁨으로 거듭나야 할 텐데, 제 배만 불리는 일이 아니라 이웃과 오순도순 나누는 삶으로 새로워져야 할 텐데, 우리 주머니는 나날이 두둑해지고 있어도 두둑한 주머니를 풀 줄 모릅니다. 두둑한 주머니를 어디에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를 모릅니다.

 

 생각이 갇히고 마음이 갇히고 넋과 얼마저 갇히면서 우리 삶이 갇힙니다. 일이 매이고 놀이가 매이며 일터와 놀이터가 매이니 삶과 삶터 모두 매이고 맙니다.

 

 마음을 열면서 살아야 말이 열리고, 생각을 틔우며 살아야 글이 확 트입니다. 돈을 바라는 삶으로는 돈에 매인 글만 나오고, 이름값에 얽힌 삶으로는 이름값을 지키려는 글만 나옵니다. 내 사랑을 실어 함께하려는 매무새가 될 때, 내 글 또한 이웃을 사랑하고 동무와 온식구를 사랑하는 글이 됩니다. 내 믿음을 담아 고루 나누려는 몸가짐이 될 때, 내 말 또한 피붙이와 겨레붙이 누구나 아낌없이 끌어안는 말이 됩니다. 속을 차리며 살 때 속이 꽉 찬 사랑과 믿음을 다독이면서 사랑과 믿음으로 아름다워지는 말이 태어나고, 겉을 차리며 살 때 겉으로만 번지르르하고 겉보기에 대단한 듯 여겨지는 겉치레 말과 겉발린 말만 쏟아집니다.

 

ㄴ. 형식적으로 의결

 

.. 2005년에는 증인 채택 안건 처리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 회장 출국이 확인된 뒤에야 형식적으로 의결되었다 ..  《심상정-당당한 아름다움》(레디앙,2008) 83쪽

 

 ‘차일피일(此日彼日)’은 ‘이날저날’이나 ‘오늘내일’이나 ‘하루이틀’이나 ‘자꾸자꾸’로 다듬어 줍니다. “이 회장 출국(出國)이 확인(確認)된”은 “이 회장이 밖으로 나간”이나 “이 회장이 나라밖으로 떠난”으로 손봅니다.

 

 ┌ 형식적으로 의결되었다

 │

 │→ 대충 의결되었다

 │→ 겉치레로 의결되었다

 │→ 시늉으로 의결되었다

 │→ 알맹이 없이 의결되었다

 │→ 빈 껍데기로 의결되었다

 └ …

 

 증인으로 불러야 할 사람이 없는 가운데 ‘증인을 부르려는 안건’을 국회에서 의결했다고 하니, 증인은 올 수 없을 테지요. 증인으로 나와야 할 사람이 슬그머니 나라밖으로 빠져나가고 난 다음에야 이와 같은 안건을 의결해 보았자, 껍데기로는 ‘틀림없이 안건을 처리했다’고 내세울 수 있을 터이나, 정작 증인은 나오지 않으니까 속 빈 강정입니다.

 

 정치가 속 빈 강정이고, 경제가 속 빈 강정입니다. 지금 우리 나라 국민소득은 1만 달러를 넘고 2만 달러를 바라본다고 하는데, 이런 돈 숫자는 그저 뜬구름으로만 느껴집니다. 2만이 아닌 3만이 되건 4만이 되건 비정규직은 하염없이 늘고, 정규직인 사람은 스스로 비정규직을 품에 안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쇠밥그릇이 되고자 하며, 쇠밥그릇이 된 다음에는 꼼짝을 않아요.

 

 나날이 더 많이 배우게 되며, 이제는 대학교 안 나온 회사원이나 공무원은 없다고 할 텐데, 그지없이 많이 배운 사람들이 밥그릇 나누기를 하는 모습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저 밥그릇을 얼마나 오래오래 붙잡고 있느냐에 목을 매단다는 느낌입니다. 죽는 날까지 혼자서 다 먹지도 못할 만큼 몰래 쌓아 놓고서, 곳간에서 곡식이 썩어들거나 쥐가 파먹어도 한 줌조차 내놓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삶이 엉망이고, 생각이 엉터리며, 말은 엉망진창입니다.

덧붙이는 글 | 서로가 서로를 헤아린다면서 '형식에 매인' 말을 으레 하기도 하는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형식을 차리는' 말을 하면서 우리가 쓰는 말과 글도 속살이 아닌 껍데기만 늘면서 차츰차츰 어지러워지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면서 '형식 + 적'붙이 말투를 다듬는 이야기를 펼쳐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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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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