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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마침 시간

 

.. 지민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빨리 해. 마침 시간 되면 아이들이 몰려온단 말이야” 마침 화장실 바닥에 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거기에다 물뿌리개로 물을 조금 더 뿌려 놓았다. 그러고는 교실로 들어왔다 ..  《윤태규-선생님,나 집에 갈래요》(보리,2002) 77쪽

 

 제가 초중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조례’와 ‘종례’만 있었습니다. 주마다 월요일과 토요일에는 ‘조회­’가 있었습니다. 군대에서는 날마다 ‘일석점호’와 ‘일조점호’가 있었어요.

 

 ┌ 조례(朝禮) : 학교 따위에서 그 구성원들이 모여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행하는 아침 모임

 └ 종례(終禮) : 학교에서, 하루 일과를 마친 뒤에 담임 교사와 학생이 한자리에 모여 나누는 인사

 

 “아침 모임”이 ‘조례’라면서, ‘아침모임’을 한다는 이야기는 여태까지 못 들었습니다. 하루일을 마치고 나면 저녁일 테니, 저녁에 다시 모인다면 ‘저녁모임’입니다. 그러나 저녁에 ‘저녁모임’을 하고 헤어진다는 이야기 또한 이제까지 못 들었습니다.

 

 ┌ 마침 시간 ← 종례 시간

 └ 여는 시간 ← 조례 시간

 

 하루를 여니 ‘여는 시간’입니다. 하루를 마치니 ‘마침 시간’입니다. 학교에서나 일터에서나 군대에서나 ‘여는 때’와 ‘닫는 때’를 맞이합니다. 처음 마주하니 ‘첫 자리’인 셈이고, 마지막으로 보고 헤어지거나 잠드니 ‘마지막 자리’인 셈입니다.

 

 ┌ 마침모임 / 마침때

 ├ 아침모임

 └ 여는모임 / 여는때

 

 군대에 있을 때, 조심스레 글을 써서 건의를 한 뒤로 ‘일조점호’와 ‘일석점호’라는 말을 ‘아침점호’와 ‘저녁점호’로 고쳐쓰게 되었습니다. 모든 군대에서 이 말을 쓰지는 않을 테지만, 제가 몸담았던 데에서만큼은 이렇게 써 주었습니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서 널리 퍼졌을 수 있지만, 세월이 흐른 탓에 다시 옛날 일제강점기 때 말로 돌아갔을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세월이 흐르며 ‘조례’와 ‘종례’를 넘어 ‘여는 시간’과 ‘마침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한편, ‘아침모임’과 ‘낮모임(저녁모임)’을 할 수 있고, 또다시 일제강점기 때 말로 돌아가며 ‘조례’나 ‘종례’라고만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그대로 있어도 어른들이 바뀌지 않으면 학교말이 바뀌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은 그대로 있어도 나이든 이들이 고치지 않으면 회사고 군대고 사회고 우리 둘레에서 쓰이는 말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ㄴ. 차삯과 버스삯

 

.. “용아! 너 어디 가니?” “집에!” “느 집 어디냐?” “성북동야. 이사 갔어.” “근데 걸어가? 버스 값 없니?” 용아는 픽 웃습니다. 버스 값은 까먹은 것입니다. “같이 가자! 우리 큰어머니 집이 성북동야! 잘 됐다. 큰어머니 집에나 가 봐야지!” ..  《마해송-모래알 고금》(우리교육,1996) 13쪽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거나 배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거나 할 때 치르는 돈은 ‘삯’입니다. 버스를 타면 ‘버스삯’이요, 택시를 타면 ‘택시삯’이며, 배를 타니 ‘배삯’이고, 비행기를 타서 ‘비행기삯’입니다.

 

 ┌ 요금(料金) : 남의 힘을 빌리거나 사물을 사용ㆍ소비ㆍ관람한 대가로 치르는 돈

 │   - 전화 요금 / 요금 인상 / 요금을 내다 / 택시 요금을 치르고 나서

 │

 ├ 버스 요금 (x)

 └ 버스값 / 버스삯 (o)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삯’이라는 낱말은 거의 안 쓰고 ‘요금’ 한 마디로만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일터에서 ‘집과 일터를 오가는 데에 들어가는 삯’을 말할 때에도 ‘교통비’나 ‘교통 비용’이나 ‘교통 요금’을 말할 뿐, ‘찻삯’을 말하는 일이란 없습니다.

 

 버스를 타는 삯이 오르거나 전철을 타는 삯이 오를 때, “버스 요금 인상”과 “전철 요금 인상”이라고만 이야기할 뿐, “버스삯 오름”이나 “전철삯 오르다”처럼 이야기하는 일이란 찾아보지 못합니다.

 

 ┌ 버스삯 / 기차삯 / 전철 삯 - 찻삯 (o)

 └ 버스 요금 / 기차 요금 / 전철 요금 - 교통비 (x)

 

 생각해 보면, 돈을 ‘돈’이라 하지 않고 ‘금전(金錢)’이나 ‘비용(費用)’이나 ‘자금(資金)’이라고 하는 우리들입니다. 돈이 돈이 아니니, 삯이 삯이 아니며, 값은 또 값이 아니게 됩니다.

 

 전기를 썼으니 ‘전기값’을 치르고, 물을 썼으니 ‘물값’을 치르며, 가스를 썼기에 ‘가스값’을 치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전기세(-稅)’를 내고, ‘수도세(水道稅)’를 내는데다가, ‘가스세(-稅)’를 내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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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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