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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수용소를 떠나 얼마쯤 가는데 베트남 특유의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한다. 비를 맞고 달리다 급한 대로 눈에 보이는 가게에 들어가 비를 피한다. 외국인을 자주 접하지 않은 눈초리로 우리를 쳐다보는 주인 아저씨. 음료수를 사들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볼품없는 의자에 앉아 비가 오는 경치를 본다.

조금 있으니 빗줄기가 가늘어지면서 가게 옆에 있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나오기 시작한다. 빨간 손수건을 목에 두른 교복이 인상적이다.

 사진을 찍어달라면 자세를 취하는 학생들: 빨간 머플러가 베트남은 공산국가라는 것을 생각나게 한다.
 사진을 찍어달라면 자세를 취하는 학생들: 빨간 머플러가 베트남은 공산국가라는 것을 생각나게 한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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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주인아저씨, 아줌마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다시 오토바이에 오른다. 얼마 가지 않아 길은 끊어지고 선착장이 나온다. 선착장에는 서너 척의 고깃배가 한가로이 정박해 있다.

선착장에는 제법 큰 식당이 있다. 한국 수산물 시장에서 흔히 하듯 생선, 꽃게, 조개 등이 큰 대야에 담겨 있다. 특히 내가 알기에는 세계적으로 잡는 것이 금지된 해마가 큰 대야에 가득 담겨 있는 광경이 눈길을 끈다.

우리는 1킬로그램에 만 원 정도 하는 꽃게를 주문하고 이국의 바다를 즐긴다. 꽃게를 먹은 후 맥주로 입가심을 하고 있는데 식당 바로 옆 선착장 입구에서 꽃게를 파는 것이 눈에 뜨인다.

꽃게를 담은 망을 끈에 묶어 선착장 난간에 매달아 놓았다가 줄을 끌어올리니 바닷물에 담겨 있던 꽃게가 가득 올라온다. 몇몇 베트남 사람이 흥정하며 돈을 내는데 우리가 식당에서 낸 가격의 반값도 안 된다.

 동네에 비해 깔끔하고 규모가 큰 선착장: 푸복섬은 어부의 마을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동네에 비해 깔끔하고 규모가 큰 선착장: 푸복섬은 어부의 마을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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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산물이 풍성한 푸콕섬: 살아있는 먹음직한 꽃게를 지역주민이 팔고 있다
 수산물이 풍성한 푸콕섬: 살아있는 먹음직한 꽃게를 지역주민이 팔고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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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로 배를 가득 채우고 맥주까지 마신 우리는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낯선 길을 나섰다. 음주 운전인 셈이다. 아직 베트남에서 음주 운전 단속을 보지 못했으니 경찰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뒤에 집사람이 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평소보다 신경을 쓰면서 오토바이를 운전한다. 얼마 가지 않아 또 다시 소나기가 내린다. 마침 돌로 거창하게 장식한 공원이 있기에 오토바이를 몰고 들어섰다.

새로 단장한 공원은 베트남 특유의 아름다운 꽃과 동상으로 꾸며 있다. 정성 들인 호수를 중심으로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동상은 손오공에 나오는 주인공들이다. 베트남에서도 손오공은 유명 인사임을 알 수 있다.

 폭포입구에 조성된 공원: 호숫가 주위에 핀 꽃들이 아름다웠다
 폭포입구에 조성된 공원: 호숫가 주위에 핀 꽃들이 아름다웠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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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니 오토바이 주차장이 있고 그 옆에서는 음료수, 기념품 등을 팔고 있다. 옆으로 난 산길을 올라가면 폭포가 있다고 한다. 푸콕섬에 폭포가 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이렇게 쉽게 찾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장님 문고리 잡았다'는 이야기를 생각하며 산길을 오른다. 경쾌하게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조금 전에 내린 비 때문에 더 진한 축축한 산 속 냄새를 몸으로 맡는다.

물에 발을 담그기도 하면서 올라가다 보니 요란하게 물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폭포가 나온다. 그리 높은 폭포는 아니지만 많은 양의 물이 시원하게 흐른다. 바지를 올릴 수 있는 데까지 올리고 물 속에 들어가 머리를 물에 담그며 시원한 물줄기를 즐긴다. 뒤에 따라온 서양 젊은이들은 폭포 위까지 바위를 타고 올라가 폭포를 즐긴다. 푸콕섬에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작지만 물이 풍성하게 흐르는 폭포: 서양에서 온 젊은이들은 폭포 위에까지 올라가 폭포를 즐기고 있다
 작지만 물이 풍성하게 흐르는 폭포: 서양에서 온 젊은이들은 폭포 위에까지 올라가 폭포를 즐기고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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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에서 내려와 또 다시 무작정 길을 따라 오토바이를 운전한다. 다시 비포장도로가 나온다. 제법 큰 산을 끼고 도는 비포장도로다. 또 다시 한 차례 엄청난 소나기가 퍼붓는다. 오늘 세 번째 맞는 소나기다. 넓게 뚫린 비포장도로는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바닷가에 조그만 마을이 나오나 싶더니 다시 가끔 집 한 두 채만 보이는 비포장의 연속이다. 기름이 떨어져 간다. 할 수 없이 섬 한 바퀴 돌자는 계획을 접고 오던 길로 다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에 과일 파는 작은 가게에 들렀다. 주인이 없다. 가게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데 어디서 우리를 보았는지 주인 아줌마가 멀리서 종종걸음으로 오고 있다. 사실 살 만한 과일이 없다. 엉성하게 나무로 만든 벽에 바나나가 걸려 있다. 바나나와 사과 두어 개를 샀다.

호텔에 돌아오니 아내는 오토바이를 너무 타서 궁둥이가 얼얼하다고 한다. 나도 궁둥이가 얼얼하기는 마찬가지다. 반바지를 입은 종아리는 흙투성이다. 황톳길을 달린 오토바이 또한 지저분하기는 마찬가지다. 주인에게 그냥 돌려주기가 미안하다. 오토바이 아저씨에게  지저분한 오토바이를 가리키며 500원 정도 돈을 더 주니 정말 고마워한다.

‘여행은 사서하는 고생‘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고생을 많이 한 여행은 기억에 오래 남는다. 오늘 하루는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4번 째 글입니다. 다음 5번째의 글을 마지막으로 푸콕섬 여행기를 마치겠습니다.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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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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