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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된다니요? 여기에서 세 시간이나 기다렸는데!"

 

이미 어둑해진 길 위에서 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숙소에서 곤히 자던 J를 뒤로하고 혼자 나온 길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인터넷을 하기 위해서다. 한국과 쿠바에서 메일을 받아 다시 답장하기로 한 상태였다. 그런데 일이 뒤틀려 버린 것이다.

 

쿠바의 인터넷은 에텍사(Etecsa)라는 정보통신회사를 통해 이용할 수 있다. 혹은 큰 도시에는 드물게 인터넷카페가 있기도 하다. 외국 여행자들은 주로 이 곳을 통해 일을 보곤 한다. 하지만 두 가지 난점이 있다. 먼저 속도가 느릴뿐더러 가격 또한 비싸다는 점이다. 싼 곳도 시간당 6불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 그리고 에텍사에서는 카드를 먼저 구입한 뒤 일련번호를 찍은 다음 인터넷을 사용할 수가 있다. 선불제다. 만에 하나 문제가 생겼을 경우 보상받지 못한다.

 

또 다른 점은 한글 사용이 전면적으로 막혀 있다는 것이다. 야후나 구글 같은 영어 사이트 접속은 가능하지만 한글 사이트는 프로그램 설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이트에 접근했을 경우 글씨가 깨져 나온다.

 

문제는 프로그램을 깔아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 말로는 첫째, 고장 날 위험이 있으며, 둘째, 나라에서 감시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프로그램 설치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 좌절하게 만든 것은 그 문제를 피할 수 있는 개인 노트북 역시 위와 같은 이유로 연결을 허용할 수 없단다. 근거가 희박한 핑계라고 생각했지만 거쳐 온 도시 대부분에서 같은 이유로 거절했으니 거짓말은 아닌듯하다. 웃돈을 주겠다고 해도 냉연히 거절하는 것에 더 이상 부탁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물어물어 인터넷을 할 수 있는 곳을 끝내 찾아냈다. 운이 좋았는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마침 자신의 친구가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으니 거기로 가면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연신 고맙다며 그 친구 집까지 안내해 준 남자를 따라갔다. 하지만 남자의 집은 굳게 닫혀 있었다. 외출을 한 모양이었다.

 

"친구가 잠깐 어디 나간 것 같아요. 아마 저녁 때 쯤에 들어올 것 같은데."

"괜찮아요. 그런데 인터넷은 확실하게 되는 거죠?"

"물론이죠. 이 친구 집에 컴퓨터가 있는데 필요한 사람들이 가끔 이용하거든요."

 

듣기만 해도 신기했다. 쿠바 가정집에 인터넷이라…. 없으란 법은 없겠지만 아직 그런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사회주의인 나라에서 정보차단으로 인해 인터넷이 개인 집으로는 연결이 허용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었다. 아무튼 집까지 바래다 준 남자를 보내고 난 집 앞에서 집주인을 기다렸다.

 

10분, 20분은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며, 30분이 지나자 여기저기 건물들을 구경하며 집 주위를 서성거렸다. 기다리는 동안 내 모습을 보고는 맞은 편 집 아주머니가 주스를 한 잔 따라준다. 땅거미가 내리자 거리의 불빛들이 하나 둘 불을 켜기 시작했다. 거리의 사람들의 행렬도 집으로 향하는 막바지 시간인 듯 조금 붐빈다 싶다가 이내 다시 조용해졌다. 그 자리에 멈춰있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다.

 

점점 지루해져 갔다. 집주인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료한 나는 산 라몬(San Ramón) 거리를 중심으로 배회하기 시작했다. 골목에서는 아이들이 다 떨어진 가죽공으로 공놀이를 하고 있었고, 청년들은 돌을 공으로, 각목을 방망이 삼아 야구를 하고 있었다. 어른들은 한적하게 모여 앉아 얘기를 주고받거나 도미노 게임을 즐기고 있었고, 별로 달갑지 않은 연인들은 으슥한 곳에서 그림자보다 더 가깝게 밀착해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동네를 한 바퀴 도니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갔다. 그런데 까마구에이의 골목이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하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려는데 도무지 돌아갈 길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온통 낯선 풍경뿐이었다. 약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뱅뱅 헤매고 있었다. 답답한 가슴을 쥐어박으며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우왕좌왕 갈팡질팡 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바둑판 모양이 아닌 불규칙적으로 얽힌 도로 시내의 골목길에서 도로 이름만으로 집을 찾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더구나 야맹증이 있어 밤에 길 찾는 것에 대해 상당히 취약한 나는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봐도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길이 떠오르지 않았다. 막연히 동서남북으로 한 바퀴 돌면 끝이라고 생각했던 도시의 도로 구조는 이런 나를 시험하는 듯 엄한 곳으로 떠민 것이다.

