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YTN 노동조합은 매일 아침 8시 '구본홍씨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다. 토요일(25일)로 100일째다. 투쟁이 길어지고 있고 기온마저 뚝 떨어졌다. 그러나 집회 분위기는 늘 밝고 활기차다. 여기저기서 박장대소가 터진다. 당연히 집회 집중도가 높아진다. 

 

이런 분위기 조성에는 사회자가 큰 역할을 한다. 능수능란한 달변은 아니면서도 구수한 입담으로 때맞춰 조합원들의 웃음을 유도한다. 그리고 자신도 조합원들과 함께 웃는다. 때론 "알았다고~"라며 버럭 호통을 치고, 때론 "죄송합니다~"라고 읍소한다. 그때마다 조합원들의 웃음이 터진다. 사회자에게 지목당한 조합원은 자유발언을 위해 앞으로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구호 후반부 문구를 까먹고는 종이를 힐끔힐끔 쳐다보기도 하고 가끔 구호가 꼬이기도 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너와 내가 힘을 합쳐 '구본홍을' 지켜내자."

"낙하산 사장 몰아내고 '구본홍을' 지켜내자."

 

YTN의 '분위기 메이커', YTN 노조 '공식사회자' 박진수 영상취재팀 기자다.

 

사내 수상 경력 11회 빛나지만 '3개월 정직'

 

YTN 노조의 아침 집회는 노종면 위원장의 '결기'와 박진수 기자의 '재치'가 잘 조화를 이루는 자리다. 박 기자는 집회 전 일찍 나와 조합원들과 함께 김밥과 물을 나르고, 음향기기를 설치하는 것도 도맡고 있다.

 

노조 쟁의부장을 맡는 박 기자 역시 '대학살'이라고 불리는 지난 10월 6일 징계 대상자 명단에 들어있었다. 사내 수상 경력이 11회에 이를 정도의 실력파 카메라 기자였던 그는 3개월 정직의 징계를 받았다. 피고발자로 남대문 경찰서에서 조사도 받고 왔다.

 

그래도 그는 늘 웃고, 웃긴다. 박 기자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즐기면서 가야 질기게 갈 수 있다"며 "구본홍씨는 조직을 경영할 자질도 자격도 없다"고 말했다.

 

- 벌써 100일이다. 아침 집회 사회를 거의 도맡아 왔는데 느낌이 어떤가?

"우리가 큰 싸움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가치를 실현하는 기간이었다. 양심을 지키는 기간이었다. 우리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를 하고 있다."

 

- 구본홍씨가 사장으로 선임된 이후 어떤 생각이 들었나?

"'구씨의 선임이 과연 YTN에 좋을까' 이 생각 많이 했다. 일주일간 고민했다. 두 아이 아빠인데, 가족도 중요하다. 하지만 YTN을 나와 분리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일주일동안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도 늘 답은 같았다. 그리고 구씨에 대해서 알고, 경험해보니 더욱 내 생각이 확고해졌다. 구씨는 '조직 경영'에 대한 생각이 없다. 자격도 자질도 없다."

 

- 매일 아침 집회에서 조합원들에게 웃음을 주려고  많이 노력하는 것 같던데?

"즐겁게 해야 질기게 오래 한다. 예전에는 노조위원장이 직접 사회도 보고 진행도 했는데 어느날 노종면 위원장이 사회를 맡기더라. '우리 방식대로 즐겁게 하자, 즐겁게 하면서도 울분 표출할 수 있다, 처절하게 다치더라도 웃으면서 하자'는 생각으로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가끔 구호가 꼬여나올 때가 있는데 정말 꼬인다고 하기 보다는 내가 의식적으로 꼰 적도 많다(웃음). 조합원들이 웃을 수 있다면 내가 희화화되어도 좋다."

