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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류뭉치를 들고 문정현 신부와 전주지법에 들어서는 김형근 교사. 김 교사는 서로 죽고 죽이던 가슴 아픈 역사를 이제 싸안고 6·15공동선언 정신으로 평화통일을 맞이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서류뭉치를 들고 문정현 신부와 전주지법에 들어서는 김형근 교사. 김 교사는 서로 죽고 죽이던 가슴 아픈 역사를 이제 싸안고 6·15공동선언 정신으로 평화통일을 맞이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 조종안

 

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형근(49) 교사의 14차 공판이 28일(금) 오후 2시 전주지방법원 제3호 법정에서 열렸습니다. 이날 재판에서는 컴퓨터 데이터복구 때 드러나는 파일정보의 신빙성 문제와 증거 능력을 놓고 검사와 변호사 간에 치열한 공방을 벌였고, 검사 측 증인과 피고인 측 증인신문이 있었습니다.

 

김형근 교사는 지난 2005년 전북 임실 관촌중 재직 당시 학부모들과 학생 180명을 인솔하고 순창 회문산에서 열린 ‘남녘 통일 애국 열사 추모제’ 전야제 문화행사에 참여했는데 일부 언론이 '어린 학생들을 데리고 빨치산 추모제 참석해서 구호를 외쳤다.'는 내용으로 왜곡 보도하는 바람에 지난해 4월부터 3개월간 전북경찰청 보안수사대의 수사를 받았습니다.

 

전북경찰청 수사대가 새벽에 김 교사 집을 급습, 압수수색을 벌이고 10차례의 수사를 했지만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하고 사실상 수사가 종결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사건이 검찰로 이관되면서 상황이 급반전됐고 지난 1월 구속 수감되어 6월에 보석으로 출소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날 재판정에는 김형근 교사 부인과 문정현·문규현 신부, 서울과 부산, 대구, 대전, 익산 등지에서 참석한 통일단체 및 시민사회활동가 30여 명이 증인심문을 지켜봤습니다.

 

 밖으로 쫓겨난 증인과 방청객들. 문정현 신부가 침통한 표정으로 부인과 함께 부산에서 오신 손님과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밖으로 쫓겨난 증인과 방청객들. 문정현 신부가 침통한 표정으로 부인과 함께 부산에서 오신 손님과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 조종안

 

먼저 나온 검찰 측 증인이 비공개로 해 달라고 요청하는 바람에 관심을 두고 지켜보던 방청객들이 밖으로 쫓겨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청원경찰과 약간의 시비가 일기도 했습니다. 문정현 신부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장난도 아니다. 멀리서 온 방청객들을 추운 밖으로 내몰면서까지 떳떳하지 못한 짓을 왜 하느냐?"라며 비공개 증인신문에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검찰 측 증인 신문이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동안 법정 밖에서는 “이렇게 시간을 오래 끄는 것은 각 지역에서 찾아온 우리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검찰의 횡포 아니냐?”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먼 곳에서 참석한 방청객들도 추운 날씨에 이럴 수는 없다고 억울해하면서도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한 방청객은 자판기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들고 다니며 일일이 권해 초겨울 법정의 을씨년스러움을 덜해주기도 했습니다. 

 

오후 4시가 되어서야 추위에 떨던 방청객들이 입장해서 피고인 측 증인 김동우, 윤성남의 증인신문이 1시간 30분 가량 진행되었습니다. 신문 과정에서 검사가 “변호사는 사건과 관련 없는 질문을 한다.”면서 자제를 요청해 검사와 변호사 간에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판사의 중계로 원만하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재판에 임하는 김형근 교사의 각오    

 

 변호사와 재판을 준비하는 김형근 교사. 그는 학생들이 추모제에 참석을 했다고 해도 죄가 될 게 없다며 행사를 개최한 사람들은 놔두고 지나가다 들른 어린 학생들을 탓하는 것은 6·15공동선언의 의미를 희석시키려는 음모라고 주장합니다.
변호사와 재판을 준비하는 김형근 교사. 그는 학생들이 추모제에 참석을 했다고 해도 죄가 될 게 없다며 행사를 개최한 사람들은 놔두고 지나가다 들른 어린 학생들을 탓하는 것은 6·15공동선언의 의미를 희석시키려는 음모라고 주장합니다. ⓒ 조종안

 

재판이 시작되기 전 김형근 교사를 만나 시국이 어수선한데 재판에 어떻게 대응해나갈지 묻자 며칠 전 광주 고법 이한주 부장판사의 판결문을 인용했습니다. 김 교사는 “경찰, 검찰도 진실을 외면하고 마지막 희망이었던 법원마저도 똑같은 결정을 내렸을 때, 그 시절이 얼마나 억울하고 힘들고 섭섭하셨습니까? 그동안 겪은 고통에 대해 법원을 대신해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라는 부분은 차라리 문학적이었다며 이번 재판에 임하는 각오를 설명했습니다. 

 

“오송회 사건과 같은 탄압사건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의 재판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오늘 재판의 내용만 봐도 그렇습니다. 6·15공동선언을 교육했다고 아무런 죄도 없는 저를 무슨 사상가로 몰아 재판을 받게 하며, 검찰은 그 근거로 컴퓨터에 북한 원전들을 다운 받아 소지하고 있었다며 기억에도 없는 증거를 들이대고 있습니다. 21세기 문명사회에 무슨 글을 보았다는 가정으로 처벌하려 하니, 얼마나 천박한 일입니까?”