 

할 수 없이 도로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우여곡절 끝에 광장으로 다시 나왔다. 들어간 길과 나온 길이 정 딴판인 것만 해도 얼마나 헤맸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원점에서부터 다시 찾아가기로 했다. 다행히 두 바퀴를 더 돌고서야 소 뒷걸음치다 쥐 잡 듯 우연히 그 집을 다시 찾게 되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인이 왔는지 노크를 해 보았지만 여전히 안에서는 침묵이었다. 벌써 두 시간이나 흐른 뒤였다.

 

더운 날씨에 잃어버린 길 찾느라 긴장까지 해 온 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고, 이에 자극받은 모기들이 내 주위에 몰려들면서 더욱 힘든 기다림의 시간이 되었다. 이제는 끝내 인터넷을 하고야 말겠다는 생각에 메일체크 뿐만 아니라 기왕지사 이리 된 거 값은 상관하지 않고 야구 사이트도 둘러봐야겠다는 오기가 발동했다. 그 힘으로 또 한 시간을 더 기다렸다.

 

돌아올 사람은 결국 돌아오게 되어 있는 법. 저녁 8시, 드디어 주인이 돌아오자 난 먼 곳에서 온 친구가 온 것처럼 반갑게 뛰어나가 인사하고 영접했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인터넷? 우리 집에 그런 거 없는데?"

"아저씨, 친구 분이 여기에서 인터넷을 할 수 있다고, 사람들이 가끔 이용한다고 분명히 제게 말해 주고 갔는걸요."

 

뜻밖의 상황에 난 당황했다. 인터넷이 없다니.

 

"아! 그거?"

"네, 맞아요! 인터넷!"

 

드디어 알았다는 듯 반응이 격렬해졌다. 나는 오해가 풀린 것이리라 생각하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게 인터넷이 아니라…."

"네?"

"인트라넷이야. 쿠바 내에서만 쓸 수 있는. 그러니까 사람들이 가끔 우리 집에 와서 이용하지."

"분명 인터넷이라고 들었는데요, 인트라넷이라니요? 그럼 인터넷 검색 못하나요?"

"물론이지. 인터넷은 무슨…. 그런 거 하려면 에텍사로 가야지."

 

털썩, 상황은 끝났다. 그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고 난 더 이상 들어갈 필요가 없어졌다. 아, 인트라넷이라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군대에서나 쓰던 인트라넷이 쿠바에 있었는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마도 처음 소개해 준 남자가 인트라넷과 인터넷을 같은 것으로 생각했었던 것 같았다.

 

숙소로 되돌아가는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기다렸던 시간도 잊은 채 인트라넷 그 한 마디가 가져다 준 반전에 허허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 하러 나가자는 말에 자신은 피곤하니 그냥 잠이나 자면서 쉬겠다는 J의 판단이 탁월한 순간이었다. 내심 부러웠다. 그렇게 다시 시내 중심가인 뜨라바하도레스(Trabajadores) 광장으로 나왔다. 어두컴컴한 거리에 패배감에 물들어 어깨가 축 쳐진 내 옆으로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다정하게 걸어가는 연인의 모습에 더욱 더 좌절하고 말았다.

 

그 때 어디선가 흥겨운 리듬이 들려왔다. 생생하게 들리는 라이브 연주였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레스토랑 외에는 불 켜진 곳이 드물었는데 그곳은 이미 공연이 끝난 뒤였다. 소리는 시청 건물 안쪽에서 들려왔다. 피곤했지만 본능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두 세 명의 경찰이 입구에 있었지만 먼저 인사를 건네니 별다른 제지는 하지 않았다.