 

박 기자에게 "무려 100일간 이렇게 밀고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디에 있나"라고 물었다. 그는 "과거 경험을 통해 다져진 동료애"라고 말했다

 

"내가 입사할 무렵, 회사 점퍼에 'YTN 24'라는 마크가 찍혔었는데, 그 때만 해도 사람들이 'YTN이 어디 편의점이에요?'라고 묻곤 했다. 그런 회사를 우리 사원들이 이만큼 키워놓았다. 기자·앵커·기술·영상·지방 조합원 할 것 없이 똘똘 뭉쳐서 여기까지 왔다. YTN, 작은 조직이다. IMF 때 6개월 동안 월급 못 받으며 일했다. 가난했던 집 사람들이 서로 지켜줘야 겠다는 생각하게 마련이다. 회사가 아무리 어려워도 조합원 누구 하나 경영진 책임 묻지 않았다. 가난해 봤고, 어려워 봤기 때문에 우리 조합원들 사이에 나름의 끈끈한 동료애가 있다. 회사를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던 사람들이 해고당하고 정직당하는 상황을 우리는 아무도 그냥 지켜볼 수 없다."

 

- 힘들거나 지치지는 않나?

"도망가고 싶은 적이 있었다. (이 상황이) 싫은 적도 있었고…. 그 때마다 나를 붙잡은 것은, 내 힘은 그리 크지 않아도 저들과 합쳐지면 커진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원래 눈물이 많은 사람인데 조합원들 앞에서는 안 보이려 했다…."

 

그는 이 대목에서 잠시 말을 멎었다. 눈시울도 빨개졌다.

 

"나도 정직 3개월을 받았지만 징계 내용 보니 6명 해고자 명단에 내 가장 친한 친구 권석재(현 노조 사무국장)도 들어있었다. 너무 당혹스러웠다. '내가 이 친구 지켜야 하는데, 나도 못 지켜주는 건가…' 하는 좌절감과 자괴감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항상 웃고 싶지만 눈물 흘릴 때도 많다. 징계 내려진 후, 아는 친구가 내 소식을 듣고 전화해 펑펑 울 때는 정말 속상하고 억울해 나도 함께 울었다."

 

- 부팀장 선배들이나 실국장들에게 서운한 점이 많을 것 같은데?

"어려운 상황 겪으니 사람을 알게 되더라. 선배는 맞다. 그 분들에게 배웠기 때문에. 세상 사는 방식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이해가 안 가는 점이 너무 많다. 후배들 33명을 대량 징계한 선배들이 과연 YTN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정말 실망스럽다."

 

- 100일 가운데 기억에 남는 장면은 뭔가?

"우리 후배들이 단식 들어갈 때…. 그 때 후배들이 만들었던 피켓을 보니 파란색이었다. 상큼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게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집회 사회를 보며 조합원 개인들의 얼굴을 마주보는 일이 많을 텐데 조합원들에게 한 마디 남긴다면?

"'사랑한다'는 말 참 좋아한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싸움이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은 싸움이다. 조합원 선후배 여러분 너무 사랑하고, 너무 감사하다. 특히 자유 발언 시키면, 어려울텐데 나와서 좋은 말 해주는 조합원들 특히 고맙다. 앞으로도 자유 발언 때 말 많이 해 달라. 그게 회사 지키는 길, 공정방송할 수 있는 길이다(웃음)."

 

- 싸움이 끝나면 무슨 일을 가장 먼저 하고 싶은가?

"내가 원래 머리가 짧았다. 그런데 이렇게 길었다. 구본홍씨 몰아내기 전까지 안 깎겠다고 다짐했는데 벌써 이렇게나 길었다. 빨리 자르고 싶다."

 

박 기자는 끝으로 'YTN의 내일'에 대해 이렇게 전망했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YTN은 더 좋아질 것이다. 이 상황 경험한 우선 우리 기자들 자기 일 헛되이 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또 다른 YTN이 생긴다면 우리 조합원들이, 이 자리에서 100일 넘게 공정방송 사수를 외쳤던 사람들이 방관자 입장에서만 보도할 수 있을까. '더 좋아지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YTN 사원들의 저력은 더 좋은 보도로 결실 맺을 것임을 믿는다."


태그:#YTN, #박진수, #노종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