 

“이번 사건의 고소인인 뉴라이트, 이들처럼 인간의 탈을 쓰고 후안무치한 자들이 또 어디 있습니까? 피할 수만 있다면 더러워서 피하고 싶은 마음입니다만, 저들의 날 선 발톱과 광기의 올가미가 워낙 극에 달해 피할 수도 없으려니와 제가 피한다고 해서, 이 썩은 뼈다귀 같은 국가보안법의 기재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기에 차라리 저 사악한 무리와 싸워서 인간의 숭고함과 존엄을 지켜내겠다는 각오입니다.”

 

김 교사는 추모제에 참여했다 하더라도 문제가 될 것은 하나도 없다며 비록 총을 맞댄 전쟁 중에도 적군이 상처를 입거나 죽으면 치료와 예우를 해주는 것이 제네바협정으로 UN의 기본정신이고 인류 보편적인 이성과 양심이라며 미국 버지니아 공대 총격사건 희생자 추모제에서 밝힌 촛불을 예로 들었습니다.

 

변호사석에서 검사와 마주 보며 재판을 받은 김 교사는 장기수 출신 윤성남 증인에게 검사가 반말투로 무리한 질문을 던지자 “연세가 지긋하신 어른에게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라며 준엄하게 꾸짖기도 했습니다. 

 

김동우, 윤성남 증인의 증언

 

  손님들을 찾아다니며 인사 하는 김형근 교사 부인. 좌측부터 문정현 신부, 김동우 증인, 김형근 교사 부인, 문규현 신부
손님들을 찾아다니며 인사 하는 김형근 교사 부인. 좌측부터 문정현 신부, 김동우 증인, 김형근 교사 부인, 문규현 신부 ⓒ 조종안

 

김형근 교사와 전북대 동기인 김동우(자영업) 증인은 주로 장기수 후원회(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결성과정과 회장으로서 모임이 인도적 차원에서 결성되었다는 점과 빨치산 활동을 하다 잡혀 30년 넘게 장기 투옥했던 유영쇠 선생 수기 제작, 반포는 피고인(김형근 교사)의 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증언했습니다.

 

김 증인은 “피고인과 친구로 지내면서 피고인의 평상시 행적이 사회의 민주주의 통념에 어긋나는 행위가 있었는가요?”라는 변호사 질문에 “자주 만나지도 못하지만 그런 말을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다”고 짧게 답변했습니다.

 

유영쇠 선생 수기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실질적으로 위태롭게 할 만한 내용이 있는지 묻자 “자본주의 경제 질서와 현 정부를 전복 하자거나, 북한 통일을 주장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중간에 검사가 끼어들어 “빨치산 활동도 전복인 줄 모르느냐?”라고 따지자 그것은 처벌받기 전의 얘기라며 죗값을 다 치른 유영쇠 선생이 60년 전 상황을 현재도 그렇게 활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며 그의 수기도 올리지 않았다고 부정했습니다.

 

윤성남 증인은 2005년 3월 관촌중학교를 방문한 계기와 목적, 좌담회에서 있었던 일 그리고 회문산 남녘 애국 통일열사 추모제 전야제 행사 관련에 대해 증언했는데, 오늘날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어떤 짓을 했는지 역사를 바로 봐야 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윤 증인은 변호사가 “증인은 피고인을 어떻게 만났는가요?”라고 묻자 20년 전 근로기준법과 세법 관련 책을 사러 다니다 서점 주인이었던 김형근 선생을 알게 되었는데 상당히 자상하고 친절해서 호감이 갔었다고 답변했습니다.

 

그 후 우연한 기회에 정년퇴직한 교장을 만났는데 김 교사가 관촌중학교에 재직하는 것을 알았고, 2005년 5월에 있을 추모제를 위한 회문산 현장답사를 갔다가 통일편지를 열심히 쓴다는 관촌중 학생들이 생각나 들르게 되었는데 좌담회에서 시골학생들이지만 6·15공동선언을 잘 외운다는 학부모의 자랑에 더욱 관심을 두게 됐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교도소에서 30년 넘게 옥살이를 했다고 하자 어린 학생들이 놀라며 이것저것 질문을 하기에 역사 이야기를 해준 사실도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킨 서산대사 이야기를 해준 것으로 기억한다며 설명을 하려 하자 판사가 나서더니 요점만 하라며 중간에서 끊더라고요.  

 

윤 증인은 마지막 발언에서 “판사님, 오늘 답변을 하면서 김형근 선생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판사님이 참고해주세요.”라고 호소해서 방청객들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두 사람의 증인심문은 캄캄해진 오후 5시30분이 넘어서야 끝났습니다. 재판이 끝나고 판사가 다음 재판은 12월12일이나 17일이 어떻겠냐고 묻자 변호인 측이 취득할 수 있는 자료를 준비하려면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며 연기를 요청했습니다.

 

대화를 듣고 있던 검사가 변호사를 향해 시간을 끌려고 하지 말라고 하자 김 교사가 검찰이 요청한 제성호 증인이 나오지 않아 재판이 몇 달 미뤄졌는지 아느냐며 검사를 힐난, 분위기가 싸늘해졌으나 판사의 중계로 오는 12월22일 오후 2시 전주지방법원 3호 법정에서 열기로 합의하고 14차 공판을 마쳤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필통(http://blog.hani.co.kr/chongani/)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형근 교사#국가보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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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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