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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는 떡 비라”고 했던가요? 오늘 아침 기운이 한층 차지긴 했지만, 오랜 가물을 씻겨 준 가을비 덕택에 바빠진 농부들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도시라고 하지만, 한 편에선 농사를 짓는 어르신들을 종종 볼 수 있는 도농 지역 변두리에 위치한 아파트 앞 텃밭에선 야채 솎는 작업을 하셨는지 한 소쿠리 가득 푸성귀를 담고 계신 분들도 계셨고, 이미 밑둥이 굵어진 무를 뽑는 어르신들도 쉬이 볼 수 있었습니다.

 

아파트를 나서자, 이미 수확하여 벼 벤 흔적만 휑하니 남은 논에선 벌써 이삭줍기마저 끝났는지, 깔끔하게 정돈되어 볏짚조차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잎이 듬성듬성 붙어 있던 까치집을 이고 있는 나무는 마지막 잎새마저 홀가분하게 떨쳐내고 '나 까치집 이고 있네'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까치집 나무 이름을 모르겠다. 까치집을 세 개나 이고 있으니 까치나무라고 할까? 3층까치나무.ㅋㅋ
까치집나무 이름을 모르겠다. 까치집을 세 개나 이고 있으니 까치나무라고 할까? 3층까치나무.ㅋㅋ ⓒ 고기복

그래도 아직 수확이 안 끝난 또 다른 논에선 향긋하게 벼 익은 냄새가 코를 간질이며, 부지깽이도 춤추게 할 가을비에 고개를 숙인 모습이 출근하던 촌놈에게 마음만은 고향으로 달려가게 만듭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고향의 어머님은 고구마도 다 캐고, 콩도 다 꺾으셨을 겁니다. 그리고 집 앞 올레엔 엉성한 돌담을 안고 올라가던 담쟁이가 발갛게 물든 단풍 기운이 다하여 농부의 굵은 핏줄 같은 덩굴만 남긴 채, 빨판처럼 현무암에 박혀 무성했던 여름이 있었음을 떠올리게 할 것입니다.

 

낙엽이 다 떨어진 담쟁이 덩굴 참 빨리도 떨어졌다.
낙엽이 다 떨어진 담쟁이 덩굴참 빨리도 떨어졌다. ⓒ 고기복

말라비틀어진 담쟁이덩굴 뒤론, 대나무로 공기총을 만들어 놀던 개구쟁이들 등쌀에, 유리구슬 반 토막 크기에 포도알 마냥 검게 익은 열매가 남아나지 않던 홍악이 여전한 푸르름을 자랑하며, 한 겨울을 날 채비를 하고 있을 테고요.

 

가을비가 오고 나니, 이래저래 고향 생각이 절로 나네요. 고향 떠난 지 벌써 이십여 년에 나이 드신 어머님 대신 호미 들고 밭에 가지 못하는 마음이 무겁기만 하고, '찬바람이 더 잦아들기 전에 고향에 한 번 내려가 봐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번뜻 듭니다.

 

만추

                                                         -고기복

 

새벽

가을을 품고 내린

안개는

가뭄에 먼지만 날리던

패인 곳이 낯설지 않은 신작로에

가을걷이하듯

낙엽을 안고 꽃으로 내린다

 

패인 길

발끝에 채어 꽃마냥 피어오르던 먼지

새벽이슬에

초롱한 꽃으로 신발등에 내리면

그 억센 땅에도 꽃 피웠던

콩꽃마냥

물기 머금은 흙꽃은

지난여름 흔적을 덮는다

가을걷이하듯

 

몇 번인가

가로등 불빛이 꺼지고 켜지면

이제

가을 흔적마저 사라진

이 땅에 눈꽃 내리고

고향 떠난 지 얼마인가 묻는

물기없는 나그네 마음에도 꽃은 피려나

 

가을이 걷히고.....

 


#수확#가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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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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