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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사거리 횡단보도(자료사진).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사거리 횡단보도(자료사진). ⓒ 안현주

나는 1990년대 후반 한국인과 결혼해 현재 인천에 정착해 살고 있는 일본인 가정주부다. 결혼 전엔 일본 내 한국계 기업에서 일했고, 한류가 일본에 상륙하기 전부터 재일 한국인 친구들과 한국영화를 즐겼다. 지인의 소개로 이뤄진 남편과 만남도 운명처럼 다가왔다. 애당초 부모님께서는 한국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강하게 반대하셨다.

고민도 많았지만 결혼하지도 않고 후회하느니 해보고 나중에 후회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해 가족을 뒤로하고 남편을 따라 바다를 건넜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결혼 후 남편과 근친 길(처음 친정에 갔을 때)에 올랐을 때 부모님은 집에서 하룻밤을 자는 것도 허락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2000년 1월 첫째 아이(아들)가, 이듬해 9월 둘째 아이(딸)가 태어나면서 굳게 닫혀 있던 부모님의 마음이 차츰 열리기 시작했다. 단란한 가정, 사랑스러운 아이들, 그리고 친정 부모와 화해…. 한국에서 삶도 그렇게 가을녘 들판의 곡식만큼이나 풍성하게 무르익는 듯했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4년 전인 2004년 10월 어느 날 우리 가정에 먹구름이 밀려들었다. 그날 나와 두 아이는 집 근처 수퍼마켓에서 찬거리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횡단보도를 건넜다. 횡단보도를 거의 건너올 무렵 오른편에서 달려온 뭔가에 내 몸이 쿵 부딪히면서 허공에 날아올랐다가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나중에 의식이 돌아와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보았을 땐 차마 믿기지 않았다. 인도에 비스듬히 올라 멈춰선 승용차와 그 밑에 깔린 딸아이, 2~3m 뒤에 서서 울고 있는 아들. '이 모든 것이 나쁜 꿈이라면…' 하지만 그 끔찍한 광경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병원에 실려와 응급처치를 받는 동안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 모두 달려왔다.

그런데 치료를 끝내고 돌아온 내게 남편은 떨리는 음성으로 "그래서… 그래서 내가 밤에 나가지 말라고 했잖아…"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 순간 나는 아이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걸 직감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입원했던 10주 동안 처음에는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딸아이가 짧은 생애에서 남기고 간 건 사랑이었으며, 내가 살면서 두고 갈 것도 사랑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용서하기 어려운 게 있다. 사고 당일 차량이 돌진해 오던 그 순간에도 보행자 신호등은 파란 불로 깜빡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사고를 낸 여성 운전자는 우리가 빨간 불로 바뀐 뒤에도 횡단보도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물론 운전자는 자신의 과실을 조금이라고 줄여 보겠다는 심산에서 그런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안다. 한국에서는 교통사고가 나면 일단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목청을 높이는 일이 적지 않은 듯하다. 비록 시간을 재어 보지는 않았지만 내 경험에 비춰 보면 같은 길이의 횡단보도라도 일본에 비해 한국의 보행시간은 짧은 듯하다.

이래서는 노약자나 임신부, 어린이, 장애인들이 마음 놓고 길을 건널 수 없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늘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다. 몇 발짝 걷다 보면 눈앞에 보이는 신호등은 사람들로 하여금 걸음을 재촉하게 한다. 보행시간도 턱없이 짧은데다 깜빡이는 신호등은 매번 보행자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든다. 게다가 정지선에 대기 중인 차량들도 슬그머니 횡단보도를 침범하기 예사다.

한국이 단기간에 압축성장을 하다 보니 사회 전반에 속도감이 만연해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이런 점이 '역동성'이라는 말로 포장돼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도 개선 가능한 불합리한 관행들이 속도감에 편승해 통용되는 현실은 문제가 있다. 예컨대 한국 운전자들의 귀는 뒤따르는 차량들의 경적 소리에 늘 노출돼 있다.

초보 운전자가 조금만 느리게 주행하거나 안전운행을 하려고 속도를 늦춰도 경고음이 터져 나온다. 일본에서는 아무리 급해도 상대방을 놀라게 하는 경적은 가급적 울리지 않는 게 미덕으로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나는 일본 도쿄 인근 인구 30만 정도의 소도시에서 자랐다.

그곳엔 노약자나 장애자들이 언제든 건널 수 있도록 '수동식 신호등'이 군데군데 설치돼 있다. 30여년 전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그대로다. 한국도 일부 지역에 '수동식 신호등'이 설치돼 있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주변에서 본 적은 아직 없다. 노약자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수동식 신호등을 더 많이 설치했으면 좋겠다.

물론 온 도시에 수동식 신호등을 설치한다면 교통 흐름이 끊기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 주변만큼은 수동식 신호등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호등의 보행 시간도 아이들 걸음걸이에 맞게끔 차등화할 필요가 있다. 운전자는 자동차에 오르는 순간 보행자에게 강자가 된다.

한국이 경제만이 아니라 문화 선진국 대열에도 들어서려면 이처럼 어린이, 노약자, 나아가 보행자들이 모두 보호받는 시스템을 더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위크 한국판(2008.10.22자)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교통 문화#인천#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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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이주민영화제(MWFF) 프로그래머 참여 2015~ 인천시민명예외교관협회운영위원 2017년~2019년, 이주민방송(MWTV) 운영위원 2021년 ~ 인천서구마을공동체 웃서모 대표 겸임 2023년~ 인천 i-View 객원기자 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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