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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길에 들어서 항상 감탄사를 연발하곤 한다.

 

'오대산이 따로 없군'

 

여기서 오대산이라고 함은 오대산 정상인 비로봉을 오르는 길이 아닌 비포장 도로, 즉 임도를 말한다. 강원도의 대표적 육산이랄수 있는 오대산은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아름드리 숲을 이뤄, 숲의 표정이 매우 풍부하다. 그 산에 가을이 오면 단풍 빛깔 또한 매우 다양해서 독특한 아름다움을 주는데 우리가 찾은 산간도로 역시 오대산의 임도를 닮아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빚어내는 색깔의 다양함에 놀라게 되는 것이다.

 

수도권에서 매우 가깝고 잘 알려진 산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천마산에 숨은 단풍길인 셈이다. 늘상 사람들로 붐비는 정상능선을 두고 단풍철이면 일부러 찾아가는 산간도로다. 추위가 갑작스럽게 몰려온 10월의 마지막 일요일(26일)이었다.

 

갑작스러운 추위 탓이었나, 아니면 지독했다는 올해의 가뭄 탓이었나, 그도 아니면 지구온난화의 영향이 예까지 미친 것인가. 아마도 그 모든 이유 였을 것이다.  단풍 빛깔이 예년에 비해 그닥 곱지 않았다.

 

단풍의 남하 속도를 따라 강원도의 단풍이 한차례 지나고 나면 경기 동북부에 해당하는 이곳도 단풍이 한창 불타오르곤 했다. 지난해엔 진짜 단풍이 고왔더랬다. 오대산의 풍부한 빛깔의 단풍에 비견하며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마다 마주한 산간도로의 단풍으로 몇 번이나 탄성을 올렸던가.

 

가뭄과 지구온난화의 지속화와, 이상기후 현상이 여느해보다 기승을 부린 해였으나, 그래도 임도에서 마주한 단풍이 나름 고왔다.

 

산간도로 오른쪽 벼랑길에 단풍나무가 몇 그루 섞어 들어서 붉은 방점을 찍긴 했지만 이 길에서 만나는 단풍은 대체로 갈색과 노란색이 주종이다. 참나무과의 나무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탓이다. 입구에 들어서 본 산 아래쪽은 아직 푸른 잎들이 대세다. 연두빛이 섞인 푸른 잎들을 지나쳐 산모퉁이를 몇 번 돌자 노란잎들이 숲을 메워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초입은 아직 단풍숲이라고 하기엔 침엽수림 군락이 넓다. 낙엽송이 군락을 이룬 사이사이로 아름드리 소나무가 섞여 있고, 이곳 산들의 특징이랄 수 있는 잣나무가 넓은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일본잎깔나무라고도 하는 낙엽송은 가을이면 노랗게 물들어 나뭇잎을 떨어뜨리고 겨울을 난다.이 나무의  생김은 침엽수나 그 생리는 낙엽활엽수에 속하는 나무이니, 가을되어 노랗게 단풍이 든다고 이상하게 여길 리 없다. 들여다보면 우리가 상록수라고 알고 있는 소나무와 잣나무도 가을이면 단풍이 드는걸 알수 있다.  굳이 단풍이라고 하기엔 전체에 비해 개체수가 미미할 정도긴 하다. 그러나 분명 특유의 가늘고 뾰족한 가시잎이 노랗게 물들어 있는게 보인다. 군더더기를 떨치고 겨울을 나고자 하는 나무 나름대로의 지혜일 것이다.그 바늘잎 들이 바람이 불때마다 흩날렸다. 노란비가 하늘에서 내리는 듯하여 넋을 놓고 그 장관을 바라보았다. 

 

산모퉁이를 돌아간다. 이 길을 가노라면 반복적이고 연속적인 일이다. 어찌보면 풍경 또한 고만 고만 하여 섬세한 눈으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풍경의 연속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마다 조금씩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음을 보게 된다.  산모퉁이를 하나 돌아갈 때마다 다음 모퉁이가 궁금해지는 까닭이다.

 

갈색과 노란색이 절묘하게 배합된 참나무 나뭇잎이 단연 돋보이는 길이 있어 감탄사를 자아내는가 하면 가뭄의 피해를 온 몸으로 대변하며 채 단풍이 들기도 전에 말라비틀어진 나무들이 있어 안타까움을 일으키기도 하고 맛있는 다래는 넝쿨만 무성한데 맛 없어 그냥 버려둔 개다래가 대롱이는 길을 만나기도 한다.

 

산모퉁이를 몇 개 돌았을까, 목이 마르다 싶을 즈음해서 샘을 만나기도 한다.  물맛도 좋지만 너무 차지도 너무 따뜻하지도 않게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는 게 참으로 신기하다.

오가는 이들을 만나면 서로 인사를 나누게 되는 길이다. 이 고적한 길에서 만나는 사람은 인사를 하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언젠가 보았던 것 같은 사람들 같아 정답기까지 하다.  어떤 이는 지난여름에 보았던 이다.  티셔츠 까지 벗어젖히고 산악자전거를 타던 팀이어서 기억이 났다. 약수터 옆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먼저 인사를 건네온다. 그들 역시 우리를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이 길은 조금씩 고도를 높여가는 길이긴 하지만 대체로 완만하다. 산의 남동쪽으로 길게 걸쳐져 있는 길은 약 7,8km에 해당하는 결코 짧지 않은 길이다. 서너 시간 걸려서 산간도로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못 가볼 것 도 없지만, 오늘 산행은 산간도로를 따라가며 단풍을 구경하는 길이니 중간지점에서 위쪽으로 길을 바꿔 탄다.

 

산간도로의 상하 좌우를 노란색 단풍들이 주종을 이루었다면 정상능선을 향해가는 이 길은 단풍나무의  붉은 단풍으로 화사한 길이다.  이 산에서 드물게 아름다운 단풍나무숲이 능선 아랫쪽 사면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시기를 잘못 맞췄는지 벌써 떨어진 나뭇잎이 태반이다. 지난해에 보았던 그 아름답던 붉은 단풍잎에 비해 올해는 다소 색감이 떨어지지만 몇 그루는 올해도 특유의 선홍색 단풍잎으로 눈이 부실만큼 곱다.

 

산길을 덮은 단풍나무 낙엽으로 마치 붉은색 융단을 거니는 느낌도 나쁘지 않다.  가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발아래 밟히는 낙엽이 사그락 거린다.  기후조건이 아주 나빴지만 저 나름대로 숲은 가을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떨어진 낙엽은 다음해를 준비하는 자양분이 되어 줄 것이다. 갑자기 추워졌다고 호들갑을 떨게 아닌 것이다.

 

완만한 산간도로를 오래 걸었던 탓인가, 비탈지고 뾰족한 능선으로 이어진 정상능선을 걷는 일이 힘에 겨웁다. 산은 항상 쉬운 법이 없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으리란 걸 알지만 우린 항상 오르막의 힘겨움 앞에서 내리막에 대한 희망을 잊곤 한다.

 

오르다 보니 어느새 우뚝 솟은 정상이다. 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서 서서보니 내가 올라 온 길이 까마득하고 실날같이 가늘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했던가, 산봉우리에 올라 숲을 보니 가을의 절정이듯, 갈빛으로 물든 산 전체가 둥실 떠오를 듯 부풀어 있다. 갈색 융단을 깔아놓은 듯 단풍이 든 산능선들 진짜, 오대산이 따로 없다.

 


#산간도로#단풍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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