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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글을 쓰던 책상, 벽처럼 서있는 검게 변한 책들
▲ 책더미를 살피는 강기희 기자 글을 쓰던 책상, 벽처럼 서있는 검게 변한 책들
ⓒ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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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희 기자님, 집이 불탔다는 소식에 놀란 가슴이 진정이 되지 않는군요. 정선까지 먼 길은 아니지만 날이 밝기를 기다려 찾아갔습니다. 몇 번이나 갔던 길이지만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연로하신 어머님이 가장 큰 걱정이었습니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으셨다니 우선 안심이 되었습니다.

불탄 자리를 샅샅이 훓어보아도 종이상자 하나 채울 것 없이 모두 타버렸다.
 불탄 자리를 샅샅이 훓어보아도 종이상자 하나 채울 것 없이 모두 타버렸다.
ⓒ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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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 구불 국도를 따라 당신의 집으로 가는 길은 유난히 멀었습니다. 삽당령 정상에 서 있는 나무들은 얼음꽃을 피워 겨울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엄동설한에 집을 잃은 어머니의 상실감은 얼마나 크실까요.

국자 하나 숟가락 둘. 노모와 함께 했던 살림살이도 모두 쓸모없이 변해버렸다.
▲ 싱크대와 양푼 국자 하나 숟가락 둘. 노모와 함께 했던 살림살이도 모두 쓸모없이 변해버렸다.
ⓒ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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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장터에서 만난 강 기자님은 개먹이와 앞집 아이들에게 줄 과자를 한 상자 들고 서 있었습니다. 강 기자님의 표현대로 "집을 잃은 개에게 줄 밥, 앞집 아이에게는 과자를 주고 그 개를 잘 돌봐달라고 부탁하련다"라고 하셨지요. 갑작스러운 화마는 개먹이마저도 남겨두지 않았나 봅니다.

불탄 책더미 속에서 육필 원고 한묶음을 찾아냈다. 강기희 기자에게 남겨진 과거의 유일한 자산이다.
▲ 육필 원고 묶음 불탄 책더미 속에서 육필 원고 한묶음을 찾아냈다. 강기희 기자에게 남겨진 과거의 유일한 자산이다.
ⓒ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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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이 휩쓸고 간 자리는 참혹했습니다. 돌로 쌓아올린 하얀 벽만 남겨두고 모든 것이 검게 변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소설가 강기희를 만들어낸 책들이 검은 화석으로 변해 버린 것이 가장 안타까웠습니다. 그 책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화석이 되어 버렸나 봅니다.

강 기자가 소설과 기사를 쓰던 공간. 불에 타다만 책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 책더미 강 기자가 소설과 기사를 쓰던 공간. 불에 타다만 책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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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 찾아낼 만한 것은 없는지 한참을 둘러봤지만 가장 자리가 불에 탄 육필 원고 한 묶음,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사이버 세상을 휘젓고 정선의 자랑거리와 사람사는 세상의 이야기를 전하던 노트북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 흔적조차 찾지 못했습니다.

칠십 여섯 노모와 마주 앉아 숟가락을 들었을 밥상과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던 밥 그릇 하나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어쩝니까? 정선 장터에 마실 갈려고 어머님이 마련하신 산나물과 장아찌도 모두 타버렸으니.

오마이뉴스에서 받은 상패도 화마에 갈라져 그 모습이 흐릿하다.
▲ 찌그러진 오마이뉴스 2월 22일상패 오마이뉴스에서 받은 상패도 화마에 갈라져 그 모습이 흐릿하다.
ⓒ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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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에서 화마를 만난 어머님께 속옷과 겉옷 한 벌 사드렸다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저립니다. 허망한 마음을 달랠 길 없는 어머니는 장터에 나가 옆 사람의 산나물과 도라지 더덕을 빌려서는 좌판에 펼쳤다지요. 차마 그 모습은 뵙지 못할 것 같습니다. 뵐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지금은 황망한 정신에 그리하고 계시지만 며칠 지나 마음이 자리를 정하면 병이 나실지도 모릅니다. 젊은 사람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니까요.

삽당령 정상에는 밤사이 안개가 나뭇가지에 얼어붙어 꽃을 피운다. 강원도 정선의 겨울은 춥다.
▲ 얼음꽃 삽당령 정상에는 밤사이 안개가 나뭇가지에 얼어붙어 꽃을 피운다. 강원도 정선의 겨울은 춥다.
ⓒ 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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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기자님 이럴 때는 어떻게 위로의 말씀을 건네야할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해남의 김남주 시인의 생가에서 열린 해남문학축전에 다녀오느라 집을 비운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래서 앞집 할머니와 같이 주무신 덕에 연기 가득한 집에서 피신할 수 있었다고 위안을 삼아야 할까요.

강 기자님, 힘드시겠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읍시다. 혹시라도 정선을 떠난다거나 이런 생각은 하지말고 세상을 향해 일갈하던 그 기백을 잃지 마시길 바랍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정선문화연대, 동강살리기 운동본부 상임대표로 활동하던 그 모습 기억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집필하던 장편소설 <천도로 가는 길>을 빨리 보고 싶습니다.


태그:#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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