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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명나는 농담의 세계로~
신명나는 농담의 세계로~ ⓒ 신현정

작가 성석제를 좋아한다. 존경한다.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순수 전업 작가라는 점(순전히 '글빨'로 하루 세끼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그렇고,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책을 읽고 있다는 기분보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아서도 그렇고, 그의 책 한 권을 다 읽으면 바로 다음 책이 기대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시대 마지막 남은 진정한 이야기꾼! 뭐 그런 카피로 작가 성석제를 광고했던 책들이 있었다. 그때 그렇게 별 기대 없이 접한 그의 소설들은 하나하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화려하고 멋진 문체가 아니라 흡사 판소리나 탈춤공연을 보는 듯이 신명나는 이야기들 때문이었다.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의 결말을 기대하는 기대하는 기분으로 한 줄 한 줄 읽어 나갔으며, 고백하건데 회사에서 스트레스로 우울할 때 나를 위로해주던 것도 몰래 들춰보게 되는 그의 소설이었고, 지독한 변비로 고생할 때 화장실에서 나와 함께한 유일한 벗도 그의 소설이었다.

 

웃다가 지쳐 쓰러지게 할 요량인 듯 그의 글들은 재미가 있다. 끈적끈적 숭악하고 응큼한 글을 읽는 기분도 쏠쏠하다. 그래서 성석제의 <농담하는 카메라>라는 사진에세이 산문집을 알게 되었을 때, '농담'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성석제라는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지 감탄했었다.

 

이것은 농담이 아니다

 

"… 내 조작의 셔터는 농담이다. 아니 나라는 카메라 자체가 농담을 좋아한다. ‘농담 유전자’는 인류의 조상이 후손에게 물려준 생존에 불가결한 유전자이다. 농담 유전자는 개인에게는 건강을 선물하고 공동체의 활기를 높여준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원래 건강하고 수준 높은 삶을 살게 되어 있었다. 물론 이것은 농담이 아니다." - 작가의 말 중

 

스토리가 있으며 허기질 정도로 웃음을 주는 그의 여타 소설집과는 다르다. 그래서 처음엔 실망했다. '이 아저씨 돈 좀 벌더니 고상한(사진 찍기, 맛집 기행) 취미로 소일하시네' 하며 그의 책을 평가절하했다. 그런데, 이삿짐을 정리하며 귀중품 가방에 혹시 심심할까 챙겨 넣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니, 이쯤 되면 내가 얼마나 그의 글에 의지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블로그를 만들면서 알라딘 등의 인터넷서점 속 리뷰어들을 알게 되었고, 책의 리뷰를 쓰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아, 나는 성석제 소설을 전파하리라 다짐했다. 소설가의 문학적인 재능과 소설의 수준을 평할 능력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지만, 다만 나는 그의 소설들을 읽고 신명나는 탈춤마당 구경하는 듯한 그 기분, 못 느껴 본 사람들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다. 현실이라는 것이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걸 다 아는 나이기에, 그의 삐딱한 시선이 더 다정하게 느껴지고, 그의 글 속의 캐릭터들이 안쓰럽고, 우습고, 정겹다. 다만, 그의 산문집은 그의 전작들에 비하면 아주 약과다.

 

"김밥을 비닐봉지에서 꺼내 은박지를 벗겨서 몇 개를 먹는 사이 라면이 익었다. 라면을 앞으로 당기고 머리를 숙인 채 먹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평일에, 휴가철도 아닌 단풍철도 아닌 시기라 등산객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다시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훨씬 더 분명히 누군가의 시선이, 하나 둘이 아닌 단체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고개를 들자 내 손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김밥을 지켜보고 있는 수십 마리의 파리가 보였다. 파리들은 두 발을 마주 비비면서 김밥과 나 사이의 거리, 내 팔의 길이, 예상 반응 속도 따위를 열심히 계산하고 있는 듯했다. 계산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파리들은 계산능력을 갖춘 뇌가 머리 속에 들어 있고도 남을 정도로 컸다. 거의 엄지손가락 한 마디만한 크기였다.

……

나는 파리들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하면서, 공격의사가 없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두 팔을 어깨 높이로 들고 빈 손바닥을 앞으로 향한 채 그 자리를 천천히 빠져 나왔다.

……..

동행은 나보다 심한 공포에 시달렸는지 그때 들은 소리가 ‘저벅저벅’이라고 주장했다. 로마군단 같은 대부대가 동시에 발을 들었다 놓으면서 나는 소리라는 것이었다." - 파리이야기 중에서

 

블로그를 하면서 ‘사진기’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남이섬의 완벽한 풍경이 내 디지털카메라로 옮겨오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어찌나 화가 나던지. 아~ 이래서 다들 그 멋진 DSLR에 열을 올리는 구나 했다.

 

이 산문집? 사진에세이집? 속의 사진들이 멋있거나 훌륭한 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의 이전 글 속의 유머와 농담이 느껴질 정도로 촌스럽고 생생하다는 것은 알겠다. 작가 성석제가 그의 천재성을 발휘하여 편하게만 쓴 책인지는 확신할 수 없어도 편하게 읽을 수 있어서, 내 욕실 속 변비치료를 위한 선반에, 그의 소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위에다가 살포시 더해놨다.

 

"이 책을 읽는 분들이 농담이 활개 치는 스스로의 숲을 발견하기를, 또한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 보물을 찾으러 뒤란에 갈 때처럼 설렘을 가질 수 있기를.  – 작가의 말 중에서

 

리뷰를 쓰게 되면 누구보다 멋지게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십오륙년 만의 독후감 쓰는 부담감을 가지고 쓰게 되니 하고 싶은 말은 그저 한마디뿐이다. 성석제의 <농담하는 카메라> 한 번 읽어보시라니까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티스토리블로그와 알라딘ttb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성석제의 농담하는 카메라

성석제 지음, 문학동네(2008)


#성석제#농담하는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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