 

마침 건물 안에서 몇 명의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고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의자는 있었지만 관객은 없었다. 자신들끼리 무대공연 연습을 하는 듯했다. 그런데 이전에 접했던 살사와는 그 느낌이 달랐다. 나는 연습 중인 그들에게 눈웃음을 건네고 자리에 앉았다. 가락이 빠진 타악기 소리에도 이들의 춤사위는 너무나 리드미컬했다.

 

두 명 씩 짝을 지어 추는 춤은 마치 중세 유럽의 무도회장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였다. 처음에는 수줍게 데이트하듯 서로의 몸에 살짝 기댄 채 부드럽게 몸을 흔들다 갑자기 리듬이 강하게 들어가면 그 땐 파트너와 함께 격렬히 몸을 흔들고 무대 전체를 안방처럼 자유자재로 활용하면서 강렬한 곡선미를 드러내는 것이 너무 멋져 보였다. 마치 라틴식 포크댄스를 보는 듯 했다. 탱고일까? 하지만 음악의 절정 순간에는 자유로운 영혼의 본능적인 움직임처럼 너무나 황홀한 표정으로 몸을 흔들며 마치 종교의식과도 같은 몸의 떨림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룸바에요. 아프리카에서 건너 온 음악입니다."

 

춤이 끝나자 궁금해진 나의 질문에 그들이 가쁜 숨을 잠시 고르고는 대답해 주었다. 룸바라…. 지난 번 흥겨운 살사 현장에서도 엉덩이는 들썩들썩 마음은 요동치고 있었지만 목석처럼 서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번엔 아예 감히 따라할 수조차 엄두가 나지 않는 새로운 춤의 영역이었다.

 

16세기 초부터 스페인 정복자들이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를 수입했는데 19세기까지 그 수는 1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들은 그 후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시민이 되었는데 그들에게는 고유한 음악이 있었다. 아프리카 음악색이 짙은 쿠바의 전통 음악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룸바다. 드럼 소리만 나도 신나게 춤을 춘다는 음악. 쿠바 흑인들이 즐기는 길거리 댄스 음악으로 알려져 있는 이 음악은 '아프로-쿠반'이라는 문화를 탄생시킨 그들이 즐기는 음악이다. 모태가 아프리카인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자유로운 영혼의 움직임이 보였던 것이다.

 

텅 빈 객석에서의 박수는 나 혼자 뿐이었지만 공간을 꽉 메운 울림으로 그들에게 전해졌다. 고맙다며 인사를 건네는 그들은 단 한 명의 예상치 못한 관객을 앞에 두고 또다시 춤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들의 발과 허리와 손과 눈을 따라 나도 고개를 흔들거리며 리듬을 같이 따라갔다. 당장이라도 저들 사이에 끼어 멋진 춤사위를 펼친다면 비보이 부럽지 않을 듯한데…. 정말 환상적인 동선과 살아있는 표정, 감정선을 쥐락펴락하는 창조적인 흔들거림, 너무나 아름다운 파트너십, 형언할 수 없는 멋진 무대!

 

나는 30여 분 동안 너무나 만족한 공연을 보며 입 꼬리가 올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기립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에게는 단지 연습일지 몰랐지만 최선을 다하는 무대였기에 나에게는 너무나 특별한 공연이었다. 몸치의 어눌한 동양인에게는 신세계 같은 그런 구경기회를 박탈시키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공기가 한결 시원해져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발걸음도 더욱 가벼워져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살짝살짝 룸바의 리듬을 흉내내보기도 했지만 명백한 과욕이었다. 하지만 이미 인트라넷의 허무함은 룸바의 벅찬 기쁨으로 대체되어 있었다.

 

"인터넷은 잘 했어요?"

 

잠에서 깬 J가 물어왔다.

 

"인터넷은 못했어요. 하지만 정말 멋진 춤을 봤어요!"

 

나는 J에게 일일이 사진들을 보여주고 침 튀겨가며 놀라운 경험들을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 어느 새 룸바 전도사가 되어 있었다. 오리지널 룸바를 본 그 환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아프리카의 영혼이 내 안에 흘러들어온 듯 황홀했던 그 춤 말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현재 '광야'를 모토로 6년 간의 자전거 세계일주 중입니다. 최근 도전과 열정, 감동의 북미 대륙횡단 스토리 <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를 발간했습니다.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 


태그:#쿠바, #비전트립, #자전거세계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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