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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모험

 

서운산의 높이(해발 547.4m)가 장난이 아니다. 이 일대에선 그래도 산세가 깊고 높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곳을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생까지 다양한 아이들이 오른다. 물론 아이들끼리가 아니라 조를 편성하여 각조 담당 교사와 함께 오르는 것이다.

 

오르면서 각종 나무와 꽃들을 살피기도 하고 가을 산속이라 차가운 계곡 물에 손을 담가보기도 하고. 가다가 지칠 무렵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꺼내어 먹는 재미는 얼마나 좋은지. 시장이 반찬인데다가 분위기까지 곁들여져 밥이 절로 넘어간다.

 

사실 요즘 아이들이 산에 오르는 일은 고사하고 들녘조차 걸어 본 경험이 별로 없지 않은가. 그나마 유별난 부모의 아이들이야 가끔 들녘이라도 걷고 산이라도 타본다지만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야 그렇지 못할 터.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서 학교 아니면 학원, 집에 오면 숙제 아니면 컴퓨터. 이게 요즘 아이들 일상이다. 사실 우리 시대의 십자가를 어른들이 지고 가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지고 간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듯싶다.

 

어쨌든 일상생활이 늘 거기서 거기인 아이들, 어른들에게 허락 맡은 공간에서 어른들의 눈 밖에 나지 않을 행동만 일삼았던 바로 그 아이들이 미지의 세계로 나온 것이다. 혹 그 중에 작년에 이 자연학교에 참여해 서운산을 오른 친구도 있겠지만, 어디 자연이 1년 전과 같으랴. 아니 산이야 매일 같이 올라도 오를 때마다 다른 법.

 

아이들은 '정말 공기가 좋다. 역시 자연이 좋아'라는 투의 이런 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친구가 좋고 분위기가 좋아 떠들면서 산을 오른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산의 좋은 기운이 아이들의 영혼을 감싼다는 것을 아이들은 알까. 때론 숨차서 힘들다고 투정 부릴 때 산새들이 힘내라고 노래 불러 준 것을 알기나 알까.

 

반면 올라 갈 때는 평탄한 길로 올라갔지만, 내려올 때는 약간 가파른 길로 내려왔기에 담당 교사는 안전을 생각하느라 진땀을 뺐지만, 아이들이야 오히려 평탄한 길 보다 조금 위험한 듯 보이는 길이 더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어른들은 또 알까. 아이들에게 모험과 꿈이 없다면 앙꼬 없는 찐빵이라는 것을 어른들은 정말 알고 있을까.

 

아이들의 낭만

 

서운산 자연학교는 낮보다 밤이 더 좋다. 밤이 되면 아이들과 캠프파이어를 하기 때문이다. 캠프하면 빼놓을 수 없는 캠프파이어. 보름이 낼 모레인지라 휘영청 밝은 달밤 아래에서 얼기설기 모아놓은 장작에 불이 순식간에 타오르면 아이들은 순간 "와" 하고 함성이 터져 나온다. 영화에서나 보았을 법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불앞에 서면 '원초적 본능'에 마주선다고 했던가. 아이들도 교사들도 '원초적 흥분'에 맘이 들뜬다. 아이들은 그저 신기하기만 하고, 어른들은 그저 추억이 새롭기만 하다. 담당 교사가 준비한 오락시간인 OX퀴즈 시간엔 아이들은 마냥 즐겁다.

 

때론 O로 우르르 몰려갔다가 때론 X로 우르르 몰려갔다 하느라 바쁘다. 어쨌든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탈락이 되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닌 아이들의 표정이 우습다. 아웃되더라도 실제로 죽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죽을 똥 살 똥 힘을 다하는 아이들을 보면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싶은 게다. 

 

그리고 이어지는 '가위바위보 기차놀이 게임'.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자기 등 뒤에 기차를 만들어 계속 붙여나가는 게임이다. 여기저기서 '가위바위보'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가 길게 늘어선 자기 등 뒤에 기차를 보면 가슴이 뿌듯해진다. 뒤에 따라가는 아이들도 신나는 것은 마찬가지.

 

그렇게 이어진 줄이 불 주위를 빙빙 돌다가 사회자의 "일곱 명"이라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사전 설명이 없었는데도 아이들과 어른들은 짝을 찾느라 혼비백산이다. 일곱 명을 만든 팀은 살아남지만, 아닌 아이들은 탈락이다.

