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부터 노란 꽃망울로 춘심(春心)을 자극하던 산수유, 그가 피어나는 것을 보면서 긴 겨울 지나고 봄이 온다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마른 가지에서 불꽃놀이를 하듯 피어오르는 노란 신비를 보면서 ‘봄이 어디까지 왔나?’ 동토에서 올라오는 푸릇푸릇한 생명의 기운을 찾아나서곤 했습니다.
그렇게 봄이 오는가 싶더니만 어느새 봄은 가버리더이다. 왔다고 느끼는 순간, 이미 봄은 내년을 기약하고, 이른 봄 피었던 산수유의 노란빛도 쇠잔한 빛으로 남아버렸습니다.
그렇게 꽃이 진 후에는 자잘한 열매들이 열렸습니다. 보잘것없는 작은 열매들이었는데 하루하루 바라보아도 그저 그런 것 같더니만 어느 날 갑자기 붉은빛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꽃보다 나중에 봄맞이했던 산수유의 이파리가 만들어준 그늘이 그리운 여름, 산수유의 열매는 속내까지 붉게 익어갔습니다.
그렇게 하나 둘 익어가는가 싶더니만 그 많은 산수유 열매가 모두 붉은빛으로 익었을 즈음 뜨거운 햇살 가득하던 여름 하늘이 점점 높아졌습니다. 가을이 온 것입니다. 계절이 변한다는 것은 신비입니다. 붉은 열매와 어우러진 산수유의 단풍이 보고 싶었습니다.
일상에 파묻혀 지내다 산수유의 단풍이 얼마만큼 들었는지, 또 어떤 빛으로 물들어가는지 보질 못했습니다. 가뭄이 심했던 올해는 열매도 그리 많이 맺지 못했고, 단풍도 그렁저렁했습니다. 산수유의 단풍이 고왔다면 눈에 쏙 들어왔을 터인데 올해는 그저 평범하게 물들어갔던 모양입니다.
산수유에 눈독을 들인 이들이 많이 있었는지, 하루 지나고 나면 누군가 산수유를 따간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도 참 좋은 재미인데 먹을 수 있는 것을 거두지 않고 그냥 두면 죄라도 되는 듯 자기의 것도 아닌데 따가는 이들을 보면서 야속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남은 것들은 늘 있기 마련입니다. 가끔 산수유를 따서 씹어봅니다. 떨떠름한 맛이 강합니다. 그런데 그 맛도 그런대로 좋아서 간혹 한두 개씩 따서 먹고는 했습니다. 그러다가 입동이 지난 후 어느 날 갑자기 맹추위가 몰려왔습니다. 사나흘 영하로 떨어진 날씨에 산수유도 놀랐는가 봅니다. 딱딱했던 열매들이 부드러워지고, 떫은맛은 어디로 가고 단맛만 남았습니다.
고난의 의미를 봅니다. 고난, 그것은 이렇게 변화시킵니다. 고난을 잘 견뎌내면 떫은맛을 단맛으로 바꾸는 기적을 보게 됩니다. 아니, 기적이 아니라 순리입니다. 고난의 때를 잘 이겨낸 사람들의 인생이 깊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지요.
전 세계의 경제가 어렵다고 합니다. 이런 시절은 가난한 이들에게 더 많은 인내를 요구합니다. 마음 아픈 현실이지만 어쩌겠습니까? 견뎌야죠. 이겨내야죠. 그래서 모래 위에 세워졌던 것들과 거품으로 이뤄진 허상들을 청산해야죠.
첫눈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가을도 이젠 가고 겨울입니다. 겨울은 가난한 이들에게 가장 힘든 계절입니다. 그래도 겨울이 있어 봄이 있는 것이니, 이 겨울을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요즘 우리에게 닥친 어려움에 경거망동하지 말고, 그동안 부조리하게 만들어진 허상들이 깨어지는 시기라고 생각하면서 의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알곡과 쭉정이의 실체를 분명하게 하는 시기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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