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에 온다 해놓고 안개바람 속에 휘말려 별빛 이름 부르며사라져간 그대여그래도 오겠지, 돌아오겠지손가락 꼽으며 꿈꾸듯 지난 세월가장 낮은 세상에 가장 낮은 사람 되어함께 가자던 그 숨결은 바다빛 그리움으로 멈춰서등대 서글픈 황량한 겨울바다이젠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할 저 너머 세상에서이미 바다가 된 그대는내 가슴에 언제까지남아 있을까 - 이적, '바다가 된 그대에게' 모두눈 저리도록 울긋불긋 곱게 물들던 단풍이 어느새 갈빛 낙엽이 되어 바람 한 점 없이도 툭툭 떨어져 뒹구는 11월 초순입니다. 저만치 바바리깃을 한껏 세운 채, 떨어지는 낙엽을 머리와 어깨에 맞으며 걸어가는 한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바다가 된 그대가 생각 나 눈가가 촉촉해지곤 합니다.
낙엽이 수북히 쌓인 서울 도심에 있는 작은 공원 어디선가 "가을날 / 비올롱의 / 서글픈 소리 / 하염없이 / 타는 마음 / 울려 주누나 // 종소리 / 가슴 막혀 / 창백한 얼굴 / 지나간 날 / 그리며 / 눈물 짓는다. // 쇠잔한 / 나의 신세 / 바람에 불려 / 이곳 저곳 / 휘날리는 / 낙엽이런가"라는 프랑스 시인 베를레느(1844~1896) '가을의 노래'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저는 바다가 된 그대가 누구인지 잘 모릅니다. 그저 이적 시인이 쓴 시를 읽으며, 사량도 앞바다가 된 그대가 이적 시인에게 날마다 보내주는 싱싱하고도 고소한 생선회를 맛나게 먹으며, 무작정 그대에게 생선회 편지를 보냅니다. 이 편지가 바다가 된 그대에게 닿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릅니다.
행여 이 편지가 그대에게 닿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대를 생각하는 이 마음만이라도 받아주소서. 행여 이 편지가 그대에게 닿는다면 끝까지 읽어주소서. 그대가 늦가을에 보내준 감칠맛 나는 생선회를 먹은 뒤부터 자꾸만 그 생선회가 그대처럼 여겨져 그 집을 자꾸만 그리워하는 제 마음이라 여기며.
늦가을, 서럽지도 않소? 생선회라도 한 점 먹으러 오시오"이 쓸쓸한 늦가을에 혼자 있으니 서럽지도 않소? 생선회라도 한 점 먹으러 오시오. 요즈음 생선회가 가장 고소하고 맛이 좋을 때요." "어디로 가야 돼요?""아, 지난 어머니 초상 끝내고 한번 왔지 않소? "그때는 상여버스를 타고 간 탓에…….""6호선 증산역에 내려 1번 출구로 나와 증산교를 건너 왼쪽으로 틀어 불광천변을 따라 100m쯤 올라오면 간판이 보일 거요."지난 10월 21일(화) 해질 무렵. 바다가 된 그대를 무척이나 그리워하고 있는 이적 시인에게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이 시인은 민통선 교회와 민족교회 목사를 하면서도 지난 7월 중순쯤 은평구 증산동 불광천변에 횟집까지 냈답니다. 그 수익금으로 교회에 나오는 가난한 아이들과 소년소녀 가장을 돕기 위해서라나 어쨌다나.
참 좋은 일이지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릴 때 시퍼렇게 살아 있는 막막한 바다가 너무나 싫었던 이 시인이 아마 바다가 된 그대가 너무나 그리워 횟집을 연 것 같기도 하답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탈출할 수 없는 바다, 바다뿐이었고 그 바다는 내겐 감옥의 담"이라고 말했던 이 시인도 이젠 지천명을 훌쩍 넘기다 보니 그 바다가 그리워진 게지요.
이 시인은 그날 '고향바다에 대한 추억'이란 글을 은근슬쩍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깨알처럼 촘촘촘 박힌 그 글을 돋보기 안경을 쓰고 읽었습니다. 행여 바다가 된 그대가 누구인지, 바다가 된 그대와 시인 사이에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는지, 왜 바다가 된 그대와 헤어지게 되었는지 등에 따른 이야기라도 있을까 해서요.