 

이렇게 끝까지 살아남은 아이들에게 도리어 벌칙에 해당하는 노래와 춤을 시키면 살아남은 아이들은 "에이, 이런 게 어딨어요"라지만, 아웃된 아이들은 "와"라고 좋아하며 희비가 엇갈린다. 그렇게 아이들은 잠시 자신들이 지금 서운산 바로 밑 마당에서 불을 피우고 놀고 있다는 걸 잊어버린다.

 

아이들의 사귐

 

집을 떠나 다른 곳에서 자 본다는 것. 그것만큼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 또 있을까. 어른들이야 아이가 어리다도 바깥에서 자는 것을 걱정하겠지만 말이다. 평소 몇 시가 되면 잠을 자야 한다고 집에서 잔소리를 들을 시간인데도 아이들은 모두 눈이 '말똥말똥'이다. 이 방으로 우르르 저 방으로 우르르 몰려다니며 난리다. 여자 아이들은 교사와 함께 봉숭아 물들이느라 여념이 없다. "선생님 저도 해주세요"라는 주문이 쉴새없이 밀려든다. 평소 같으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봉숭아가 오늘은 인기가 초절정이다.

 

아이들은 웬만해서 잠이 들지 않는다. "재잘재잘, 왁자지껄" 방마다 시끄럽다. 그래도 교사 중 누구하나 "야, 시끄러워 일찍 자야지" 하는 사람이 없다. '이 때 이런 것 안 해보면 언제 해볼까'라는 게 교사들의 기본적인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떠들다가도 어느 새 아이들은 하나둘 꿈나라로 간다. 사실은 아이들에겐 1년 중 자야 될 의무감이 아닌 자고 싶은 시간에 잠든 유일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꿈나라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의 잠을 깨우는 것은 산새들의 지저귐이다. 평소 집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이름 모를 산새들이 아침을 깨우느라 아이들보다 더 분주하다. 그 중에 먼저 깨어난 아이들의 대화가 정겹다. "야 내가 먼저 일어났다"라고 말하니 일찌감치 일어나 있던 한 아이는 "아니야. 너는 3등이야. 내가 1등이고, 쟤가 2등이거든"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별거 아닌 것 가지고도 아이들은 우쭐댄다.

 

이렇게 일어난 아이들은 바로 집 앞에 있는 청룡호수를 산책한다. 청룡호수에서 피어나는 아침 물안개에 아이들은 그저 신비롭기만 하다. 아이들의 머리에는 방송 무대에 피어나는 드라이아이스 연기를 생각했겠지만,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물안개 피는 호수 주변을 아이들과 교사가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며 산책을 하는 것은 흡사 종교인들의 '성지순례'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아이들의 자율

 

여기에선 웬만하면 먹는 것도 스스로 만들어 먹는다. 첫날 산에서 내려와 배가 출출할 때 어른들이 챙겨주는 간식으로 배를 채울 만도 한데 그래도 부침개를 조별로 만들어 먹는다. 모두 3조라 집 마당엔 행사용 텐트가 3개다. 마련된 그 자리에서 담당 교사와 함께 부침개를 굽는다.

 

평소 집에서는 엄마가 간혹 해주던 부침개를 아이들과 교사가 하나가 되어 만들어 본다. 지글지글 부침개가 다 되려고 특유의 향기가 피어오르면 아이들의 배는 두 배로 고프다. 벌써 군침이 목으로 몇 번을 넘어갔는지 모른다. 역시 시장이 반찬이라 했던가. 아이들과 교사가 함께 구운 부침개를 먹을 때면 서로 먼저 먹겠다고 아우성이다. 아이들에겐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평소 즐겨 먹던 피자랑 햄버거보다 열 배는 맛있다. 자신이 요리를 했다는 자부심이 단단히 한몫을 한 셈이다.

 

마지막 날 점심은 '김밥, 떡볶이 만들어 먹기'다. 역시 마당에 설치된 3개의 텐트 안에서 맛있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아이들은 김밥 재료인 계란, 시금치, 어묵, 당근 등을 김밥에 하나둘 넣어 김으로 만다. 한 쪽에선 고추장과 각종 야채를 섞어 빨간 떡볶이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물론 교사의 역할과 뒷받침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직접 김밥을 만들고 떡볶이를 만들어 본다는 것은 아이들에겐 신선한 경험이다. 남자 아이들은 요리가 되는 것보다 중간 중간에 요리 재료들을 '날름날름' 주워 먹는 게 더 즐겁다.

 

모두가 정성껏 만든 음식을 뷔페처럼 진열을 하고 식사를 할 때면 고급 뷔페식당이 하나도 부럽지 않게 된다. 서로가 먹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웃음보가 터진다. 김밥과 떡볶이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 여기엔 '내가 만들어 먹는 재미'’가 수월찮다. 

 

아이들의 생태경험

 

"얘들아. 여기 누워봐" 뭐하느냐고. 그렇다 '별보기'다. 별이 초롱초롱한 밤하늘 아래에 있는 시골마당에다가 돗자리 몇 개를 쭉 길게 펴고 거기에 아이들이 나란히 눕는다. 그리고는 밤하늘의 별을 본다. 담당 교사가 "작은곰자리, 용자리, 카시오페아, 카페우스, 페가수스, 안드로메다, 백조자리, 거문고 자리 등"이라고 알려주면 아이들은 혹시 자신이 아는 별자리가 나오면 두 배로 반가워 한다. 마치 남들이 모르는 것을 혼자만 알고 있는 것처럼.  정말 가관이다. 아이들보다 신이 난 것은 오히려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인 듯 자신을 뽐내느라 바쁘다.

 

그 다음날 아이들이 산에서 직접 주워온 나뭇잎, 도토리, 풀잎 등으로 시화를 만드는 재미 또한 대단하다. 그 전날 서운산을 오르며 아이들이 직접 가져온 것들이 아이들의 작품으로 탄생하는 순간이다. 노란 종이에다가 한지를 붙이고, 그 위에다가 주워온 식물들로 장식을 한다. 이렇게 아이들의 작품이 완성이 되면 그것은 고스란히 또 하나의 아이들의 추억이 완성되는 셈이다.

 

한 아이의 상상력이 빛나는 삼행시가 있다. "서 : 서쪽에서 해가 뜨는, 운 : 운이 참 좋은, 산 : 산이 서운산이다"라고. 해는 동쪽에서 뜬다는 어른들의 진리에 상관없이 그 아이에겐 적어도 그날 하루만큼은 서쪽에서 해가 떴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어른들의 사랑...

 

이 서운산 자연학교의 주 원동력은 '안성천살리기시민모임' 회원들이다. 아이들을 지도하는 교사, 밥하는 식사담당, 짐 나르는 짐꾼, 프로그램 준비해주는 도우미까지 모두가 소위 자원 봉사다. 프로그램 준비도 마찬가지다. 이 모임의 '대한민국 아줌마'들이 몇날 며칠을 고민해서 직접 만든다. 그에 따른 준비물도 일일이 직접 준비하는 것은 기본이다. 프로그램 준비물 중 '김밥 재료 , 떡볶이 재료, 부침개 재료' 등의 준비가 하이라이트다.

 

당일에 식사를 준비하는 여성 일꾼들, 그리고 각 프로그램이 진행되기 전에 미리 '텐트 치기, 탁자 가져다 놓기, 캠프파이어 준비하기' 등의 힘쓰는 일을 담당하는 남성 일꾼들, 수고하는 교사들과 아이들을 위해 격려의 말과 간식을 전하러 현장에 수시로 드나드는 다른 회원들. 그들의 열심과 사랑이 아이들에게 좋은 마당을 만들어 주었던 게다. 어쩌면 '세상에 이렇게 좋은 캠프가 또 있을까'라고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은 바로 이들의 숨은 봉사 때문이리라. 전적으로 아이들을 위해 애쓴 어른들의 마음 씀의 결과인 게다.

 

캠프파이어 했던 그 밤에 담당 교사 몇 명이 한 줄로 서 있고, 그 앞을 아이들이 하나둘 지나갈 때마다 교사들이 일일이 "누구누구야,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며 꼭 끌어안아 주었던 그림이 바로 이 캠프의 기본정신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서운산 자연학교” 캠프는 안성의 환경단체인 ‘안성천살리기시민모임 (031-676-0700)’에서 8년 째 진행해오고 있는 청소년 자연 캠프이다. 안성에 거주하는 초중학생 30여명을 대상으로 펼쳐지는 이 캠프는 올해 봄부터 교사와 학생들이 매월 1회 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졌으며, 이번 1박2일(10월 11일~12일)간 진행된 캠프는 이 모임을 정리하고 완성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캠프는 서운산과 청룡사 주변의 자연 속에서 이루어졌다. 이 학교는 내년에도 이맘 때 진행될 예정이다. 


#서운산자연학교#서운산#자연캠프#안성천살리기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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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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