"나는 이 섬(사량도)으로부터의 탈출을 끊임없이 시도했다. 그것은 편지쓰기였다. 학생잡지에 등장하는 육지 아이들과 끊임없이 편지를 주고받았다. 나는 그 편지를 통하여 친구에 대한 갈증을 풀어 나갔다… 나는 차츰 내부적으로 소나기에 등장하는 백초시 댁 손녀딸과 같은 소녀를 기다리는 소년으로 변해 갔다. 저 선창가 끝에서 혹은 자갈이 파도에 휩쓸리고 다니는 해변가에 앉아 육지를 향하여 망연자실 앉아 육지로 떠난 여객선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혹시 그 여객선으로 백초시댁 손녀딸이 돌아올까 파도의 포말이 하얗게 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내 그리움은 그렇게 무르익어 갔다. 그리고 가슴 한 켠에 알 수 없는 섬 소년의 눈물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생선회 하면 늦가을 남해안에서 갓 건져 올린 생선이 으뜸 "이 생선회는 내 고향 사량도에서 고기잡이를 하고 있는 내 친척들이 낚시나 그물로 직접 건져 올려 서울로 보내는 것이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먹는 그런 생선회보다 훨씬 쫄깃쫄깃하고 고소할 거요……. 다른 집에 가서 생선회를 시키면 이것저것 잔뜩 갖다 주는데, 그런 걸 먹다 보면 생선회의 참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되지요."이 시인이 꾸리고 있는 그 생선횟집의 한 가지 특별한 점은 다른 생선횟집과는 달리 밑반찬이 거의 나오지 않았습니다. 밑반찬이라고 해봐야 상추와 집에서 담근 된장, 집간장에 푼 연초록빛 고추냉이, 풋고추, 초고추장, 송송 썬 마늘뿐이었습니다. 또 다른 점은 생선회 아래 미나리와 대파, 무채, 당근을 깔아놓았더군요.
그날, 바다가 된 그대가 보낸 전어, 놀래미, 꼬시락, 숭어회는 정말 고소하면서도 쫄깃한 감칠맛이 그만이었습니다. 특히 생선회가 흐물흐물 물컹거리지 않고 탱탱하게 쫄깃쫄깃 씹히는 그 느낌과 그 향과 맛이 참 좋았습니다. 마치 생선회 속에 짙푸른 사량도 앞바다가 된 그대가 '어서 와, 어서 와' 손짓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소주 한 잔 홀짝거리며 가끔 찍어먹는 붉으죽죽한 삶은 문어도 쫀득쫀득 씹히는 구수한 깊은 맛이 정말 기막혔습니다. 갓 삶아내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싱싱한 문어를 손님이 직접 부엌칼로 도마에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그 맛! 그 살가운 맛을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늦가을 밤, 살살 녹아내리는 생선회 먹으며 듣는 시 한 편이 시인은 말하더군요. "생선회 하면 늦가을 남해안에서 갓 건져 올린 생선이 최고"라고. 그날, 이 시인은 주방에서 생선회를 직접 썰고 배달까지 했습니다. 주방에 종업원이 한 명 있긴 있는데, 그날따라 몸이 아파 나오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바다가 된 그대가 이 시인 곁에 있었다면 참 좋을 뻔 했습니다.
저는 바다가 된 그대가 보내온 생선회와 이 시인이 가만가만 들려주는 바다 이야기에 포옥 빠져 자정이 지나도록 소주를 2병이나 비우며 말했습니다. 저도 사량도에 가 본 적이 꼭 두 번 있다고. 한 번은 까까머리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철모르고 갔었고, 또 한 번은 2년 앞, 가족들과 함께 여름휴가를 갔었다고.
저는 다시 소주 한 잔 홀짝 마신 뒤 싱싱한 전어회 한 점을 초장에 찍어 먹었습니다. 새콤달콤 고소하게 씹히는 늦가을 전어회는 입 속에서 살살 녹아내렸습니다. 그때 이 시인이 마치 오래 묵은 추억을 길어 올리듯이 나지막하게 시를 읊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바다가 된 그대에게 보내는 생선회 편지를 마무리하듯이 그렇게.
그 해 삼천포 앞바다떠나도 아무도 잡지 않았다갈 곳도 없으면서 부두 찬바람잰걸음으로 맞으며경복호 싼 판에 발을 내디딘 늦가을 아침소녀는 마중 나와 몇 번 만나다 제 갈 길로 떠나고한 발짝도 더 뗄 수 없는배고픔보다 더 캄캄했던그 해 가을 삼천포 앞바다엔암담한 어둠만이노을 바람에 선연했다돌아가자 해도 돌아갈 곳도 없고삼천포 시외버스 정류장이 덩그랗게 서있는벌리 너머 더 이상은 넘어 설 땅이 없어노산 등대에 퍼질러 앉아한없이 바라보던 설움의 쪽빛 바다어둠이 깃들면 바닷새도어디론가 찾아드는데밤바람 드세 지친다리 끌다망연자실 서있던고대구리 도깨비 시장도 서 있을 곳은 아니었다은회색 불빛을 머금던 수은등이가을 찌르라미 울음에 잦아들고유신의 방아쇠가 70년대 마지막 가을에함성되어 울려 퍼질 때도삼천포 쪽빛 앞바다에서한 발짝도 떠나지 못하고성모님을 믿는 소녀만 기다렸다소녀가 기다리다 떠난삼천포 쪽빛 앞바다떠나도 아무도 잡아줄 사람 없던그 쪽빛 바다엔 아직도망부가를 부르는 듯한암담한 그 해 가을의슬픔이 진하게 베어있다- 이적, '귀어도' 모두
이 시인의 시를 들으며 그제서야 저는 바다가 된 그대가 누구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이 시인의 시를 새기며 저는 바다가 된 그대가 매일매일 보내는 사량도 싱싱한 생선회가 그저 맛난 먹을거리만이 아니라 뭍을 향한 섬사람들의 오랜 꿈과 슬픔이 담겨 있다는 것을 희미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바다가 된 그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